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01년] 2001년 빛낸 영광의 얼굴들

혼탁한 세상에서 샛별처럼 빛난 희망의 메신저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심란하다. 충실하게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야구사상 첫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 출전해 국민들에 희망을 안겨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김병현 선수, ‘리니지’ 게임 하나로 전세계 온라인 게임시장을 석권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 53년 건군 이래 첫 여성 장성에 오른 양승숙 장군, 그리고 혼탁한 정치계에 새 바람을 몰고 온 개혁파 정치인들이 바로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경기 불황과 ‘게이트 정국’으로 혼란한 국내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귀감을 보임으로써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김병현(애리조나 D백스 투수)

마운드에 닿을 듯 말듯한 낮은 자세에서 위력적인 투구를 뿌려대는 ‘핵잠수함’ 김병현의 경기를 보는 한국 팬들의 마음은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 조마조마하다.

프로야구의 최고 무대라는 메이저리그, 그것도 2m에 가까운 거구의 강타자들을 상대로 볼을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는 고국 팬들이라면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마운드에 선 그의 얼굴에는 항상 자신감과 비장감이 공존한다.

22세의 팀내 최연소. 그는 올해 전세계 야구팬이 보는 앞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본인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이를 지켜본 고국 팬들에겐 자부심이자 훈훈한 미담이었다.

올해 월드시리즈의 최종 7차전이 벌어진 11월5일 피닉스의 뱅크원 볼파크. 4, 5차전에서 마무리에 연속 실패해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던 김병현은 팀이 9회말까지 1-2로 역전을 당해 패색이 짙자 앞으로 돌아올 패전의 멍에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팬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결국 승리의 여신은 애리조나를 택했고, 김병현은 모든 멍에를 훌훌 떨쳐 내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월드시리즈를 품에 넣는 영광을 안았다.

98방콕아시안게임 중국과의 준결승전에서 6이닝까지 8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며 퍼펙트 게임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이듬해 메이저리그를 밟은 김병현.

2000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성장한 그는 올해에는 애리조나의 특급 마무리로 자리를 굳혔다. 그는 최근 야구 전문주간지 ‘베이스볼 위클리’가 선정한 NL리그 투수 순위에서 박찬호(15위)에 이어 17위에 랭크 됐다.

내년에도 ‘작은 거인’ 김병현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질 것임에 틀림없다.


김택진(엔씨소프트 사장)

전자공학도였던 김택진 사장이 엔씨소프트를 설립한 것은 1997년 3월. 기업용 솔루션을 개발하는 이 벤처기업이 ‘리니지’라는 게임 소프트 웨어 하나를 개발하면서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뒤바뀐다.

김택진 선장을 앞세운 엔씨소프트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다. 1998년 한해 9억원에 그쳤던 매출액이 유료화에 들어간 이듬해 80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582억원으로 폭증했다.

올해는 총 1,200억원의 매출 달성이 확실시 된다.

특히 게임 사업은 초기 개발비가 많이 들지만 일단 완성되면 추가 자금이 거의 들지 않아 수입은 반 이상이 이익으로 남는다. 현재 이 게임은 400만 유료 회원에 국내 동시 접속자수만 15만명에 달한다.

이로 인해 주가는 액면가(500원)의 300배나 되는 15만원선까지 치솟아 코스닥 황제주로 등극 했다. 닷컴 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를 닷컴 벤처 기업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 케이스로 꼽는다.

엔씨소프트의 성장과 함께 김 사장도업계의 거물로 성장했다. 김 사장은 올해 상반기 한 증권 분석 전문회사가 조사한 국내 시가 총액 증가 순위에서 803억원의 평가 차익을 거둬 코스닥부문 1위에 올랐다.

이는 전체 순위에서도 대기업 오너들을 제치고 5위에 오른 놀라운 기록이다.

김 사장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일화가 있다. 김 사장은 지난해 미국의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가 내놓은 3,000억원의 매각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돈보다 세계적인 기업을 키우겠다는 패기가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다.

김사장은 대만 홍콩 중국 미국 일본 등에 수출을 성공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글로벌 온라인게임 퍼블리셔로 성장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곽경택(영화 '친구'감독)

올해 유행한 ‘조폭 신드롬’을 만들어 낸 주인공. 부산 출신 고교동창들이 조직폭력배로 성장하면서 겪는 갈등과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올해 국내 영화계에 조폭 바람을 몰고 왔다.

곽경택 감독이 제작 후기에서 ‘현란한 테크닉이나 기가 막힌 영화 문법도, 진한 멜로적 감성도 아닌, 기름기 뺀 살 냄새 나는 작품’이라고 밝혔던 이 영화는 말 그대로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진지함만으로 공전의 히트를 거두었다.

전국 관객수만 무려 820만명. 순수 제작비 18억원과 마케팅 비용 10억여원 등 총30억원을 투입해 무려 415억원이라는 엄청난 매표 수입을 올렸다.

곽 감독은 자신의 세번째 작품인이 ‘친구’ 하나로 일약 스타 감독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얻은 명성에 비해 그가 얻은 수입은 그리 많지 않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곽 감독이 흥행에 성공하고 받은 액수는 2억~3억원 정도의 보너스가 전부다.

감독으로 참여해 연출료만 받은 것이다. 이는 제작과 감독을 병행해 돈방석에 앉은 ‘쉬리’의 강제규 감독과 비교 된다.

곽 감독은 감독으로서는 이제 갓신인 딱지를 뗀 정도다. 1996년 뉴욕대를 나온 그가 처음 만든 작품은 단편 ‘영창 이야기’(1995년). 이 작품은 한국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 클레르 몽페랑 국제 영화제에서 공식 경쟁작으로 선정됐다.

1997년작인 ‘억수탕’도 상파울로 국제 영화제 공식 경쟁작으로 선정됐고, 이듬해 만든 ‘닥터 K’가 브뤼쉘 국제 영화제와 캐나다 밴쿠버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세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곽 감독은 10월부터 경기중 장렬하게 사망한 김득구 선수를 소재로 한 영화 ‘챔피언’ 제작에 들어갔다.


양승숙(여성 장군)

“여군 전체를 대표하는 장군으로서 국가와 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국군 창설 53년 만에 첫 여군 장성에 오른 양승숙 장군의 말이다. 양 장군의 장성 진급은 단순히 개인적인 영광에 그치지 않는다.

그간 남성 중심의 사회, 특히 남자들의 전유 지대라 할 수 있는 군에서 처음 배출된 장군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60만명에 달하는 우리 군인들중에 여성은 0.5%에도 못 미치는 2,700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의 장군 진급은 군 최고 통수권자의 의지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충남 논산 출신인 그는 대전 호수돈여고에 다닐 때 영화 ‘매시’에서 야전 병동의 간호장교가 활약하는 모습에 반해 전남대 간호학과에 지원했다. 1973년 임관한 그는 1986년 중령으로 진급, 국군 논산ㆍ광주 병원 간호부장, 1군 사령부 간호관리 장교 등을 역임했다.

이어 94년 대령으로 진급해 국군간호사관학교장을 거쳐 육군본부 간호병과장으로 재직했다. 6자매 중 셋째인 그는 동생 2명도 현재 간호사로 재직중이다.

대학 재학시절 만난 남편 이병웅(56ㆍ충남교육청 장학사)씨 사이에 2녀를 두고 있는 양 장군은 현 정부 들어 구조조정으로 간호사관학교가 존폐 위기에 몰렸을 때 치밀한 계획으로 이를 극복, 지난 5월 이 학교 존치케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양 장군은 “여성 장군의 탄생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높아지길 기대한다”며 “간호병과지만 병과를 초월해 여군 정책 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개혁파(정치쇄신에 나선 여야 의원들)

예년과 마찬가지로 정치권은 올해에도 국민들에게 절망과 체념을 안겨줬다. 그런 와중에서 일부 여야 개혁파 의원들이 보여준 정치 쇄신을 위한 노력은 국민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현재 민주당에는 소장파와 개혁 성향이 강한 의원들이 중심이 된 5~6개의 개혁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초선 의원 모임인 ‘새벽 21’을 비롯해, ‘바른정치실천연구회’, ‘국민정치연구회’, ‘열린정치포럼’, ‘여의도정담’ 등이다.

이들은 ‘게이트 정국’으로 여권이 여론의 수세에 몰린 10월말부터 연대 활동에 들어가 ‘1인 보스 정치 타파’, ‘당내 민주화’ 등의 정치 관행을 타파하는 정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영향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임했으며,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이 물러나기도 했다.

여기에 탄력을 받아 민주당소장파와 개혁 성향의 중진의원 34명은 지난달 21일 ‘민주당 쇄신연대’를 발족, 특대위에 대한 압력 세력으로 활동 하고 있다. 이들은 대선논의를 넘어선 제도 쇄신, 지역 정당에서 전국 정당으로 탈바꿈, 1인 지배 정당에서 민주 정당으로의 쇄신 등을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이부영 부총재, 김홍신서상섭 의원 등 비주류에 속하는 개혁파 의원들이 개혁 그룹을 형성하고 있지만 당내 세력은 미약한 편이다.

최근 여야 개혁 성향의 의원들이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정개모)를 결성하는가 하면, 최근 정대철 김근태 정동영(이상 민주당) 이부영 김덕룡(이상 한나라당) 등 여야 중진 의원들이 여야의 소모적인 정쟁을 중단하고 정당과 정치 개혁을 촉구하는 등 개혁파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12/20 17:27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