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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겨울 부석사

[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겨울 부석사

과거 부석사에 대한 기억은 정갈했다.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을 비롯해 5점의 국보와 당간지주 등 4점의 보물이 있는 ‘보물 덩어리’라는 점에서는 분명 화려하다.

그러나 단청을 입히지 않은 절집, 사색에 잠기게 하는 진입로 등 그 실체는 깨끗하고 단아하다. 무릇 화엄의 세계가 이런것이 아닐까 싶다. 부석사는 여름이나 가을에는 사람들로 넘친다. 고결한 절의 모습이 유혹적인 데다 주차장에서 접근하기가 쉬워서이다.

특히 가을에는 진입로의 노란 은행나무 터널을 지나려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사람이 빠져나간 부석사의 모습은 어떨까. 겨울 산사를 찾았다.

부석사는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해있다. 그러나 자리를 잡고 있는 봉황산이 태백산의 줄기이기 때문에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라고 적혀있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남으로 치달리던 백두대간은 부석사를 정점으로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부석사는 국토의 기운이 요동치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은행나뭇길이다. 줄기에는 물론 길바닥에서도 잎을 찾을 수 없다. 완전히 옷을 벗어버린 나무들만이 지키고 있다. 길 옆 과수원의 사과나무도 몽땅 벌거벗었다. 정감 넘쳤던 사색길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가슴이 시릴 정도로 쓸쓸한 겨울의 정한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의 왼편으로 당간지주가 서 있고 눈을 들면 천왕문이다. 계속 계단을 오른다. 무량수전까지는 모두 108개의 계단. 세상의 모든 번뇌를 잊는 작업이다. 천왕문, 범종각을 계속 지나면 하늘을 받칠 듯 우뚝 서 있는 안양루를 만난다.

난간 아래의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쪽 무량수전 앞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쓰여 있다. 문과 누각의 두 가지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안양’의 의미는 극락. 이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정토이다. 다른 절의 불이문(不二門)과 같다.

문을 지나면 거대한 바위처럼 묵직하게 자리를 잡은 무량수전을 만난다.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건물이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문무왕 16년(676년)에 부석사를 세웠고 무량수전은 고려 현종 7년(1016년)에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건할 때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 된 목조건물의 하나이자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지금 무량수전은 수리가 한창이다. 건물을 빙 둘러 휘장을 쳐 놓았고 기와는 벌써 새 것으로 바뀌었다. 부디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 수리가 되어야 할텐데. 반짝반짝하는 천박함으로 치장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무량수전 옆으로 돌면 절 이름의 유래가 된 부석(浮石)이 있다.

커다란 바위가 몇 개의 돌에 얹혀 마치 떠있는 바위처럼 보인다. 단정한 서채로 ‘浮石’이라는 글씨를 새겨 놓았다.

무량수전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본다. 부석사에 오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렇듯 부처의 세계에서 속세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안양루 아래로 세상이 펼쳐진다. 경내의 요사채와 범종각, 그리고 그 너머로 소백산의 연봉이 눈에 들어온다. 파도가 넘실대듯 다가오는 산의 무리들. 가슴이 탁 트이는 쾌감을 걷잡지 못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매운 겨울바람이 눈물샘에 힘을 보탠다.

<사진설명> 부석사 안양루 너머로 펼쳐지는 소백의연봉들.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이 글로 남겼던 장관이다.

권오현 문화과학부차장 koh@hk.co.kr

입력시간 2001/12/1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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