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삶, 아름다운 인생] 월드컵 첫 여성심판 과연 꿈일까?

'축구심판' 임은주, 꿈의 무대 향한 집념의 우먼파워

올해 상반기 국내의 최대 이슈는 단연 2002 한ㆍ일 월드컵 축구대회다. 21세기 첫 지구촌 빅이벤트에서 나래를 활짝 펴고자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는 한 맹렬 여성이 있다. 바로 임은주(36) 축구 국제 심판이다.

월드컵은 그라운드를 누비는 축구선수들을 위한 무대다. 그러나 임씨에게 이번 월드컵은 각별하다. 올해 월드컵에서 그는 세계축구연맹(FIFA)이 100년간 단 한번도 허용치 않았던 금기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와 마찬가지로 심판에게도 월드컵 무대에서 뛴다는 것은 평생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한 영광이다. 더구나 여성 심판이 남자 축구 최고 권위인 월드컵대회 심판을 맡는다는 것은 지금까진 엄두도 못냈던 일이다.

하지만 지금 임씨는 그런 FIFA의 관행을 깨는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국내 여성 체육계의 파워우먼

임은주. 그를 ‘월드컵 분위기와 여성 심판’이라는 프리미엄으로 윤색된 반짝 스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국내 여성 체육계 현실에서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우뚝 선 파워 우먼이다.

그는 2002년을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준비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가슴 설레며 한 해를 맞이하고 있다.

임은주는 어릴 때부터 여느 소녀와는 달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 남자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현재 172㎝(63㎏)인 신장도 중학교 때의 그 키 그대로다.

그래서 체육 선생님들의 사냥감 1호였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 중학교 때는 배구, 고교ㆍ대학 시절에는 필드하키 선수 등 줄곧 체육 특기생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실향민인 아버지가 ‘여자가 운동 선수가 되면 선머슴이 된다’며 끝까지 반대했지만 운동에 천부적인 재질을 가진 딸의 의지를 막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임씨를 ‘운동만 잘하는 체육인’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큰 착각이다. 그는 국내 체육계 현실에서 여자는 운동만 잘해선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감지한 깨인 여성이었다. 보다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이론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차근차근 실천에 옮겼다.

“대학(청주 사범대ㆍ서원대)에 입학해서 앞서 졸업한 선배들이 운동한 것을 후회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 심각히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나의 이상과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운동 외에도 이론적ㆍ학문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운동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 시작했지요. 남들이 쉴 때 저는 밤을 지새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것이 큰 재산이 됐지요.”


스포츠관련 자격증만 21개

대학 당시 임씨의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바로 자격증이다. 임씨는 대학 시절 필드하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무려 14개의 자격증을 땄다. 레크레이션 강사, 체육 교정자, 생활체육지도자, 경기지도자 자격증 등등.

현재도 축구 관련 자격증 4개를 포함해 총 21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능력과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임씨가 축구와 연을 맺은 것은 1990년 이화여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부터다. 다소 늦은 입문이었지만 운동에 천부적 재질을 가졌던 그는그 해 바로 여자축구 국가대표로 발탁돼 북경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같은 해 남북평화통일축구대회 남측 대표로 평양을 방문, 남북 교환 경기를 하는 행운도 주어졌다. 출중한 기량에 이론도 겸비한 덕에 그는 이화여대 축구 팀 코치를 거쳐 1993년 국내 최초로 여성 축구 감독 자리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임씨가 축구 지도자에서 심판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것도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천성 덕이었다.

“축구 감독을 맡다 보니 정확한 규칙을 알고 선수들을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심판 자격증을 따게 됐습니다. 기왕이면 보다 완벽하게 해야 겠다는 생각에 1급 자격증에 도전했지요.

마침 당시 국가대표 출신에게 단기 코스가 신설돼 4~7년 걸리는 1급 축구 심판 자격증을 단 3개월만에 취득했습니다. 뜻이 있으니까 길이 열리 데요.”

임씨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평생 스승인 이화여대 황양자 학장을 따라 미국을 방문하면서 영어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이듬해인 95년 영어 연수를 위해 홀연히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객지에서 10개월여간의 객원 코치 겸 심판으로 생활하면서 웬만한 생활 영어는 거의 마스터했다. 지금도 외국 언론사와의 인터뷰는 통역 없이 혼자 영어로 자연스럽게 할 정도로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 무엇이든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주저없이 뛰어들어 결국 해내고 마는 그의 성격이 또 한번 드러난 것이다.


여자 국제심판랭킹 1위

임씨의 올해 목표는 월드컵 사상 첫 여성 심판이 되는 것이다. 실제 그 가능성은 점점 높아가고 있다.

현재 임씨는 FIFA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여자 축구 심판 랭킹 1위에 있다. 99년 미국여자 월드컵에서 아시안인으로는 처음 여자 주심을 맡았고,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축구경기에서는 결승전 주심으로 배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물론 예선전에서 심판을 봤던 노르웨이와 미국 팀이 다시 결승서 재격돌 하게 되는 바람에 규정상어쩔 수 없이 3~4위전을 뛰었지만 그는 여성 심판계에서는 발군의 인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올해 9월에는 세계청소년축구대회(17세 이하)에서는 남자대회 사상 최초의 여성 심판으로 4경기 주심을 맡는 영광을 안았다. 이는 그간 FIFA가 100년 동안 지켜왔던 ‘남자 경기에는 남자 심판을 기용한다’는 관행을 처음 허문 일대 사건이었다.

현재 세계 축구계에서 임은주 심판의 위치는 국내에서 상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단계에 올라 있다. 지난해말 부산에서 열린2002 한ㆍ일 월드컵 조추첨 행사에서 임씨는 주최국인 한국측 추천이 아닌 FIFA의 추천으로 추첨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에 5명, 일본에 2명, FIFA 5명씩 주어지는 몫 중에서 FIFA 몫 한자리를 그가 차지한 것이다.


FIFA보다 못한 협회 지원에 ‘섭섭’

“여성 심판이 사상 최초로 월드컵 무대에 선다는 것은 개인적인 영광인 동시에 한국 축구의 위상을 끌어 올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개최에만 관심이 있지 저에 대한 지원은 전무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어떤 때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오히려 요즘에는 FIFA쪽에서 저를 더욱 인정하며 밀어주고 있는 실정 입니다. 최근 FIFA측에 ‘여자 심판도 남자 경기에 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답변도 얻었습니다.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3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랗게 염색한 단발머리에 가죽 바지를 입고 다니는 말띠 여성 임은주.

“제 꿈은 크고 높습니다. 월드컵 심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현재 그 꿈은 안될 가능성이 99%지만, 될 가능성 역시 99%라는 생각합니다. 그런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입니다.” 한 해를 맞는 열혈 여성의 변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12/28 11:03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