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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에이즈 감염자의 고백

[에이즈] 에이즈 감염자의 고백

"감방에서도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죽어 가는 환자를 빤히 보고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더군요.” 1994년 1월 교통 사고로 중상을 당해 병원에 긴급 후송됐던 A(29)씨. 한 에이즈 예방 교육장에 얼굴을 드러낸 그는 7년전의 악몽에서 출발했다.

그의 경우는 긴급 수술을 위해 피검사를 하다 보니 에이즈 감염 사실이 드러났다. 꿈에도 생각못한 일이었다. 유흥업소 종사자와 부주의하게 가졌던 성접촉 때문이었다. 정작 문제는 다음부터 였다.


사고로 감염 확인, 병원서도 문전박대

응급실 귀퉁이에다 가해차량 가족을 불러 “저 사람 알고보니 에이즈 환자”라고 소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환자신상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의료인의 기본 법칙을 망각한 작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중상의 몸으로 그 병원에서 쫓기다시피 나왔다.

다른 병원을 찾으니, “병실이 없다”거나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대답 일색이었다. 웬만한 병원에는 이미 연락이 가 있었던 것. 작은 병원에 겨우 입원해 외상을 치유한 그는 그해 8월~95년 1월 지독한 방황을 겪어야 했다. “퇴원하고 나니 진짜 공포감이 엄습하더군요.”

고독감마저 겹쳐, 그는 서너달 깡소주만 퍼댔다. 직장이 없던 그가 허구한날 술을 마셔대니 주위사람들도 멀어졌다. 집으로 들어 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그는 하루 단 한번 컵라면으로 입에 풀칠하고 아무데서나 곯아 떨어졌다. 에이즈에 신경 쓴다는 일은 차라리 사치였다. 감방이 차라리 따스해 보였다.

그는 어설픈 도둑질에 나섰다. 3만원, 6만원을 훔친 대가로 감방에는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 그는 또 다른 덤테기를 써야했다. 0.57평의 징벌방에서 한달 보름 동안 틀어 박혀 일체의 면회가 금지됐다.

교도관들은 틈만 나면 다른 재소자들에게 대놓고 떠들었다. “떠드는 놈은 에이즈 환자 방에 쳐 넣어 버리겠다!”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었으나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자신은 절도 죄때문이 아니라, 에이즈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가 출소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보건소의 담당 간호사 덕분. 교회 집사이기도 했던 그 간호사는 “기도 결과, 하느님으로부터 에이즈 환자를 도우라는 응답을 받았다”며 그를 다독였다. 자신의 손을 잡고 숙소로 데려간 것은 물론 간단한 일자리까지 알선해 주었다.

이후 그는 에이즈 관련 단체의 부탁을 수락, 강연 등 전국적 규모의 예방 홍보 교육 사업에 진력하고 있다. 그는 특히 최근 개설된 에이즈 사이트(www.love4one.com)dp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사회복지사, 병원근무자, 호스피스 봉사자 등 에이즈 관련인들로 구성된 이 사이트의 자랑은 대화방.

따스한 정에 주린 이들은 1달1회 오프 라인 모임을 갖고 있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부터 보통 2~30명의 감염인이 온다.

요즘 그는 수기를 쓰고 있다. 새벽 1시가 되면 그의 고독감은 극에 달한다. 이때쯤이면 숨어 있던 통증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듯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한다.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아는 형한테 ‘먼저 간다. 용서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쓴적이 한두번 아니다.


흥미 아닌 경각심 일깨우는 언론보도 돼야

에이즈 문제와 관련, 기관 종사자들은 뭣보다 언론에 대해 강한 불신을 품고 있다. 언론의 태도가 그대로 일반에 확대 재생산 된다는 것. 흥미 위주의 보도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관계자는 “동성애라는 흥미로운 기사거리에다 에이즈를 양념으로 쳐대는 격”이라며, 특히 경각심 호소는 뒷전인 보도태도를 비난했다.

삐뚤어진 섹스관도 한몫한다. 임질이나 매독에 걸리면 “남자가 한두번은 그럴 수 있다”는 식이지만, 에이즈 걸렸다는 말을 듣게 되면 “저런 죽일놈”으로 돌변하는 이중적 잣대가 에이즈 환자를 숨어들게만 하는 최대의 요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이즈 예방협회에서 2년째 근무중인 이상은 사업 과장은 “친숙해지니 어느 순간부터는 회식은 물론 술도 함께 한다”고 말했다.

감염자 A씨는 “일반인들이 저희를 받아들여 함께 살아갈 날만 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며 간절히 염원했다. “지금 세계 에이즈 사업은 퇴치와 예방의 차원에서, ‘함께 살아가자’로 변했어요”.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aje@hk.co.kr

입력시간 2001/12/1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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