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매립·간척사업] 특혜와 환경파괴 매립ㆍ간척사업

농지확보 취지 퇴색, 정부정책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1996년 시화호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거대 간척 사업은 식량 자원인 논 농사 면적을 넓히는 국가 역점 사업이었다. 부족한 식량 자원 조달을 위해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는 역사는 국토를 확장해 식량 자급을 이루겠다는 농업 정책의 근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80년대 서산 간척지 끝물막이 공사에서 유조선을 동원해 바닷물을 막았던 현대 그룹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아이디어는 당시 언론으로부터 ‘정주영 신화 창조’라는 칭찬을 들었을 정도로 국민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대단위 농지 간척 사업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특혜와 비리가 숨어 있었다.

쌀 부족으로 정부가 30% 혼식을 장려하던 1970년대말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가지 식량 자급 아이디어를 고안한다. 서울에서 가깝고 수심이 낮아 매립이 용이한 인천과 서산의 바다를 메워 농지를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박 전대통령은 당시 중동에서 건설업으로 나름대로 입지를 굳히고 있던 현대건설과 동아건설을 지목, 이 두 회사에게 서산과 김포 앞바다를 매립토록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당시 중동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던 건설 중장비들을 거의 폐품 가격으로 감가상각 처리해 들여올 수 있도록 눈감아 줬다. 그 대신 양 건설사가 조성한 땅은 반드시 농업용지로만 사용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러나 그 이후 세차례 정권이 바뀌면서 동아건설과 현대건설은 조금씩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다. 특히 동아건설은 김포 매립지가 서울시와 인접한 데다 인천국제공항이 바로 옆에 건설되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아건설은 농사에 필요한 농수로를 만들어 놓지 않는다고 수차례 농림부로부터 지적을 받았지만 무시했다. 애초부터 상업용지로의 용도 변경을 염두에 두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8년 IMF가 터져 회사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자 새 정부를 상대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간척·매립지, 호시탐탐 용도 변경 노려

농업기반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동아건설이 20여년간 김포 매립지 조성에 투자한 순수 공사 비용은 800억원 가량이다. 여기에 유지ㆍ관리비 등 추가 부대 비용을 포함하면 약 2,500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동아건설은 ‘자금 사정이 악화돼 정부가 김포 매립지를 상업 용지로 전환해주면 외자 40억달러를 유치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용도 변경을 강력히 요구했다.

당시 신공항 앞의 노른자위인 김포매립지를 상업 용지로 허용해줄 경우 동아건설에 떨어지는 이익은 무려 10조원에 달했다.

이는 당시 재계 10위권이던 동아건설이 일약 재계 서열 2위로 뛰어오르게 될 정도의 엄청난 특혜다. 2,500억원 정도를 투자해 원금의 40배나 되는 이득을 보는 것이다. DJ 정부는 당시 외자도입이 절실했음에도 특혜를 베풀었을 때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동아의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간척사업은 이처럼 ‘황금알을 낳는 고부가가치 사업’이라고 말한다. 농지 간척사업은 법적으로‘공유수면 매립법’에 따라 실시된다. 공유 수면은 말그대로 개인의 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다.

이곳에 대한 매립 허가만 받으면 단 한푼도 내지 않고 땅을 소유하게 된다. 바다 매립은 주로 서해안에 집중돼 있는 데 서해의 경우 밀물과 썰물이 주기적으로 있는데다 해수면이 낮아 매립이 쉽다.

김포 매립지는 해수면보다 3~4m 높은 방조제만 쌓아 만들어졌다. 특히 김포는 인천과 서울에 인접해 있어 지가가 높아 부가가치가 매우 높다. 매립자 입장에서는 농업 용지가 아닌 다른 고부가 가치 용도로 전환해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들게 마련이다.

현재 10대 재벌기업 중에 하나인 모 그룹도 인천시로부터 매립된 부지를 헐값에 사들여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그룹은 당초 이 땅을 화약 실험 용지 명목으로 사들인 뒤 현지 주민들에게 보상을 해주고 땅의 용도를 변경,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각종 부대시설을 조성하는가 하면, 일부 지역은 매각하는 방법으로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또 부지의 일부를 은행권에 저당 잡히고 받은 자금으로 현재 그룹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농지 간척사업을 통해 영농 면적을 넓혀 쌀 공급의 안정을 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올해부터 뉴라운드에 대비해 정부가 양곡정책을 증산이 아닌 양질미 정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실제로 내년부터 추곡 수매가가 내려가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 확실하다. 그런 안팎의 상황에서 간척사업을 통해 농사 면적을 넓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바다·갯벌 죽이는 간척사업

대규모 매립ㆍ간척 사업은 환경 분야에서도 엄청난 폐해를 가져온다. 세계 최대 규모의 매머드 간척지라고 자랑하는 새만금 간척 사업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총 4만㏊의 면적을 개발해 2만8,300㏊의 농지와 1만1,800㏊의 호수를 만드는 광대한 사업이다. 1998년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업은 30년간 총 공사비만 무려 6조원을 투입해야 된다.

전국민이 가구당 50만원씩 부담해야 하는 규모다. 현재까지 1조1,385억원이 투입된이 공사는 실제 공사 진척율 19.1%에 머물러 있다. 아직 공사가 끝나는데 10년이 남았고 소금기가 빠져 제대로 농사를 지으려면 20년을 더기다려야 한다.

그렇지만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인근의 바다는 벌써부터 죽어가고 있다. 물고기들의 풍부한 영양소를 공급했던 갯벌이 사라지면서 인근의 어족 자원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새만금 갯벌에서 얻은 수산물과 어패류로 연간 3,000억원의 수입을 올렸던 인근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공사가 계속되면서 최근 몇 년전부터는 서해에서는 없었던 적조 현상까지 생기고 있다. 공사로 인한 분진과 공사 잔해 영향으로 새만금 주변은 관광객들마저 줄어들어 어민들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지고 있다.

시화호의 경우는 환경 오염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시화호는 주변 시화ㆍ반월 공단에서 유입되는 산업 폐수로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질이 오염된 상태다.

요즘도 비가 오는 날 밤이면 공단에서 무단 방류한 오ㆍ폐수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 일쑤다. 건교부는 시화호가 오염되자 인근에 화옹지구 간척사업을 벌여 맑은 물을 공수하려고 했으나 최근에는 이 곳의 수질마저 오염돼 속수 무책 상태에 있다.

현재 화옹지구 간척 사업은 방조제 9㎞중 8㎞가 완공됐으나 물길을 완전히 차단하면 오염이 가중될 것 같이 공사를 중단하고 있는 상태다.


국토의 효율적 이용·관리방안 찾아야

현재 전국적으로 정부가 시행중인 간척 농지개발 사업은 15개 지구 5만9,854㏊로 서울시 크기와 거의 같다. 여기에 매립 면적 8만6,302㏊를 포함하면 서울의 2.5배에 해당하는 광대한 해안이 매립되고 있다.

그러나 부산 해운대 수영만 매립지, 경기도 시흥 오이도 매립지, 영산강 간척사업등 대부분의 매립지 공사들이 중단된 채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용도 변경을 통한 수익 창출이 어렵게 되자 사업 주최들이 손을 놓은 것들이다. 지금은 무모한 매립을 통해 농토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땅을 보다 효율적이고 친 환경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때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12/05 19:33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