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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88)] 지신(地震)①

[재미있는 일본(88)] 지신(地震)①

1995년 1월 17일 새벽 일본 효고(兵庫)현 남부의 고베(神戶)시와 니시노미야(西宮)시 등을 대지진이휩쓸었다.

흔히 '한신(阪神) 대지진'으로 불리고 정식으로는 '효고현 남부 대지진'으로 불리는 이 지진으로 6,300여명이 목숨을 잃고 4만여명이 다쳤다.

고가도로가 교각의 철근을 드러낸 채 길게 옆으로 드러누운 사진이 상징적으로 보여 준 엄청난 파괴력은 20만여호의 주택을 절반 이상 무너뜨렸다. 10조엔에 달하는 복구 비용을 퍼부은 결과 최대 피해지역인 고베가 완전히 옛모습을 되찾는 등 지진의 상처는 겉으로는 말끔히 씻겼다.

그러나 1923년의 간토(關東) 대지진 이래 처음인 거대 지진은 피재지의 생존자에게 지울 수 없는 악몽으로 남은 것은 물론, 일본열도 전체에 지진 공포를 상기시켰다.

사실 일본에 살면서 ‘지신(地震)’의 공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날 그날의 생활에서는 거의 잊고지내지만 자다가 침대가 흔들려 깜짝 놀라 일어나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지진의 불안은 뇌리에 깊이 파고들게 된다.

일본인의 잠재의식에는 지진에 대한 공포가 늘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일본의 ‘만숀(Mansion)’은 성냥갑처럼 앞 뒤 폭이 좁고 옆으로 긴 우리 아파트와 달리 사방이 대체로 비슷한 정방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최근 대도시 도심에 잇달아 세워지고 있는 초고층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지진이 어느쪽으로 치고 들어 올 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한쪽 폭을 좁게 짓는 것은 자살 행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날렵한 고층 건물에 익숙한 우리 눈에 일본의 대형 건물은 둔한 모습으로 비치게 된다.

도쿄(東京)의 집값에도 무의식중에 지진 불안이 반영돼 있다. 도심과의 거리나 주거 환경 등 일반적인 집값의 결정 요인으로 치자면 상위권에 들어야 할 고토(江東)· 에도가와(江戶川)구의 집값은 신주쿠(新宿)· 시부야구의 절반 정도이다.

해안에 가까운 지역이 대부분 매립지여서 지반이 무른 반면 도쿄 서쪽으로 갈수록 암반층이 두터워 안전하다는 고려가 바닥에 깔려 있다. 약간 언덕진 곳에 자리잡은 아카사카(赤坂) 나미타(三田), 아자부(麻布) 등지의 집값이 비싼 데도 비슷한 이유가 작용했다.

재빠른 지진 보도도 눈에 띈다. 전국 어디에서든 지진이 발생하면 늦어도 1분 이내에 모든 TV 방송이 긴급뉴스로 전한다.

일본 지도에 진원지와 주변 각지의 진도(震度)를 일목요연하게 표시하고 지진의 규모를 매그니튜드(M)로 알려준다. 전국의 지진계와 연구기관, 보도 기관을 연결하는 자동 통보 시스템이 오래전에 정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 기상청의 독자적 진도 등급에 의한 이 진도 표시를 보고 일본인이라면 누구든 쉽사리 피해 정도를 예측할 수 있으며 매그니튜드(M)를 보고 지진의 규모를 상상한다.

지진에 대한 이런 일본인의 상식은 우리의 무지와 비교하면 크게 두드러진다. 우리 신문과 방송은 지진 보도에서늘 리히터 규모를 알린다. 리히터 규모는 매그니튜드와 마찬가지로 지진으로 방출되는 에너지의 크기를 가리킬 뿐 지표면의 진동, 즉 지진동의 크기를 알려주지는 못한다.

이는 우리의 매스컴조차 애초에 진원에서의 지각 파괴 활동을 가리키는 지진과 이런 지진의 결과로 지표면에서 일어나는 지진동을 혼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큰 소리를 지른다고 모든 사람의 고막이 같은 크기로 떨리는 것은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고막에 전달되는 음파의 크기는 크게 다르다.

고막의 떨림에 비유되는 지진동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진도 등급이며 실제로 인간의 관심은 매그니튜드보다는 진도 등급에 쏠리게 마련이다.

한동안 그대로 갖다 썼던 일본 기상청의 진도 등급이 싫다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메르칼리 진도 등급'이라도 갖다써야 독자나 시청자의 관심에 답할 수 있다.

더욱이 리히터 규모의 수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100, 200 등의 진수(眞數)가 아니라 10의 몇제곱이냐를 가리키는 대수(對數), 즉 로그(log)값이어서 수시로 착각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리히터 규모 8.4의 지진이 6.4의 지진에 비해 어느 정도크기일까를 생각할 때 흔히 1.3배 정도라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대수로 2의 차이는 'log100=2'여서 실제 방출된 지진에너지로는 100배에 이른다.

물론 지진동의 크기를 나타내는 진도 등급조차도 지진의 피해, 즉 파괴력을 그대로 나타낼 수 없고 지진동의 최대가속도, 지반의 구조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도 최소한 인간이 피부로 느끼는 진동의 크기를 알려 주는 의무를 일본의 매스컴은 지키고 있다. 지진에 대한 국민적 호기심의 차이가 빚어 낸 결과이다. (계속)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1/12/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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