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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86)] 야키니쿠(燒肉)

[재미있는 일본(86)] 야키니쿠(燒肉)

광우병 파동으로 한국식당이 직격탄를 맞았다. 도쿄 신주쿠(新宿) 가부키초(歌舞伎町) 일각이나 아카사카(赤坂), 우에노(上野) 등에 밀집한 한국식당은 매출이 50% 이상 줄었다. 아예 문을 닫고 한국에 돌아 갔다가 몇 년뒤에 다시 나오겠다고 짐을 싸는 사람들까지 있다.

한국식당의 광우병 피해는 ‘야키니쿠(燒肉)’에 치중해 온 때문이다. 일본에서 대중적 중국집이 ‘라멘야(拉麵屋·라면집)’로 통하듯 한국식당은 '야키니쿠야'로 통해 왔다. '야키니쿠야'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쇠고기를 구워먹는 집'이라는 데 고정돼 있어 삼겹살이나 돼지갈비등도 팔지만 아예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지를 않는다.

그러나 한국식당의 이런 불황이 장기간 이어지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90년대말부터 일본에 불어닥치기 시작한 한국붐이 역사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은근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기세가 줄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음식은 무조건 절묘하게 영양의 균형이 잡혀 있어 건강과 활력, 다이어트,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식의 신화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야키니쿠는 이미 중국의 라멘, 이탈리아의 스파게티와 함께 일본의 3대 외래 음식으로 정착한 지 오래이다. 육식으로는 ‘스키야키(鋤燒)’나 '샤부샤부', 서양의 스테이크 등을 밀어 내고 차지한 자리이다.

갈비살에 간단한 양념을 해서 구워 먹는 '가루비', 한국식으로 뼈가 붙은 채 나오는 ‘호네쓰키(骨付き) 가루비’, 곱창구이인 '호루몬', 양구이인 '미노', 얇게 썬 소혓바닥에 소금을 약간 뿌려 구운 후 레몬즙에 찍어 먹는 ‘규탄(牛呑)’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호루몬'이란 묘한 이름은 곱창을 구울 때 나오는 백색의 기름기가 내분비 물질인 호르몬과 닮았다거나, 영양이 풍부해 호르몬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간사이(關西) 지역의 사투리인 ‘호루몬(放物)’, 즉 쓸모가 없어 버리는 물건이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보다 그럴 듯하다. '호루몬'이 일본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패전 직후였다.

일본인조차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던 때였으니 재일동포의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들이 고향의 풍습대로 도살장에서 버려지는 내장을 수습해 먹기도 하고 암시장의 식량을 사기 위해 팔기도 했던 것이 보급의 계기였다.

야키니쿠와 재일동포의 밀접한 관계는 '규탄'이라는 말에서도 확인된다. 탄(呑)이라는 한자는 소리로는 '돈', 뜻으로는 '노무'로 읽히며 '삼키다'를 뜻할 뿐이다. 누군가가 ‘우설(牛舌)’을 잘못 쓰고 뒷소리만 한국식으로 '탄'으로 읽은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추정할 길이 없다.

일본인의 야키니쿠에 대한 열광은 오랫동안 억눌렸던 육식 욕구와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일본의 오랜 육식금지 정책은 7세기때 덴무(天武) 천황의 육식금지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흔히 불교의 영향이 거론되지만 당시의 금지령이 소와 말을 대상으로 했을뿐 야생의 조수와 닭, 오리 등을 제외했다는 점에서 근거가 희박하다.

오히려 5~6세기 한반도에서 사람과 함께 들어 온 소와 말이 농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 당시 일본사회에 정착했던 육식 문화가 소와 말에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수시로 금지령을 내려야 할 만큼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육식 금지는 가마쿠라(鎌倉;1192~1333년)시대에 종교적 틀을 갖춘 신도의 ‘게가레(穢れ)’, 즉 부정(不淨)을 금기시하는 의식과 결합하면서 서민사회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무사들 사이에서 육식이 일상화했고, 가죽 수요의 팽창으로 가축의 도살이 잇따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육식은 몰래 행해졌다. 본격적인 육식 기피는 신분 차별이 극도에 이르렀던 에도(江戶)시대 들어서였다.

'게가레' 의식이 가축의 해체와 가죽의 생산을 맡았던 ‘부라쿠민(部落民)’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결합한 결과였으며 기피 대상도 모든 네발 달린 짐승으로 확대됐다.

그렇다고 맛과 영양이 뛰어난 육식에 대한 욕망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소와 말에 비해 금기의식이 덜한 멧돼지와 사슴고기는 각각 ‘보탄(牧丹)’, ‘고요(紅葉·단풍)’라는 은어로 불리며 식용됐다.

날짐승을 세는 ‘와(羽)’라는 단위로 네발 달린짐승을 세는 편법, 육식을 ‘구스리구이(藥?い)’로 부르며 약을 먹었을 뿐이라고 시침을 떼는 풍습도 나타났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서양의 육식 문화가 밀려 들고, 신분제 철폐로 일상적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던'부라쿠민'의 육식 문화가 밖으로 흘러 나왔다. 그래도 오랜 금기에 길든 일반인들의 의식 해방은 2차 대전이라는 격동기를 거쳐고 나서야 이뤄졌다.

의식의 해방과 한국 식문화의 절묘한 결합에 의해 탄생한 야키니쿠는 그 이후 맛으로 일본인의 미각을 사로잡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1/12/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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