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28) 한국과학기술원 양현승 교수(上)

휴먼로봇은 최첨단 과학의 집결체

“안녕하십니까. 저는 카이스트 휴먼 로봇 아미입니다. 카이스트 행사장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 5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 전시장.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개원 30주년 기념행사인 ‘See KAIST 2001’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람 키만한 로봇이 말을 건넸다. 사람 목소리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았지만 알아듣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또렷했다.

이 로봇은 또 ‘대통령님, 저와 악수해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라며 손을 내밀었고, 김 대통령은 웃으며 아미의 손을 잡았다. 동작 역시 굼뜨고 매끄럽지 못했지만 간단한 동작을 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는 듯했다.


국내 최초 휴먼로봇 아미 제작

영화 스타워즈에 나올 법한 로봇 아미(AMIㆍ프랑스어로 친구)는 KAIST 전자전산학과 양현승(49) 교수가 만들었다.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휴먼 로봇으로 평가받고 있다. 휴먼 로봇이란 말 그대로 사람 같은 로봇이란 뜻이다.

“어떤 분들은 아미를 보고 실망한듯 이게 그 휴먼 로봇이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사람처럼, 때로는 사람보다 더 탁월하게 움직이는 로봇을 기대했던 거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미가 세계 최고 수준의 휴먼 로봇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다는 점입니다. 최첨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아미는 얼마나 사람 같을까. 우선 외형. 생김새나 피부는 인체와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머리 몸통 두 팔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두 다리는 없다. 원통형 다리가 대신하고 있다. 신장 155㎝에 몸무게 100㎏. 사람으로 치면 굉장한 비만형이지만 퉁퉁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원통형 다리에 들어있는 전지가 워낙 무거워서 체중이 많이 나간 것이다.

기능도 사람을 제법 닮았다. 직립 형태이며 두 팔과 두 손을 사용할 수 있다. 악수나 물건운반은 물론 진공청소기로 간단한 방 청소까지 할 수 있다. 공상영화에 나오는 휴먼 로봇처럼 청소 식사준비 등 집안일을 척척할 수는 없지만 로봇 가정부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인사해’ ‘청소해’ ‘오른쪽으로 가’같은 50여 가지 단어나 명령을 알아 들을 수 있고 미리 컴퓨터 칩에 내장해 놓은 음성표본에 따라 20대 남자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다.

손님이 왔을 때 ‘아미 인사해’라고 주인이 명령하면 가볍게 머리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식이다.

KAIST의 인공지능멀티미디어 연구실(AIMMLab. 아미란 이름도 자신의 출생지인 이 연구실의 영문이름을 본뜬 것임)에서 만난 아미는 기자에게 ‘웰컴(Welcome)’이라며 영어로 인사를했다.

최근 연구실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위해 언어를 영어로 선택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극히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아미는 어쨌든한ㆍ영 2개 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인공지능기술 체택, 감정표현도

인공지능과 감성 및멀티미디어 기술을 채택해 감정도 표현할 수 있다. 얼굴에 감정이 나타나는 사람과 달리 가슴에 달리 LCD 모니터를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누가 때리거나 괴롭히면 LCD 화면상의 아미 얼굴이 화난 모습으로 바뀌고, 화면도 빨간 색으로 변한다.

또 온몸에 장착한 18개의 초음파 센서와 12개의 적외선 센서, 6개의 압력 센서, 2대의 CCD카메라를 활용해 장애물을 감지해 피할 수 있다. 컴퓨터와 전원이 자체 내장되어 있어 외부 전원공급이나 조작이 없이도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866Mhz 펜티엄3을 비롯한 5개의 프로세서가 아미의 뇌 역할을 한다.

“휴먼 로봇의 선진국으로 일본과 미국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는 연구방향이 상당히 다릅니다. 일본은 휴먼 로봇이 사람처럼 보이고, 행동하게 하는 기계적인 쪽의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사람 같은 감각과 감성에 강점이 있습니다. 아미는 일본과 미국의 장점을 통합한 휴먼 로봇입니다. 국내에서는 아미를 주로 흥미거리란 관점에서 접근을 하고 있지만, 외국에선 로봇 기술의 진보란 관점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양 교수는 우리나라의 지능형 이동로봇의 개척자로 꼽힌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뒤 미국의 명문 주립대인 퍼듀대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고 1988년 KAIST 교수로 부임한 그는 곧바로 교내에 AIMM을 설립하고 로봇 연구에 나섰다.

91년 국내 최초로 감각기능과 인공지능기술을 이용,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CAIR-1을 선보인데 이어 92년에 개량형인 CAIR-2를 93년에는 CAIR-2를 엑스포 행사용으로 개량한 꿈돌이와 꿈순이를 개발했다. 또한 다리가 여섯개인 6족 보행로봇과 각종 곤충로봇도 선보였다.

지능형 이동로봇에서 한창 국제적 성과를 올리던 그는 97년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 열린 로봇학회심포지엄에 참가했습니다. 초청 받은 연구자만 참석할 수 있는 독특한 심포지엄이었는데 일본 혼다가 이 자리에서 휴먼 로봇을 공개했습니다. 로봇은 외양도 사람을 많이 닮은 데다 걷기까지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로봇의 걷기는 균형잡기가 워낙 어려워 난제 중의 난제로 꼽혀왔습니다. 혼다의 로봇을 본 순간 아찔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혼다의 휴먼 로봇 공개는 깜짝쇼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 했습니다.

혼다는 10년 동안 연구를 하면서도 학술지 등에 성과를 발표하지 않는 등 철저한 보안 속에 연구를 진행하다 이날 전격 공개를 했던 것입니다. 이동로봇에 너무 안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휴먼 로봇은 그가 앞서 만든 기계처럼 생긴 로봇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모양과 기능이 사람과 비슷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고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크기만 해도 장난감 수준에서 신장 수준으로 대폭 늘려야 하고 머리와 팔, 다리 등을 장착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좀더 인간다운 로봇 만들겠다"

심기일전한 양 교수는 이후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나 휴먼 로봇 개발은 쉽지 않았다. 휴먼 로봇은 21세기 지능형 기계기술의 집결체라는 표현처럼 정밀기계, 정보ㆍ전자, 컴퓨터, 인공지능, 지능형 센서, 신소재에서 인간의 사고 및 인지과정을 이해하는 뇌 과학까지 최첨단 과학기술을 융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수한시 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기를 4년, 마침내 그는 올해 5월 아미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는 지금 아미의 개량작업을 벌이고 있다.

양 교수는 “지금은 혼다의 아지모가 가장 발달된 휴먼 로봇으로 꼽히고 있지만 아미에게도 아지모에 못지 않은 장점이 있다”며 “더욱 인간다운 휴먼 로봇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12/0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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