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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전승공예대전 대상 '피혁공예가' 최남선

[인간탐구] 전승공예대전 대상 '피혁공예가' 최남선

"내 전생이 갖바치였나봐요"

온통 너덜거리는 패션으로 인사동 거리를 누비는 여자. 일에 빠져있을땐 1주일이고 열흘이고 말 한마디 없다가도 작품 얘기만 물어보면 쉼표도 없이 다변(多辯)이 되는 여자.

사람보다 꽃이나 나무, 구슬과 가죽과 더 잘사귀는, 한편으론 여자 피터팬같은 여자. 발랄하기로 치면 딸보다도 더 발랄한 그녀의 나이는 52세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그녀의 본디 모습은 그런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최근 축하받을 일이 생겼다. 실제로 찬사와 축하가 아깝지않은 일을 해냈다. 나이 마흔을 넘긴 두아이의 엄마로 시작한 피혁공예, 십여년 집념끝에 마침내 인정을 받았다. 얼마전에 열린 제26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당당히 대상을 차지했다.

평소 인사동 거리에서 히피처럼 꾸미고 돌아다니던 그녀를 본 사람이라면 선뜻 연결이 안되겠지만, 사실이다.

전통 유물을 그대로 재현한 '가죽옻칠함'으로 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최남선씨. 더구나 가르쳐주는 사람 하나 없어 실물을 스승삼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집요한 작업끝에 진작에 끊어진 조선 갖바치의 명맥을 이어놓았다.


‘옻과의 전쟁’ 치루며 한땀 한땀 작업

"웬만해선 힘들다는 소릴 안하는 성미인데, 이 작품땐 내내 힘들다는 소릴 입에 달고 다녔어요. 그런데도 전같으면 한 작품 끝날 때마다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달랠 겸 꽃시장에 들러 꽃구경하는게 제일 큰 낙이었는데, 이번엔 상 받고나서 꽃시장 대신 장안평에 가서 유물 하나를 더 사왔어요. 옛날과는 또다른 책임감이 생겨서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구요. 상을 받은 당일에도 새벽 4시까지 일하다가 잤어요. "

이야기를 하면서 연신 팔과 다리를 차례로 벅벅 긁어댄다. 작업중에 얻은 옻독 때문이다. 소매를 걷어부치고 보니 어찌나 오랜 기간 시달렸던지 점점이 딱지도 앉아있다.

"죄송해요, 손님앞에 이러는게 아닌데... 이상하게 저녁만 되면 다시 가려워져서 참을 수가 없어요. 처음엔 옻독으로 얼굴이 2배반이나 퉁퉁 부어서 눈이 5mm밖에 안 떠질 때도 있었어요. 지금도 팔과 손이 조금씩 부은거예요. 그래도 뭐, 이런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지하실의 옻칠 작업실을 비롯해서 집 전체가 전시장 겸 작업장이다. 주변부터가 직접 만든 가죽공예품들로 뒤덮여있다.

직접 만들어 애용하는 여러켤레의 가죽구두부터 시작해 팔찌, 가방, 지갑, 귀고리나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 스탠드 갓, 심지어 코를 바싹 들이밀고 살펴보지 않으면 도저히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믿기조차 어려운, 가죽실 직조로 문살을 만들어 붙인 작은 장롱까지 모두 자작품들이다. 하도 많이 만들어 본인조차 갯수를 세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상을 받은 가죽옻칠함은 그중에서도 가장 고생스런 전쟁을 치르고 얻은 작품이다. 소가죽 원피(통가죽)를 옻으로 염색해 만든 피혁으로 자루처럼 만들어 백골, 즉 홍송으로 된 나무함에 완벽하게 뒤집어씌웠다.

선조들의 유물을 그대로 옮긴 것이지만, 요즘 제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모양과 디자인이 세련된 것이다. 선조들의 감각에 새삼 경의를! 이것도 최씨 덕분에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제작과정은 인내와 끈기 그 자체다. 특히나 '결벽증'에 가까울만큼 각 공정을 빈틈없이 진행해 온 최씨의 작업은 더욱 고난도의 실전이었다. 제작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유물과 같은 모양으로 디자인해 백골을 짠다. 그리고 그 외피로 입힐 소가죽 원피를 사다가 통째로 옻칠을 한 뒤 천으로 닦아낸다. 옻칠 원액의 빛깔은 연한 갈색, 옻독에 오르면서까지 이 전통 염색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래야 재질도 더 단단해지고 벌레도 안 먹는 장점 때문이다.

칠이 끝난 원피는 칠장에 넣어 말리는데 옻은 수분이 충분해야 마르는 특성이 있으므로 칠장에 물이 뚝뚝 떨어질정도로 물을 충분히 축여놓아야 한다.

칠장에서 머무는 시간은 한번에 하루 정도, 다 마른 원피는 다시 꺼내 또다시 칠을 하고 닦아 칠장에 넣는, 똑같은 과정을 적게는 15회, 많으면 50회쯤 되풀이한다.

소가죽 부위중에서도 지방분이 많은 부위는 좀처럼 옻칠이 잘 스며들지 않기 때문에 이 작업이 필요하다. 흡족할 만큼 염색이 되고나면 비로소 도안을 옮겨 그리고 재단한다.

이 도안들 역시, 본 작업에 들어가기전 밤새 어른거리는 눈을 비벼가며 1mm 모눈종이 한칸한칸마다세밀하게 그려넣은 그림이다. 원피에 작은 상처나 얼룩이 남아있어도 버려야한다. 재료비에서도 만만찮은 피혁공예다.


두어달 꼬박 붙어 앉아야 ‘한 작품’

진짜 어려운 단계는 그 다음부터다. 부분별로 재단된 가죽들을 조각보처럼 서로 잇는 작업이 시작된다. 조그만 오차도 실패를 부른다. 조금만 치수나 간격이 어긋나도 함이 꿀렁거리기 때문에 한땀 한땀 바늘구멍 크기나 간격까지 정확히 계산해 맞춰야한다.

0.8mm 펀치로 미리 바늘구멍을 뚫는데, 바늘땀과 바늘땀 사이 간격이 2mm, 가장자리로부터도 2mm 선을 정확히지켰다.

그것도 미리 선을 긋고 점도 찍은 다음에야 펀치로 뚫고 바느질을 개시, 그러면서도 행여 숨이라도 크게 쉬면 손이 흔들려 잘못될까봐 내내호흡 한번 크게 하지 못했다. 깨알같은 바늘구멍을 철저히 맞춰 꿰매다보면 하루종일 바늘을 붙들고 있어도 고작 한뼘 정도의 진도도 어려웠다. 더구나 일반 천과 다른 가죽을 겹쳐 꿰매자니 오죽 둔하고 더디겠는가.

라운드형으로 이뤄진 모서리와 함의 뚜껑 부분과 아랫부분이 맞물리는 직각의 턱 부분은 그중에서도 가장 애를 먹인 부분이다. 둥근 모서리에 댈 가죽조각도 미리 모형으로 만든 나무토막에 일일이 대못으로 박아 모양을 잡아두었다가 썼다.

마침내 자루모양으로 완성된 가죽주머니속에 조심스레 백골을 집어넣을땐 온 마음이 조마조마, 처음 시험삼아 넣었다가 다시 꺼내는 과정에서 모서리가 조금 찢어졌을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최씨다.

함의 여닫는 부분의 장석을 만들어 붙이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최씨의 경우 그 장석도 직접 디자인해 만들었다. 제작을 의뢰하고도 쉽사리 흡족한 장석이 나오지 않자 한밤중에도 쫓아나가 물품을 확인하던 완벽주의자다.

밤샘을 밥먹듯이 하고도 이 하나를 만드는데 수개월이 걸렸다. 웬만큼 숙달이된 지금 만든다해도 최소한 두어달은 꼬박 붙어앉아야 만들 수 있을 만큼 고생스런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과로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몇번, 옻독으로 인한 고생은 차라리 싱겁다. 사흘동안 끼니를 거른채 작업에만 붙어있다가 혼이 난 기록도 있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그녀의 무서운 몰두엔 가족도 진작 만류를 포기했다.

한때 최씨의 건강이 염려된 나머지 가족들이 '자꾸 그러면 가죽을 전부 내다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녀에게 가장 미안하고도 고마운 존재가 가족들이다. 건축가인 남편 곽선기씨는 특히 작업실에 혼자 틀어박혀 좀처럼 나오지않는 아내를 위해 과일까지 챙겨줄만큼 자상한 뒷바라지를 한 것은 물론, 최씨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은 기꺼이 거들어주는 등 적극적이고 극진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불혹의 나이에 시작한 늦깎이 예술가

하긴 불혹의 나이에 느닷없이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나설때부터 이미 남편과 두 딸의 혀를 내두르게 한 최씨다.

경기 평택에서 출생, 학창시절 내내 야무진 우등생이었다. 어렸을때부터 남녀차별없이 능력껏 원하는 공부를 하도록 허락해 준 부모님의 지원으로 1967년 숙명여대 생활미술학과에 입학, 공예에 빠지기 전까진 그림을 좋아했다.

유화에 매료됐던 대학시절엔 주말마다 강촌으로 달려가 그림을 그리다가 간첩으로 의심받아 조사받은 적도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75년에 결혼, 7년만에 얻은 둘째딸이 세돌을 맞을 무렵만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난데없이 대학원에 가겠다고 나서자 처음엔 황당해했던 남편, 가족들도 못말리는 이 외골수 주부는 40대 만학도로 모교의 미술대학원 공예과 학생이 됐다.

행여젊은 학생들 틈에서 '한가한 아줌마가 소일 삼아 학교에 다닌다'고 할까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실제로도 장학금을 받을만큼 성적이 좋았다.

목공과 피혁 등 공예가로서의 기초도 그곳에서 닦았다. 졸업논문 제목도 '피혁공예의 혁직기법에 관한 연구'였다. 가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시절 들고다니던 통가죽 가방이 끈이라면 끈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튼튼한 재질에다 아무리 오래 들고 다녀도 쉽게 질리지 않는 멋에 반했다.

"하지만 직접 만들려고 보니 관련 자료나 가르쳐줄 분조차 없어 막막한거예요. 옛날엔 특히나 재료도 흔치않고 품도 많이 드는 일이라 돈 많은 부잣집에서나 간간이 가죽주머니, 담배 쌈지, 가죽함같은 정도로 만들어썼거든요.

그런데다 갖바치에 대한 천시풍조 때문에 그마저 일찍 명맥이 끊겨 직접 부딪쳐보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지요. 가죽옻칠함도 그냥 골동품상에서구한 실물을 가져다놓고 무작정 내 손으로 직접 따라 만들어보면서 하나하나 익혔습니다. "

그후 몇년간 대학 강사 생활도 했고, 십여차례 공예대전과 산업디자인 전람회등에서 입상한 경력도 갖고 있다.

개인,단체를 통틀어 전시회를 가진 것도 여러번, 꾸준히 한 길을 밟아왔다. 그중에서도 관람객들로부터 '가슴이 저린다'는 얘기까지 들으며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던 LA의 첫 전시회때는 가슴 벅찬 행복감과 사명감에 더욱 주먹을 꼭 쥐었던 최씨다.

그러나 전승공예대전은 좀처럼 넘기 힘든 산이었다. 1993년 첫 출품을 비롯해 이번 도전이 다섯번째. 4전5기끝에 마침내 최고의 인정을 받았다. 그것 역시 자신의 이름보다는 전통 피혁공예의 명예로 그녀는 받아들이고 있다.


“멋과 문화가 녹아있는 흔적 남겨야죠”

상을 받고난뒤 그녀는 요즘 1분1초가 더 아까와졌다. 설령 대회에서 낙선을 했더라도 멈추지 않았을 머릿속 새 작품 아이디어들이 더욱 세차게 최씨를 재촉하고 있다. 전승만을 위한 전승은 한계가 있는 터, 전통속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는게 최씨의 목표이자 소망이다.

"아무런 발전없이 옛날 것만 그대로 반복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옛 전통은 전통대로 계승하면서도 이젠 우리도 우리 자신의 멋과 문화가 녹아있는 흔적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만들고 싶은것, 만들어야 할 것들은 너무도 많아요. 당장 공개할 순 없지만, 세계의 사람들을 감탄시킬만한 멋진 작품 소재와 아이디어들이 여러가지 있어요. 나중에 만들어보이거든 꼭 지켜봐주세요. "

그녀의 바람처럼 대학의 피혁공예과와 가죽박물관이 등장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 한번 들러보기를 바란다.

이번 전승대전 수상자들의 작품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삼성동 한국무형문화재전수회관, 12월 12일까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쉬운 길을 두고도 모질고 고된 장인의 길을 택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숱한 날을 작업대 옆에서 쪼그리고 자며 손가락 마디가 얼얼하도록 가죽을 잇고, 짜고, 매만져온 21세기 갖바치의 숨결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흘린 땀도 눈물나고, 두번 다시같은 작품을 만들 수도 없을 것 같다며 자신의 작품을 자식처럼 껴안은 채 팔지도 않으려하는, 고집쟁이 장인의 흔적이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김명원 사진부 기자 kmx@hk.co.kr

입력시간 2001/11/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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