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덩키스

짧고 굴게 기억되는 환각적 사운드 '꾼들'

월남전으로 불거진 반전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자유와 평화를 부르짖는 히피문화가 열풍처럼 전세계를 뜨겁게 달군 60년대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답답한 현실을 타파할 탈출구가 필요했고 기성세대의 모든 것에 대항하고 싶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싹터 번지기 시작한 이 전염성 강한 기운은 기존의 음악뿐 아니라 건축, 사진, 영화, 미술, 조명등 모든 예술분야에 일대 지각변동을 불러왔다.

LSD음악으로 대변되는 사이키델릭 록은 당시 젊은이들의 정서에 부합한 자유로움과 기존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새로운 양식의 음악이었다.

신중현은 대중들과 친숙한 농악과 창을 사이키델릭사운드에 녹여 부어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한국적 사이키델릭 록을 창출했다.

월남전 참전 등으로 흔들렸던 당시 우리 젊은이들은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청량음료같았던 신중현의 사이키델릭사운드에 열광했다. 신중현 음악은 최초의 한국적 사이키델릭 록사운드를 이땅에 도입했다는 사실에서 더욱 차별성을 부여받고 있다.

신중현은 사이키델릭이란 말을 미8군방송에 출연했을 때 처음 들었다. 당시 AFKN에서 구사한 사이키델릭 기법의 독특했던 촬영이나 화면처리에 매료돼 빠져들었다.

그는 "때마침 날 찾아온 미국 히피들과 어울리며 마약과 사이키델릭에 심취했다"고 회고한다.

전설적인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은 지대했다. 얼마나 그의 음악을 많이 들었으면 둘째 아들 신윤철은 가족여행때 멀리 농가에서 들리는 돼지 우는 소리를 듣고 '지미 핸드릭스 기타연주소리가 난다'고 말했을 정도.

첫 그룹 에드훠가 해산되자 신중현은 66년경 패키지쇼를 위해 급조한 그룹 조우커스에 이어 미8군 하우스밴드였던 5인조 블루즈 테트를 결성하며 68년 여름까지 활동을 했다.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시도하고 싶은 음악적 갈증에 목이 타들어갔다.

그래서 새롭게 진영을 정비해 결성한 5인조 록그룹 덩키스. 미8군에서 '노 아웃 쇼'의 전속밴드였던 당시 멤버는 리드기타 신중현, R&B 스타일의 권위자로 불리던 베이스 이태현, 드럼 김호식, 경희대 음대 작곡과 출신의 올갠 김민랑, 리듬기타 오덕기의 라인업이었다.

덩키스는 펄씨스터즈의 세션을 맡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최초의 여성사이키델릭 록커로 기록될 자매듀엣 펄시스터즈의 데뷔음반에 수놓아진 그들의 실험적 사이키델릭은 전국을 뜨거운 열풍속으로 몰아넣었다.

68년말 김응천 감독, 남진, 조영남, 최영희, 트위스트 김, 트윈 폴리오, 라이더스 보컬팀, 펄씨스터즈가 출연한 <푸른사과-신향,DG1023,68년12월>는 신중현이 음악감독을 맡았던 새로운 형식의 음악영화였다.

작사, 작곡, 편곡까지 도맡고 덩키스가 세션으로 참여한 영화속에서 조영남, 최영희, 트윈폴리오는 신중현이 작곡한 10곡의 노래들을 불러 대단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다소 오버스러운 조영남의 <왔어요> <빗속의 여인>과 다이나믹한 창법으로 트윈폴리오가 부른 <떠나야할 그사람> 그리고 연세대 출신 최영희가 맛깔나게 부른 <작별> <하얀집>은 색다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섰다.

자신감이 붙은 신중현은 자신의 미8군 노아웃쇼 단원이었던 22세의 부산출신 신인 여가수 이정화를 첫 보컬로 영입하며 완성된 6인조 록그룹으로 거듭났다. 이정화는 대부분 사이키델릭록커와는 사뭇 다른 단순한 창법을 구사했다.

그러나 흑인 소울음악과 백인 사이키델릭을 모두 소화해 내는 은근한 맛깔의 가창력과 모던한 음색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는 않는 음악적 편안함과 긴 여운을 듬뿍 안겨주었다.

이정화의 데뷔앨범이자 덩키스의 공식 데뷔음반은 <신중현 사운드-신향,DG1033,69년>. 싫어, 봄비,꽃잎, 먼길, 내일, 마음 등 수록된 6곡 모두 두글자의 노래제목으로 구성된 것이 이채롭다. 그중 봄비, 꽃잎은 70년대 최고의 다이나믹 보컬로 명성이 드높은 박인수, 김추자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리지널가수는 덩키스의 보컬 이정화였다. 무려 15분53초의 ‘저주받은’ 롱버전곡 <마음>이 2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이 음반은 얼마나 비상업적이고 실험적 음악성으로 무장이 되어있 는가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정화의 가수생명은 길지 못했다.

신중현은 결별한 펄시스터즈에 대항해 대형가수 김상희를 영입하고 육감적이고 폭발적인 가창력을 지닌 김추자를 발굴하며 그룹 덩키스의 음악색깔을 더욱 사이키델릭하게 물들여갔다.

김추자의 데뷔음반을 녹음할 때 미8군무대에서 '써니'라는 예명으로 인기만점이던 김선을 영입 <뉴덩키스>로 거듭났다. 이 당시 신중현은 우리 국악에 관심이 지대하여 사이키델릭에 우리 농악과 창을 함께 녹여넣는 실험을 거듭했다.

뿜어나온 소리는 환상적 이었지만 부수적인 당시 사회분위기속에서 대중들은 환영과 거부감의 양분된 반응을 보였다. 69년 10월의 김상희리사이틀에서 들려준 덩키스의 연주는 대중들을 결국 사이키델릭의 환각적 사운드로 중독시켜버렸다.

펄시스터즈, 이정화, 김상희, 김추자 등 최초의 여성 사이키델릭 록커를 탄생시킨 신중현사단과 그 실험적 사운드를 빚어낸 덩키스. 그러나 덩키스도 더욱 환각적 빛깔로 물들어간 그룹 퀘션스, 더 맨, 엽전들이 만개시킨 본격 한국 사이키델릭 록사운드의 탄생을 위한 팡파르에 불과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11/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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