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01년] 목소리 커진 '아줌마'

여성파워 급증과 남성권 실추, 넓어진 '아줌마 세상'

태초에 남성, 여성이 있었다.

남성은 밭(田)에 나가 힘(力)쓰고 여성은 다소곳이 앉아 아기에게 젖 먹여야 (계집녀라는 한자의 제자 원리) 했다. 극단적으로는 여성 할례라는 폭력적 관습으로까지 나아갔던 그 불평등 구조는 여성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반세기전 프랑스 여작가 시몬 드 보봐르는 “여자에게도‘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소리 높였다. 이후 참정권 획득과 피임약의 보급 등 시대 변천에 힘입어 여성의 지위는 사회적, 생물학적 차원으로 높아져 왔다.


페미니즘의 공식적 자리매김

2000년 9월 시작해 올해 3월 20일 막을 내린 MBC-TV의 매주 연속극 ‘아줌마’(정성주 극본, 장두익 연출)는 거기서 더 밀어 부쳤다. 그것은 21세기 우리 사회의 키워드는 페미니즘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마당이었다.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던 주부 오삼숙(원미경 분), 부인이 무식하다며 구박하는 위선적 대학 강사 장진구(강석우 분). 이 시대, 둘의 싸움은 애초에 끝나 있었다.

코믹 홈 드라마라는 간판을 내걸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있는 무게 중심축의 변천을 정확히 집어 내고 있었다. 국민 드라마였다. 오죽하면 “장진구 같은 놈”이라는 말이 남자가 들을 수 있는 최대의 욕으로 굳어졌을까.

물론, 문제의 장진구가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전임 강사 자리를 사고 음주 운전도 돈으로 무마하려는 등 비속하기만 한 인간으로 그려졌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추이를 정확히 집어 내고있었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 제공되는 남성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장진구의 친구로, 대중문화 평론을 한다는 박재하(송승환 분)도 사소한 일로 친구를 욕하는 강퍅한 인간일 뿐이었다.

21세기다. 이제 남성은 집안 울타리가 편안해졌고, 여성은 활보한다. 세기가 바뀌는 것 처럼, 사람들은 그 같은 변화를 너무도 자연스레 받아 들인다.

이제 남편이 집안일을 하고, 부인이 회사일을 하는 경우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성 역할이 역전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 잡지 ‘이프(If)’, 동성애자 모임 ‘친구사이’ 등 공식ㆍ비공식 부문을 가리지 않고 우리 시대의 섹스는 재주 넘기가 한창이다.

영화ㆍ노래ㆍ광고 등 거의 전방위적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성전환자 하리수를 보라.

아줌마라는 새로운 성(性)은 지금 평등의 공간, 인터넷에서 대약진을 준비중이다. ‘대한민국 힘있고 아름다운 아줌마들의 인터넷 세상’을 꿈꾸는 어줌마 닷 컴(www.azumma.com)이 펼치는 세상이 그것. 이곳은 아줌마라는 제3의 성이 발전적 완충 지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인터넷으로 넓혀가는 평등의 공간

알뜰 쇼핑 정보,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실천적 제안, 컴퓨터 등 각종 정보, 국제 정세담, 때로는 농밀한 섹스 경험담(‘우리부부 변태일까?’) 등 아줌마 닷 컴의 관심 영역은 거의 무제한적이다.

점점 소원해져 가는 40대 부부의 솔직한 고백 편지 ‘진짜 위기다’ 등은 청소년 사이트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이를 제공한다.

자극적인 성(性)과 숙연한 생(生)이라는 일견 이율배반적인 문제가 아줌마를 만나, 자연스레 공존하고 서로를 다독인다.

특히 요즘 딱 맞는 콩트 ‘망가지는 연말연시’나 캠페인 ‘자기정체성을 찾는 방법’ 등은 자칫 부화해 지기 쉬운 인터넷 공간의 유용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인터넷상의 아줌마 사이트는 이밖에도 기혼 여성의 취업, 가족 민감 요법 소개 등 유용한 정보를 깊이 있게 제공하고 있다.

‘여성 파워의 상승=남성권의 실추’라는 제로 섬 게임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성정체성 재확립이라는 여울목에 있다. 우리 시대, 아줌마들이 더욱 고민하고 분발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12/20 16:39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