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잽에 무너진 이창호의 철옹성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27)

바둑의 형국은 이러했다. 하변은 하나의 터라고 할 것이다. 아직은 집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대략 30%만 집이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선수를 내가 갖느냐, 상대가 갖느냐에 따라 집이 되고 안되고 차이가 있고, 또 선수가 내 차례가 된다고 해서 다 집이 되느냐를 따지면 꼭 그렇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반을 넘어서자 서서히 이창호에게서 칼자루를 뽑는 소리가 들린다. 이창호는 일찌감치 실리를 다 파먹어서 상변과 좌변에 이세돌의 백말을 곧이 양곤마라고 지칭한다면 양곤마이다. 그 양곤마를 갈라가면서 대세를 리드한다. 리드한다고 분명 말할 수 있다. 리드-.

그러나 분명 기풍상 이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조훈현 식이다. 알다시피 조훈현과 이창호는 상극이다. 조훈현이 잘하는 것은 이창호가 못하고 이창호가 잘하는 것은 조훈현이 못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맞붙으면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이세돌은 분류학상 조훈현 계열이다. 톡톡 쏘는 잽이 스트레이트성이요, 탁월한 감각은 그를 척 보는 순간 '바로 이런 사람이 천재이구나' 하고 단박에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분명 이창호는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 이런 바둑을잘 구사할 지는 의문이었다. 그러자 상변 백말과 좌변 백말에 한 번씩 가일수를 한 다음 이세돌은 손을 빼서 자기가 자랑하던 하변에 또 한번의 못질을 한다. 이집 한 채로 이겨보겠다고 나온다.

이렇게 되면 쌍방간의 공격력이 승부를 좌우한다. 즉 이세돌의 백집은 워낙 커서 이창호도 결국은 뛰어들어야하고, 상변과 좌변에 백의 곤마도 이창호로서는 공격해야만 한다. 공격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창호는 수비바둑의 전형이 아니던가. 과연 이창호가 제대로 공격을 해낼지 자못 궁금한 터였다.

하변이 신경 쓰였다. 이창호는 잽을 하나 툭 던져놓고 후일을 도모한다. 그러나 몇 발짝 못 가서 그 잽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분명히 하변에 큰 대궐이 완성되면 바둑의 끝은 이세돌의 것이다. 그러나 관전자들은 한 명도 그 날린 잽이 잡힐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다.

드디어 움직인다. 아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백돌이 점점 쌓이더니 설마 설마하던 흑말이 도대체 헤어날 기미를 안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몇 발짝 못 가서 그만대마가 함몰하고 말았다.

과연 얼마 만에 이창호의 대마가 잡히는 이런 꼴을 목도하는가. 필자도 이창호의 바둑을 10년 동안 지켜본 사람으로서 당시처럼 허무한 바둑을 일찍이본 적이 없다. 이창호는 대마를 잡지도 죽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레슬링으로 치면 5점 짜리 큰 기술이요 야구로 치면 만루홈런을 맞은 셈이되었다.

"아니 그게 죽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것이 바둑이라지만 이창호가 죽은 말의 임자가 된 적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고작 128수만에 돌을 가두었다. 그것도 흑을 들고서 집도 많았는데 럭키펀치에 걸려든 사람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1국을 마쳤다.

두 기사간의 역대전적은 이창호가 이세돌에게 2승1패로 앞서고 있으나 지난해에는 1승1패로 호각세를 보였다. 이로써 2승2패.

최근 세계최대의 제4회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상금 40만 달러(한화 약 4억8,000만원)를 확보하여 이젠 LG배까지 우승해, 2001년 사상 첫 상금 10억원 돌파가 기대되고 있는 상승세의 이창호가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이세돌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이번 대회전은 객관적인 전력상 이창호의 우세가 예상되고 있지만 후배와 대결, 그것도 기풍이 상이한 기사와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부담감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평이 설득력을 갖게 만들었다. 과연이 건곤일척의 승부는-.


[뉴스화제]



·조훈현 9단 세계바둑오픈 우승 '영원한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이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에서 우승, 통산 8회째 세계대회 우승의 기염을 토했다.

12월 4일 중국 상하이(上海) 화팅호텔에서 벌어진 제6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3국(최종국)에서 조 9단은 중국의 희망 창하오(常昊) 9단을 상대로 268수만에 흑2집반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2승1패로 우승컵을 안았다.

제1국을 반집패를 당해 조 9단의 우승에 암울한 그림자 드리웠으나 제2국에서 곧바로 반집승을 거두어 1승1패로 바둑은 혼돈 속에 치러졌다.

그러나 조 9단은 '전신(戰神)'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우변에서 창하오 9단의 확정가를 깨고 승기를 잡았다. 우승상금 2억원.

이날 승리로 조훈현 9단은 지난해 후지쯔배 결승에서 창하오 9단과 벌인 한 차례의 세계대회 결승에서 모두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고 제14회 후지쯔배, 제13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전 등 올해에만 세계대회에서 3회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12/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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