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 용산구 보광동(普光洞)

보광동(普光洞)! 한마디로 불교지명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지 1,600여년의 세월이 넘다보니, 우라 땅이름에는 불교지명이 꽤 많이 있다. 이를테면, 금강산, 천태산, 마니산, 영취산, 천축산, 법전, 도솔, 무량 등과 같은 땅이름들이다.

‘보광(普光)’이라는 땅이름은 신라 진흥왕때 신라군이 북진하여 고구려군을 토벌하고 칠보강(오늘날 임진강) 이남의 영토를 빼앗은 뒤, 보광도사(普光道師)가 이곳에 큰 가람(보광사)을 짓고 수도한데서 비롯됐다.

이 보광사는 조선조말까지도 존속했으며, 이 가람에서 기우제와 국태민안을 비는 제사를 봄, 가을로 지냈다고 한다. 보광동산 4번지 일대가 기우제를 올리던 우사단(雩祀壇) 자리다.

한편, 보광동에는 용산 둔지미(오늘날 국방부 청사 뒤 서쪽)에서 살던 사람들이 일제때 병영시설로 인해 이곳으로 이주해 마을을 이루니 웃보광이(새동네)이다. 둔지미에서 이주해올 때 그들이 마을신으로 모시던 제갈(諸葛)선생을 함께 모셔와 안치시킨 것이 웃당 또는 부군당으로 오늘날까지 그 당집이 남아 있다.

또, 보광동 28번지에는 묘정비(廟庭碑)가 서 있는데, 이 자리는 옛 사충서원(四忠書院)이있던 곳이다. 사충서원은 처음에는 노량진(오늘날 사육신묘 인근)에 있던 서원으로 1927년에 이곳으로 옮겨왔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퇴락하고 말았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남았던 서원이나 지금 그 자리는 도시화에 밀려 신축사화(辛丑士禍)의 내력을 새긴 묘정비만 주택가 틈바구니에 외로이 서있다.

조선조 영조 원년(1725)에 건립된 사충서원은 신축사화로 희생된 노론의 4대신(김창집, 이건명, 조태채, 이이명)을 배향했던 곳이다.

보광초등학교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마치 이슬람 나라에라도 와있는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골목에 늘어선 ‘무슬림 정육점(양고기 판매)’을 비롯해 살람(터키 식당), ALK무슬림(방글라데시식당), 알라바바(이집트 식당), 모글(파키스탄 식당), 우스마니아(파키스탄 식당), 아시안 아트&카페트(이슬람식 카페트)등이 즐비하다.

이유는 1976년에 이곳에 들어선 모스크(이슬람 서울중앙성원)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이슬람 국가들과의 인연은 멀리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용설화에 나오는 처용이 아랍에서 왔다든지, 신라능의 석조물들이 아랍인을 닮았다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 말고도 ‘고려사’에 1024년 서역 대식국(大食國:사우디 아라비아), 안식국(安食國:이란) 사람들이 토산품을 가지고와 벽랑진(碧浪津:예상강 어귀에 있던 고려때 무역항)에서 무역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고려가 몽골지배에 들어가면서 원나라에 있던 무슬림들이 고려에 귀화한다. 그 보기가 1274년 충렬왕비 노국공주의 시종으로 따라왔던 삼가(三哥)는 무슬림으로 고려여인과 결혼 계급이 선무장군에 이르니 바로 덕수(德水) 장(張)씨의 시조 장순룡(張舜龍)이다.

이밖에도 고려에 귀화해 정3품 정6품 등 고관에 오른 무슬림 기록은 많다. 또 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에 나오는 ‘회회(回回)아비’도 무슬림을 가르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광동 일대에는 옛 보광사를 비롯, 서원터, 부군당, 모스크 말고도 교회(보성, 보광, 섬광), 성당(이태원)등 온통 종교 박물관이라 할만큼 각종 종교시설이 즐비하다. ‘보광(普光)’, 글 뜻대로라면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넓게 빛난다’는 땅이름에 걸맞는다.

입력시간 2001/12/1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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