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30)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신승철 교수(上)

"나도스핀닉스로 과학혁명에 도전"

“우리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습니다. 과거에는 모방력 내지 응용력으로 족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창의력이 요구됩니다. 더 나아가 세계 과학기술계를 선도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스핀정보물질연구단(Center for Nanospinnics of SpintronicMaterials).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노(Nanoㆍ10억분의 1㎙)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한국과학기술원의 신승철(50) 물리학과 교수가단장으로 이끌고 있는 연구그룹의 이름이다. 이름은 생경하지만 간단한 연구그룹이 아니다.

과학기술부가 1998년부터 기초과학의 진흥을 위해 야심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하나다. 98년에 1단계 과제로 선정된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지난 3년간의 연구성과에 힘입어 2단계 과제로도 선정된 강팀이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학문분야 제안해야"

“이름이 왜 이렇게 어렵냐구요. 학문적 포부랄까. 욕심이랄까. 우리나라도 이제 새로운 학문 분야를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노스핀닉스(Nanospinics)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신조어를 연구단 이름에 집어넣다 보니 일반인에겐 좀 생소한 형태가 된 것입니다. 세계적인 연구그룹으로 성장하겠다는 제 포부를 담은 것입니다.”

나노스핀닉스란 뭘까.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극미세 단위인 ‘나노’와 회전을 뜻하는 ‘스핀’에 학문이란 의미의 ‘닉스’를 붙인 것이다. 나모는 워낙 미세해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조차 1나노미터(nm)에 두세 개 밖에 못 들어간다.

“자성체는 나침반 자석 스피커 등에서 MRI 등 첨단 의료기기,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신용카드의 정보저장물질에 이르기까지 전천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성체에 대한 학문적 이해는 다른 금속체나 반도체에 비해 뒤떨어져 있습니다. 규명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자성체의 자기적 특성이 수 나노미터라는 아주 미세한 거리에서 작용하는 원자 스핀간의 교환상호작용(exchangeinteraction)에 따른 협동현상(cooperative phenomena)에 의해 좌우됩니다.

미크론(10만분의 1㎙) 수준으로는 제대로 실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연구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노 기술의 발전으로 미크론보다 1,000배 정도 작은 크기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노스핀닉스는 이 같은 나노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활용해 자성체에서 발생하는 회전현상을 나노 수준 차원에서 연구해 원리를 규명하고 활용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나노기술은 생명공학과 함께 국제적인 개발경쟁이 가장 치열한 첨단분야로 꼽힌다. 선두주자인 미국은21세기 3대 중점 연구과제로 나노기술을 선정하고 올해 4억2,000만달러(약 5,500억원)의 정부 예산을 쏟아 부었다.

미국 국회 도서관의 모든 장서를 각설탕 크기에 저장할 수 있는 기억용 소자, 암세포를 검출할 수 있는 초감도 생체센서, 기존의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보다 100만 배 가량 강력한 프로세서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 역시 미국과 비슷한 규모인 4억달러(5,2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며 유럽은 팬톰 프로그램 등 유럽연합 회원국이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같은 거금을 나노기술 개발에 투입할 수는 없다”는 그는 “한정된 재원과 연구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노스핀닉스는 골리앗(선진국)을 꺾은 다윗의 지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노기술은 21세기 핵심과학기술

세계 각국이 나노기술 개발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나노기술이 21세기의 핵심기술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노기술을 이용하면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를 마음대로 조작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성질의 물질을 만들거나 고성능화 할 수 있다. 예를들어 쇠의 원자를 다시 배열해 원자가 간격을 좁히면 강도가 일반 쇠보다 7배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컴퓨터 생명공학 신약 소재 등 거의 모든 분야에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나노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서울대 물리학과의 국양 교수가 지난 9월 과학기술부에 제출한 국가나노기술개발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나노기술 수준은 42점으로 미국(164점) 일본(151점) 유럽(149점) 등3강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노기술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괄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신 교수와 연구단이 99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나노자성다층 박막 시스템의 광자기 기록 신소재와 올해발표한 광자기 현미경자력계도 이런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양쪽 모두 자성체의 회전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광자기 기록 신소재는 0.5옹스트롬(빛의 파장이나 물질내의 원자간 거리 등을 나타내는 단위. 원자와 분자의 크기나 결정의 격자 간격이 1옹스트롬 정도이다) 정확도로 박막 두께를 제어, 각 물질을 나노미터 두께로 번갈아 증착하여 만든 물질이다.

광자기(光磁氣)는 빛에 의해 제어되는 나노 자성체 물질로 자성체의회전 방향에 따라 디지털 정보를 저장하는 것으로 소위 A드라이브로 불리는 컴퓨터의 플로피 디스크보다 1,000배 이상의 정보 집적밀도를 유지할수 있어 차세대 고밀도 디지털 정보저장 기술로 급부상하고 있다.

테라바이트(기가바이트의 1,000배)급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나 광자기디스크의 기록물질로 활용할 수 있고, F램과 함께 차세대 메모리로 주목받고 있는 M램의 핵심물질이다.

광자기의 이 같은 괴력은 회전현상에서 나온다.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는 원자들이 모이면 N극 혹은S극의 성질을 띠는 작은 자기장이 생기는데 이 자기장을 빛의 세기로 제어해서 N극, S극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 바로 디지털 정보저장매체가 된다. 디지털정보저장매체는 이진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스핀엔지니어링 시대로 바뀔 것"

그는 박막제조 과정에서 수직자기이방성(자성을 가진 물질의 원자는 수직 혹은 수평으로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특성)을 갖는 여러 니켈계 다층박막들을 발견했다.

니켈계 다층박막은 수직자기이방성을 가질 수 없다는 학계의 통념을 뒤엎는 획기적인 성과였다. 광자기현미경자력계는 나노자성체의 스핀들의 집합인 자구(magnetic domain)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고, 400나노미터의 해상도로 자기적 특성변화 분포지도까지 구할 수 있는 초정밀 현미경으로 나노자성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기자재라고 할 수 있다.

“ 우리 연구단은 자성체의 3가지 근원적 의문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나노자성체의 스핀방향과 자구형태, 자구반전과정, 거시적 양자효과의 존재여부 등 입니다.

우리의 이 같은 과학기술적 도전이 본격적인 성과를 올리게 되면 세계는 전기량으로 반도체를 조절하는 전하엔지니어링시대에서 자성체의 스핀을 이용하는 스핀엔지니어링시대로 바뀔 것입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12/2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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