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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사람들](29) 한국과학기술원 양현승 교수(下)

[미래를 여는 사람들](29) 한국과학기술원 양현승 교수(下)

"로봇에 대한 관심과 지원 아쉬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로봇이 자식과 같습니다.”

1971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로 진학한 양현승 교수는 입학하면서부터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선생님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수업이 재미없었습니다. 회로를 설계하고, 진공관을 배치하는 일들이 삭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생명감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죠.

선생님에게 컴퓨터를 공부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핀찬을 듣기도 했는데 당시로서는 미지의 분야였던 컴퓨터를 생각한 것도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있었기 때문이었던 것같습니다. 인간과 가까운 기술을 연구하겠다는 생각은 이 때부터 강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로봇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을 보면 화가 치밀고, 로봇에 난 흠집을 보면 친자식이 다친듯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국내 로봇 개발의 첫걸음 CAIR-1, 2

88년 KAIST 교수로 부임한 그는 바로 인공지능멀티미디어연구실을 세웠다. 말이 연구실이지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없었기에 빈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열악한 연구환경이 로봇을 향한 그의 연구열마저 꺾을 수는 없었다.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기를 3년. 마침내는 CAIR-1이라는 로봇을 완성했다. 국내 최초로 감각기능과 인공지능기술을 이용,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로봇 제작에 성공한 것이다.

올해 개발한 휴먼로봇 아미와 비교하면 CAIR-1의 외형은 로봇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굴러다니는 커다란 원통형 깡통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로봇은 국내 로봇 개발의 실질적인 출발점이자 휴먼로봇으로 가는 첫걸음이 됐다.

이듬해인 92년 가상현실과 인터넷 기술을 접목,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지능형 이동로봇 CAIR-2를 내놓았다. CAIR-1에 외계인 같은 얼굴을 부착한 개량형이었다.

CAIR-2는 한국 로봇으로는 최초로 95년 캐나다 몬트리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회 인공지능 이동로봇경연대회에 참가해 ‘사무실 공간에서의 배달’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 국제 로봇연구자들을 놀라게 했다.

국제인공지능학술회의와 미국 인공지능학회가 공동주최한 이 대회는 로봇의 음성인식 및 음성합성을 비롯한 인공지능과 신속성, 제작상태등을 따져 순위를 가렸다.

1개의 로비와 11개의 문이 달린 9개의 방 앞에서 심사위원들의 무선마이크 명령에 따라 물건을 신속ㆍ정확히 배달한뒤 이를 보고해야 한다. ‘이 방을 나가 왼쪽으로 돌아 몇 번째 골목에서 다시오른쪽 몇번째 방에 있는 사람에게 이 서류를 주고 오라’는 식이다.

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어린이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로봇 꿈돌이와 꿈순이는 CAIR-2를 엑스포 분위기에 맞게 개량한 형태. CAIR-1과 CAIR-2, 꿈돌이와 꿈순이는 모두 한 핏줄인 셈이다.

“로봇을 열린 공간에 풀어놓은 것은 지금도 연구자나 개발자들이 무척 꺼립니다. 공개를 하는 경우는 많지만 아무나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만져볼 수 있도록 풀어놓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실험실이 아닌 실전에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엑스포 당시 꿈돌이와 꿈순이를 3달 정도 풀어놨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떻게 그런 대담한 결정을 했을까 하고 저 자신도 놀랍니다.

그런데 꿈돌이와 꿈순이는 어린이들과 술래잡기도 하고, ‘월리를 찾아서’라는 어려운 게임도 무난하게 소화해냈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로봇 개발의 획기적인 전기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내에서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입니다.”


국내보다 외국 관계자들 더 관심

당시 꿈돌이와 꿈순이에 대한 국내와 외국의 언론보도는 방향이 전혀 달랐다. 국내에선 대부분 ‘엑스포에 가면 로봇이라고 자칭하는 재미난 장난감을 볼 수 있다’는 지나가는 여흥거리로 소개되었지만 일부 외국 언론들은 과학기술이란 측면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대대적으로 취재해 특집으로 방송했고, 영국의 BBC도 비중있게 다루었다. 심지어 이 즈음 기자를 사칭해 꿈돌이와 꿈순이의 기술을 캐내려는 외국 산업스파이까지 접근하기도 했다.

“좋은 국제적 평가에 취했다고나 할까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능형 로봇에 안주했던 것같습니다. 그러던 차에 97년 일본의 혼다사의 휴먼 로봇을 보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인간과 가까운 기술을 연구하겠다던 젊은 시절의 각오를 되새기며 연구실에 다시 칩거하기 시작했죠. 이 덕에 국내 최초의 휴먼로봇 아미를 올해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양 교수의 로봇들이 최근의 대통령 3명을 모두 직접 만난 것이다. CAIR-1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 꿈돌이와 꿈순이가 김영삼 대통령, 아미가 김대중 대통령을 대면할 ‘영광’을 누렸다. ‘언론에 실릴만한 그림이 되니까’불려가 ‘재롱’을 떤 것이다.

양 교수는 “최고 지도자가 미래를 이끌어 갈 과학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면서도 “이런 관심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로봇 연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커지고는 있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쉬운 상태입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국운을 걸다시피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로봇이 미래사회의 기둥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더욱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체코의 희곡작자 카렐 카펙이 1921년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조인간의 이름으로 처음 사용한 로봇은 2차세계 대전 직후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돼 1962년 미국 자동차 회사인 GM이 산업용 로봇을 채택한 이후 단순하면서도 정밀한 조립을 요하는 전자 자동차 공정 등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100만대 이상의 로봇이 생산현장에 사용되고 있다. 로봇의 효용이 입증된 것이다. 월급을 주지 않는데도 불평을 하지 않고 24시간, 그것도 단순조립 같은 일은 인간보다 더 잘하기 때문이다.

양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로봇은 산업용 로봇보다 휠씬 진화된 지능형 로봇 또는 휴먼 로봇이다.

단순 작업밖에 못하는 산업용 로봇과 달리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는 가정용 로봇에서 미세혈관 속이나 우주공간 등 극한상황 속에서 작업을 하는 마이크로로봇, 시각장애인등을 도와주는 복지용로봇, 의사대신 수술을 집도하는 의료용로봇, 위험한 화재 진압 등에 투입되는 방재용로봇, 원자로청소로봇, 해저탐사로봇, 전투로봇등에 이르기까지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인공지능의 개발 추이로 볼 때 21세기에는 로봇이 주요 노동력으로 활용되는 ‘스틸컬러’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머지 않아 본격적인 로봇세장이 열릴 것“이라는 양 교수는 “정말 사람 같은 로봇을 만들어 세상에 큰 기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kckim@hk.co.kr

입력시간 2001/12/1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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