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미국의 승리라 말할수 있나?

중동언론, 반미논조 순화 불구 문명갈등 내연 가능성

그동안 신랄한 반미입장을 견지했던 중동의 언론매체들의 논조가 최근 들어 순화됐다. 그러나 선전선동전에서 미국이 승리했다고 장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워야 하는 전쟁에서 포로란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타입의 인물이다. 그는 몇주전 기자회견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미국 군대는 사람들의 항복을 받을 들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 군대에 항복하려 한다 해도 우리는 거절할 것이다.” 럼스펠드는 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포로를 받아들일 만한 지상병력이 없다. 그 문제(포로처리)는 북부동맹이 알아서 판단해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포로로 잡힌 탈레반 병사를 즉결처분하는 북부동맹군. 중동 언론인 미국의 전쟁범죄 묵인 또는 방조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 언론인들은 럼스펠드의 이 같은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주목할만한 뉴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뉴스전문방송국인 CNN의 앵커 주디 우드러프는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돌아와 이 뉴스를 보도하면서 럼스펠드의 항복불용원칙(no-surrenderrule)을 아예 소개하지도 않았다. 다음날, 미국의 양대 일간지로 꼽히는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는 항복불용원칙을 보도하기는 했지만 거의 단신급으로 처리하는 등 비중을 두지 않았다.


전쟁범죄 묵인 등 의도에 의구심

반면 중동과 이슬람권 국가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이슬람 국가의 신문과 방송은 거의 대부분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럼스펠드의 말은 곧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사람을 죽이라는 야만적인 명령과 다를 바 없다고 해석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유력 신문이며 전세계 무슬림(이슬람 신봉자)들을 독자로 가지고 있는 알 하야트는 럼스펠드의 이 같은 말은 “법률 전문가의 심장조차 전율하게 만들 정도로 냉혹한 것”이라고혹평했다.

카타르의 24시간 뉴스방송국인 알 자지라의 기자들은 북부동맹 군인들이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을 돕기 위해 아프간으로 들어갔던 중동 출신 자원병(용병 등)을 사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럼스펠드가 비록 이 같은 야만적인 처형을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밝혔지만 많은 중동의 언론인들은 럼스펠드의 항복불용원칙은 북부동맹의 만행을 묵인하겠다는 뜻이라고 믿고 있다. 런던에 본사를 알 퀴즈 알 아라비 지의 애브델바리 애트완기자는 “(럼스펠드의 발언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종차별주의자의 증오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중동사람들과 무슬림들이 아프간 전쟁에 대해 보고 읽고 있는 내용은 미국의 방송사 ABC나 미국의 전국 대중지 USA투데이가 보도하고 있는 내용과 상당히 다르다. 알 자지라의 기자들은 미국은 지금은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 전쟁은 사실 전쟁이라기보다는 테러나 다름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지난달 탈레반이 퇴각한 이후 기쁨에 가득찬 거리의 모습을 언론보도를 통해 보았다.

그러나 파키스탄에서 발행되는 권위있는 영자지 던은 최근 이런 내용의 사설을 게재했다. 아프간 남자들이 수염을 깎고, 여성들이 온몸에 뒤집어 쓰던 부르카를 벗은 것은 이를 이슬람 율법이라며 강요하던 탈레반에 반대하고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행동이란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오히려 북부동맹군인의 보복을 피하려는 방어의 목적도 강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에 비교적 우호적인 매체도 있다. 파키스탄의 현지어 신문인 장 앤드 나와이 왓트가 대표적인 매체다. 파키스탄 미국 우호협회의 창설자인 리아즈 아메드는 “이 신문은 늘 사람들이 왜 미국에 화를 내야 하는가를 반문하고 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만약 당신이 (인종과 종교, 역사, 국제역학관계 등이 엉켜 합리적인 해법을 찾기가 대단히 힘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아프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되묻곤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번쯤 생각해보란 뜻이다.


"종교무장도 첨단무기 앞에선 무력"

많은 중동지역 언론인들은 미국이 그동안 견지해온 극도의 이스라엘 편향 정책을 아프간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2주전 야서 아부 힐라라는 요르단의 일간지 알 라이에 미국인들은 북부동맹 군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전쟁범죄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부 힐라라는 “미국은 선전선동 싸움에서 졌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나 탈레반이 사실상 패배하는 바람에 많은 중동과 무슬림 언론매체들은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태도를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할 입장이다. 가장 먼저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부분은 군대에 대한 일련의 보도들이다.

▷ 탈레반이 철수한 카불의 한 건물에 쌓여있는 소총들을 살펴보고 있는 탈레반 병사.

중동과 무슬림기자들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이 탈레반을 꺾을 힘도, 의지도 부족하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영국군과 러시아군이 아프간에서 혼쭐났던 역사를 언급하는 보도도 종적을 감추었다. 이 역사적 이야기는 미국이 아프간에서 패퇴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기 위해 곧잘 인용됐다.

반미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던 파키스탄에서도 언론의 반미 논조가 약화됐다. 카라치뉴스 인터내셔널의 한 칼럼니스트는 지난 주 “종교라는 한 방향으로 짜여진 옷감(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은 현대 과학기술(미국)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알 자지라는 그동안 탈레반의 군사력이 대단하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요즘도 아프간난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방송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탈레반의 극단주의와 성차별을 비난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등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일부 언론의 논평자들은 탈레반을 돕기 위해 개인자격으로 아프간 전쟁에 참전한 수천명의 중동인 지원병 처리문제에 대해서도 예상 밖의 주장을 펴고 있다.

쿠웨이트 일간지 알 라이 알 아암의 사피크 나짐 알 그하브라는 “아프간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중동 문제를 이웃으로까지 확산시키는 일은 이제부터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애당초부터 탈레반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알 그라브라는 가장 반 탈레반 성향이 강했다.

또한 다른 한 언론인은 이슬람의 성전인 코란에 무슬림들은 이슬람 형제국가인 아프간의 탈레반을 도와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는 주장은 코란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물론 언론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중동인 자원병들에 대해 북부동맹이 가혹한 처벌을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북부동맹이나 미국은 자원병들을 출신국으로 되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반미 분위기 여전 "승리 아직 멀었다"

무슬림 언론매체와 대중여론에 일고 있는 이 같은 변화가 미미한 형태로 아직 또렷한 것은 아니다. 많은 아프간 사람들이 최근 몇 주간 기쁨에 들떠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슬람 정치’의 저자 파와즈 거제스는 “그렇다고 아프간 사람들이 미국을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며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은 미국의 전쟁 의도(미국은 테러세력에 대한 응징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슬람 국가들은 이번 전쟁이 십자군 전쟁처럼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문명을 공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음)에 대해 여전히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 미국이 아프간 이외의 다른 중동이나 이슬람 국가를 공격하면 격렬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동과 무슬림 국가의 반미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기는 했지만 선전선동전에서 미국이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한 셈이다.

정리=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12/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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