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삶, 아름다운 인생] 산에서 만들어가는 진정한 가족사랑

산악인 김태웅씨 일가족, 새해 첫달 남미 최고봉 등정

“아들이 큰 사람이 되도록 어려서 큰 경험을 주기 위해 함께 산을 오릅니다.”

알프스 최고봉 마터호른과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최연소 등정기록을 가진 김영식(14ㆍ대구 복현중3)군등 산악인 ‘털보가족’의 가장인 털보 김태웅(47ㆍ대구 북구 칠성동)씨. 김씨에게 산은 그저 ‘산이 저기에 있기에’ 온가족을 이끌고 오르는 것만이 아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져가는 산

김씨는 “온 식구가 함께 산을 오르다 보면 가족의 소중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게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털보가족은 이번에 남미 최고봉인 아르헨티나 안데스산맥의 아콩카구아(해발 6,959㎙)에 도전한다. 김씨와 인식(18ㆍ경북대 천문대기학과 1년), 영식군 두 아들, 아내 이희숙(47)씨 일가족은 1월 14일께 출국, 아콩카구아를 정복하고 2월8일께 귀국할 계획이다.

평일에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인근 학교운동장에서 달리기로 기초 체력을 연마하고 주말에 인근산에 올라 산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등 맹훈련을 하고 있다.

비상사태가 선포된 아르헨티나 현지 사정이 다소 걱정스럽고 원정비용 마련이 여의치 않지만 비용은 집을 담보로 잡혀서라도 마련할 생각이다.

김씨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인식이는 내년 3월쯤 입대할 예정이고 공부를 썩 잘하는 영식이도 앞으로 대입 준비 때문에 해외원정이 쉽지 않다. 인식이가 제대하면 다시 영식이가 군에 가야하고 그러다 보면 저와 아내의 나이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해외원정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김씨가 산과 연을 맺은 것은 대구 협성상고 시절 산악부에 몸 담으면서 부터다. 당시 고교 특별활동부의 활동이 신통치 않은 때였지만 북한산에서 열린 전국고교등반대회에도 참가하면서 산에 빠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후 잠시 주택회사에 근무하면서 한라산 등 등반안내를 주로 하는 관광가이드 자격증을 따게 되고 아예 이 방면으로 직업을 바꿨다. 85년 직업을 바꾸기 전까지 주로 수학여행단을 인솔해 한라산을 제 집처럼 오르내리며 자연스럽게 체력을 다졌다.

그 후 95년까지 재직한 금형회사에 취업, 산악부를 조직하고 한겨울에도 설악산 대청봉을 내의 바람으로, 지리산 천왕봉은 자전거로 오르는 등 산에 미칠 정도가 된다.


막내 영식군은 기네스북에 오른 ‘작은 산꾼’

영식군의 산과 인연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

86년1월1일 김씨 일가족이 한라산 정상에 올랐을 때 영식군은 엄마 뱃속에서 4개월째 자라고 있었다. 이듬에 1월에는 생후 6개월의 나이로 엄마 등에 업혀 한라산에, 89년에는 3살의 나이로 일본 후지산에 올랐다. 이때 영식군이 너무 울어서 정상정복에는 실패했다.

이후 아버지와 형이 등반훈련을 하던 팔공산 수태골 등을 따라 다니던 영식군은 94년 8살의 나이로알프스 최고봉 마터호른(4,478㎙)을 정복해 국내 고교 영어교과서에도 소개됐다.

95년에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해발 5,895㎙), 98년과 99년에는 북미최고봉인 매킨리(6,194㎙)와 유럽 최고봉인 엘부르즈(5,642㎙)를 차례로 정복해 최연소 정복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5월에는 히말라야 초오유봉(8,201㎙)에 도전했으나 정상공격도중 설사를 만나 포기하는 쓰라림을 맛보기도 했다.

이번 아콩카구아 원정에 성공하면 4개 대륙 최고봉을 정복 하는 셈. 남은 곳은 에베레스트(8,848㎙), 오세아니아 칼츠탠스 피라미드(4,884㎙), 남극 빈슨 매시프(5,140㎙) 3개가 남게 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 살을 에이는 바람, 곳곳에 도사린 크레바스와 언제 굴러 떨어질지 모르는 돌덩이를 무릅쓰고 산을 타는 영식군은 하지만 학교를 마치면 집에서 컴퓨터 게임 ‘디아블로’를 즐기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영식군보다 성격이 여린편이라는 인식군도 90년 1월 일본 후지산, 93년에는 몽블랑을 정복했다. 하지만 인식군은 몽블랑 정복후 하산도중에 계곡에 흘러내려 죽을 고비를 겪었고 이때 고산병 증세를 보여 이후 고봉 등정에는 별로 참가하지 않았지만 95년 킬리만자로 등정때 동생과 함께 올랐다.

특히 군입대를 앞둔 인식군은 “한동안 높은 산을 오르지 못했는데 이번 등정이 군 생활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고 가족간의 사랑을 느낄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인은 산에 가면 원정대 사령관

이씨도 산에 미친 남편을 만나 수많은 산을 올랐고 95년 킬리만자로 등정때는 베이스 캠프를 지키며 남편과 자식들의 정상 등정을 지휘했고 이번 아콩카구아 원정에도 현지 사령관 역할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가장이 돈이 나오지 않는 산에 미치다 보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수 없다.

94년 마터호른 등정기가 모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방영되면서 얼굴이 알려져 CF에도 출연하기도 했지만 개런티는 이듬해 킬리만자로 등정때 다 써버렸다.

더욱이 95년에는 해외원정 등으로 자주 직장을 빠져야 한데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시의원선거에도 출마해 낙선한 후유증으로 10년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 마터호른으로 떴지만 털보 가족에게는 오히려 화가 된 셈이었다.

집안 살림이 더욱 빠듯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용접, 건축 등에 재주가 있는 김씨가 밥굶지 않을 정도는 벌어 왔지만 안정된 생활을 원하는 이씨를 달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씨의 마음 고생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김씨도 “당초 영식이가 에베레스트와 7대륙 최고봉 최연소 등정이 목표였지만 에베레스트는 올해 15세 네팔 소년이 성공해 최연소 기록달성이 불가능해졌다”며 “하지만 큰 사람이 되기 위한 호연지기를 배우도록 등산을 시킨만큼 아콩카구아 등정에 성공한뒤 경비만 마련되면 에베레스트에 도전하고 7대륙 최고봉 최연소 등정은 25세 까지여서 여유를 두고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영식이를 전문 직업 산악인으로 키울 생각은 없다”며 “남은 7개 대륙 등정은 무리하지 않고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서둘지 않겠다, 그리고 계속 오르겠다”

김씨 일가가 남미 최고봉을 오르면서 맞이하려는 새해의 의미는 자명하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어려움을 함께 함으로써 서로의 소중함을 깊이 간직하며 더 건강하게 살자는 것이다.

이번 이후의 세계를 무대로 한 등정은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라는 가장 김씨의 말에는 그동안 마음 고생을 시킨 아내에 대한 배려가 배여 있다. 가족은 이래서 좋은 것이 아닐까.

정광진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1/12/28 11:18


정광진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