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분위기도 괜찮은데 나서 봐?"

제3후보 1순위로 거론되며 대선구도 '태풍의 눈'으로

내년 대선 구도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간의 양자대결 구도로 치러질까. 아니면 97년 대선처럼 제3의 후보가 출현해 양자구도를 뿌리채 흔들까. 만약 이런 제3의 움직임이 있다면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는 그 중심에 서있을 것이라고 정가에선 전망한다.

실제로 그의 주변에는 늘 신당설이 따라다니고, ‘영남후보론’이 고개를 들 때 마다 그가 1순위로 거론된다.

영남권 중심의 보수세력들이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제 3후보를 내년 대선에서 내세우는데 그가 바로 박 부총재라는 것이다. 흐름은 약간 차이가 있지만 민국당 김윤환 대표가 ‘반(反) 이회창 연대’의 영남 보수 후보로 그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3당 연합이 깨진 이후에도 허주와 JP가 손을 잡는 구도로 박 부총재에게 강력한 정치적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그는 제3의 후보로 불릴 만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9월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그는 여야 구분없이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질문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상임고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야당후보군 중에서는 이회창 총재에 이어 단연 2위였다. 그는 이 조사에서 13%대의 지지를 얻어 40%를 넘은 이총재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지만 뒤를 이은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 한나라당 손학규 김덕룡 최병렬 의원 등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큰 차이는 없다. 정가에선 ‘아버지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효과에 의한 거품인기’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으나 그는 제3후보 1순위로 거론될 만큼 정치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왕성한 움직임, 대권행보 신호탄 해석

그는 최근 들어 부쩍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에만도 그는 분당포럼(12일) 전주 우석대(15일) 원광대(26일) 삼척대(30일) 등4차례 외부 특강을 했다. 평소 3~4개월 중 1~2차례 특강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왕성한 움직임이다. 정가에선 박 부총재의 대권 행보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는 줄곧 이회창 총재와 거리를 유지하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당내 대선후보 경선이 있다면 출마할 수 있다”고 경선 출마 가능성을 흘리거나, “보스정치 타파”등을 기회있을 때 마다 외쳐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발언은 더욱 각이 서있고, 차기 대통령론에 대한 정리도 끝난것 같다. 박 부총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차기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는 CEO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디지털시대이다. 이제 통치의 개념도 국가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봉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인식은 ‘시대정신론’의 연장선상에서 뻗어 나가고 있다. 박 부총재는 “각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있는데 이런 큰 흐름을 잘 따라가는 정당과 지도자만이 살아남는다. 다윈의 진화론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관성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냉장고가 출현했을 때 얼음장수들은 그래도 빙수를 만들고 얼음은 쓴다며 사업을 바꾸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 시대의 정신은 국가경쟁력 강화 즉 국가경영의 리더십과 화합의 리더십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분열의 리더십과 정파적 지도자의 리더십만이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국가위기의 본질이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박 부총재는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이탈이후 정당개혁을 더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김 대통령이 “민주적 정당운영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여권에서 나오고 있는 당권ㆍ대권 분리론에 대해서도 “야당에서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은근히 이회창 총재를 겨냥했다. 1인 보스체제에 대한 비난은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나오는것인 만큼 이를 극복하는 장치로 당권ㆍ대권 분리는 고려해 볼만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의 움직임은 대권과 관련된 행보로 일관하지만 정작 발언은 더 이상의 선을 넘지는 않고 있다. 신당설에 대해서도 그는 완강한 부인으로 일관한다.

“신당이라는것이 단순히 당명을 바꾼다든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인위적으로 급조하는 것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제3후보론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다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발을 빼고있다.

김윤환 대표가 제3후보로 거론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 김 대표는 한달 전 쯤에도 만났지만 나는 그분의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다.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분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는다”라는 애매하게 피해갔다.


홀로서기에 한계, 관망자세 유지

박부총재의 외연에는 항상 제3후보론이 따라 다니지만 정가에선 박 부총재의 탈당이나 독자 후보 출마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박부총재가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회창 총재에 맞설 만한 수준에는 훨씬 미달하기 때문에 홀로서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특히 그의 인기가 대구를 중심으로한 경북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도 정작 선거에 들어가면 위력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짚는다. 지난 대선때 당시 이인제 의원이 국민신당 후보로 독자 출마하면서 영남권 분열을 일으켜 DJ 당선의 일등공신이 된 점도 박 부총재의 발목을 잡는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박 부총재가 신당을 만든다면 당에서 쫒아나갈 의원들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대선에선 고향인 대구에서 조차 미약한 조직력 등으로 고전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또다른 관계자는 “박 부총재가 위력적인 것은 그가 움직이면 아마도 200만표 이상의 영남표도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가상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선 “민주당 이인제 상임고문이 지난 대선에서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대선에 출마해 엄청난정치적 자산을 만든 것처럼 박 부총재도 어떤 형식이든 대선에 출마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힐 것”이라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이처럼 그를 둘러싼 이 같은 여러가지 가설과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그는 여전히 정계개편설의 한 중심에 서있고 유력한 제3후보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박 부총재는 일단 올해까진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둔채 관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일단 한나라당 경선 출마를 기정사실화 한 상태이다.

여권 내부의 지각 변동이 아직 진행중이고, 큰 틀의 정계개편론이 정가에 떠돌고 있는 마당에 성급한 선택은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부산해진 그의 행보에서 대권을 향한 그의 마음을 읽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태희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12/05 15:13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