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그들에게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는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 남발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았다.

취재진의 양사 방문은 1단계 사업 현황과 공사 단계에서의 시행 착오, 조기 착공하는 2단계 공사에서 예상되는 문제점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치권이 선심 정책을 남발하는 것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취합하고자 한 것이지 두 공사의 자체 비리나 업무상 문제점을 캐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취재진이 양사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양사 관계자들이 언론을 대하는 분위기가 너무도 조심스럽다는 것이었다.

고속철도 관계자들은 ‘또 무슨 구실을 잡아 부실 문제를 탓하려고 왔을까’ 하는 눈치였고, 올해 초 개항 당시 언론과 마찰을 빚었던 인천공항 관계자들은 ‘부서 책임자가 부재중이라 정보 제공은 힘들 것 같다’며 보안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워낙 언론과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은 탓에 ‘또 무엇을 파헤쳐 난도질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계를 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이들은 취재 의도를 듣고는 취재에 응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우리도 힘들다. 억울하게 매도하진 말아달라’는 부탁을 빼놓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정작 기사가 나와 봐야 믿을 수 있다’는 눈치였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한편으로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정치권이나 상부의 지시 때문에 비난을 받은 공사 실무진들이 그간 얼마나 많은 속앓이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초대형 국책 공사에 부실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정치적 논리를 위해 시혜성 정책과 조직을 만들다 보니 서로 책임을 미룰뿐 정작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그 사이에 국고만 낭비되고 있다”는 한 시민단체의 지적이 떠올랐다.

문제가 되고 있는 공사의 하부 직원들도 세금을 내고 그 세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음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12/11 17:35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