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마지막 유혹' 간판 올릴까?

기독교게 거센 비난, 진지한 '영화적 논쟁' 필요할때

논쟁적인 영화 ‘예수의 마지막 유혹’이 1998년에 이어 또 다시 극장 개봉과 관련, 홍역을 앓고 있다.

영화가 ‘18세 이상 관람가’등급을 받고 14일 극장 개봉을 확정하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등급을 부여한 것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상영 저지운동을 펼치겠다"고 경고했다.

교계의 반대로 좌절한 경험이 있는 영화 수입사는 이번에도 교계 반대가 더욱 거세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다룬 대부분의 작품은 이런 정도의 시련은 ‘필수적’이다. 소변에 예수상을 담은 안드레 세라노의 작품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종교와 대중에 대한 테러”라는 가혹한 비난은 물론 개인적 테러 위협까지 직면해야 했고, 예수를 흑인으로 묘사한 ‘도그마’ 역시 “치기어린 장난으로 예수를 모욕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 때는 비난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못했다. 흑인들이 “대체 예수가 흑인이면 왜 안 되느냐. 흑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반론을 즉각적으로 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영화도 갈 길이 쉽지는 않다. 박신양의 데뷔작 ‘유리’ 역시 상영될 때 영화를 비난하는 소리가 컸으며,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는 배우들이 머리까지 깎은 상태에서 무산됐다.


마지막까지의 삶의 길 추구한 예수 그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1988년작 ‘예수의 마지막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의 경우는 논란의 여지가 더 많다. 젊은 목수인 예수는 유대인을 못박는 십자가를 만들어 로마군에게 납품한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배달’을 하며 “언젠가 나의 육신으로 죄를 닦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민중 혁명이냐, 복음전파냐를 두고 제자들이 갈등 할 때 예수는 오른 손을 가슴 속으로 밀어 넣어 핏덩이 같은 심장을 꺼내어 든다. “이것은 나의 심장이니라…”.

예수의 사후는 더욱 논란이 될 만하다. “제가 진정 못 박혀야 합니까”라며 마지막 까지도 삶의 길을 추구했던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얼굴이 일그러진다.

예수가 피를 흘리며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난다. 예수의 수호천사라는 그는 하늘의 천사들도 실은 인간의 삶을 동경한다며 인간으로 살아가라고 권유한다.

마리아가 집을 비우면 다른 여인이 그를 유혹하고 수호천사는 “여자는 얼굴만 다를 뿐 모두 하나”라며 그들의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한다.

인간으로 살던 예수는 맹인이 된 베드로가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며 설교를 하는 것을 목도한다.“예수는 죽지 않았다.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러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부활한 예수이다. 나는 그들의 원하는 바를 알고 있다” 임종을 앞둔 예수는 유다에 의해 비로소 수호천사가 악마였음을, 수 십년간을 자신이 악마에 속은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된다.

영화의 이단적 픽션 부분이 적지않음에도, ’이단’이라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장치가 인간의 몸을 빌었던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기 때문이다.

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한 때 가톨릭 신부가 되려 마음 먹었을 만큼 독실한 신자. 모태신앙인이자 영화등급위 심사위원인 전찬일씨는 “진정한 종교 영화”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독 "진짜 예수를 그리고 싶었다"

유물론자이며 무신론자였던 파졸리니의 경우와 마틴 스콜세지의 입장이 천양지차인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감독인 피에르 파울로 파졸리니(1922~1975)는 막시스트이자 무신론자로 1965년 흑백으로 찍은 ‘마태복음’은 그야말로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온’ 과격한 예수의 존재가 그려진다.

그러나 그 형태는 상당히 기독교적 양태를 띄고 있어 한 기독교단체에서 비디오로도 출시했던 작품. 그러나 파졸리니 스스로는 “외면상 가톨릭적이지만 내적으로는 내 자신과 유사한 영화”라고 했을 만큼 영화는 내용을 다지고 볼수록 파격적이다.

‘신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부정했던 파졸리니의 영화가 기독교인들에게 사랑 받은 반면, “진짜 예수를 그리고 싶었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는 탄압 받는 아이러니. 무엇이 진짜 ‘정통’이고 ‘이단’일까. 힘의 논리보다는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은주 문화과학부기자

입력시간 2001/12/12 11:33


박은주 문화과학부 jup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