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대망론 JP의 도박

집안단속·대선 캐스팅보트 두마리 토끼 잡기

자민련은 9일 당내 핵심 인사들을 대거 참여시킨 대선 기획단을 출범시킨다. 대선이 1년이나 남은 데다 하루가 급한 당 정비를 마다하고 3당 중 가장 먼저 대선조직을 띄우는 셈이다.

김종필 총재도 내년 1월15일 자신의 대권출마를 공개 리에 선언한다. 이날은 JP가 당시 집권당이던 민자당 대표에서 탈당, 창당을 선언하며 ‘제2의 정치인생’을 시작한 날이다. DJP 공조붕괴로 최악의 국면에 처한 JP가 빛 바랜 ‘JP 대망론’을 다시금 꺼내든 속사정이 있을 법하다.


지역정서 자극하며 ‘사면초가’ 탈피 노려

JP가 대권도전의사를 처음 시사한 것은 11월 27일 대전에서다. JP는 이날 시지부 후원회 및 대전ㆍ충남 지역 당직자 간담회에서 ‘내각제개헌론’과 ‘충청도 대통령론’을 앞세워 자신의 출마결심을 밝혔다.

JP는 “이상태로 가면 영ㆍ호남이 영원히 갈라져 손을 못 잡는 증오의 대립상태에 놓일 것이므로 이를 타파하려면 충청도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다음 대통령은 내각제를 이룩해놓고 물러날 정도의 굳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고문은 모두 충청도가 고향이지만 내각제론자는 JP가 유일하다. JP는 이날 “이제 호남도 대통령 배출 소망이 이뤄졌으니 더 이상 과욕을 부려선 안되고 오랫동안 대통령이 나온 경상도도 과욕을 부려선 안 된다” 며 ‘충청대통령’을 바라는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그는 지역정서에 기댄 출마론을 떠받치기 위해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까지 인용했다. “지금도명곡으로 연주되는 운명이 감격적인 선율로 문을 두드리듯이 당원 동지들의 성원이 운명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을 느낀다.” 후원회 참석자들이 사회자의 선창에 끌려 외친 ‘대통령 김종필’의 구호를 ‘운명’이라고 모양 좋게 치장했다.

그는 “내년 1월 15일 여러분 앞에 뜻을 밝히면 죽든 살든 앞으로 전진할 것”이라며 자못 비장함마저보였다.

그러나 JP는 내년이면 76세다. 그는 이날 “독일의 아데나워도 88세에 총리를 지냈다”는 주장에 “내 건강은 타고났다”는 말까지 보태며 자신 있어 했지만 필부에겐 생업도 꾸리기 벅찬 나이다. 굳이 나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JP의 대권도전은 정치구도나 지지도 등 현실적으로 어떤 변수를 들이대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스스로도 줄곧 자신의 출마가능성에 손을 저었다. 대신 그는 상황에 따라 “다음 대선에 이 사람이다 싶으면 세컨 샷이 안되면 서드 샷을 해서라도 성의껏 밀겠다”며 내건 킹 메이커론에서부터 얼마전의 영남 대통령론, 여성 대통령론 등을 쉼 없이 꺼냈다.

“과욕을 부리면 안 된다. 대통령이 되려 했으면 벌써 기회가 있었을 것”이란 얘기도 출입기자라면귀에 박히도록 들은 얘기다. 지난 여름 김종호 전 총재대행 등이 JP대망론을 띄우며 바람을 잡을 때도 JP가 무덤덤해한 것은 가능성보다는 ‘선전용’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도 솔직히 그의 대선도전이 당선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이는 찾기 힘들다. 그나마 “3김이 JP를 앞세워 반 이회창 연대를 할 수도 있지않느냐”는 극히 비현실적인 전제들이 늘 붙어있다.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는 JP다. 그렇기에 그의 출마결심에서 역설적으로 그가 처한 사면초가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한 측근은 “우리가 대통령 후보도 없는 ‘불임정당’이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과연 누가 표를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DJP 공조 붕괴이후 당이 와해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린 JP로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을 지키는 것이 절대적이다.


“대안이 없네” 녹록치 않은 정치현실

하지만 최근 그를 둘러싼 정치환경은 매우 어렵다. JP는 DJP 공조붕괴이후의 위기를 ‘한ㆍ자 공조’로 메우려 했지만 의도대로 되지 못했다.

JP는 임동원 전 통일장관 해임안 처리에서 최근 신승남 검찰총장의 국회법사위 출석결의안 채택에 이르기까지 한나라당이 정국주도권을 잡는데 결정적 도움을 줬지만 이회창 총재는 JP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

이 총재는 오히려 그와 손잡는 대신 JP에 등을 돌린 김용환ㆍ강창희 의원을 입당시켜 JP의 텃밭인 충청도 공략의지를 노골화했다. 두 의원의 입당이후 JP는 거의 매일 탈당유혹에 흔들리는 의원들과 충청도 단체장들을 챙겨야하는 고달픈 처지가 됐다.

정치생명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충청권의 지지를 확보하기위해서라도 JP에겐 극적인 반전수가 필요했다. 그는 자신의 대선출마를 그 카드로 택했다.

한 측근은 “JP의 대선도전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로서는 그나마 다른 대안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방선거에서 현재 자민련 소속인 대전시장, 충남ㆍ북지사를 지켜내지 못하면 당은 와해된다”며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전에 의원 빼가기를 하는 등 사실상 JP고사에 나설 것이란 얘기까지 있다”며 초조해 했다.

집안단속과 지방선거라는 1차목표를 넘어서는 2강(强)체제로 이뤄질 내년 대선에서 또다시 캐스팅 보트를 쥐겠다는 벅찬 계산도 숨어 있다. JP는 4년 전에도 대선에 출마, 막판까지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겨루는 모양을 갖췄다.

그는 이어 자신의 지위를 십분 활용, 막판에 후보를 사퇴하고 DJ와 후보단일화를 이루는 승부수를던졌고 그 대가로 ‘국민의 정부 2인자’의 자리를 움켜쥐었다. 총선참패에다 DJP 공조 붕괴로 홀로서기가 힘들어진 JP에게 4년 전 상황은 여전히 탐나는 구도다. 내년 대선을 겨냥, 또 한번 줄타기에 나선 JP의 마지막 도박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동국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12/05 14:31


이동국 정치부 eas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