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산책] ‘신ㆍ구법천문도’

‘신ㆍ구법천문도’는 조선 영조대 동ㆍ서양 문화교류의 상징

국립민속박물관은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ㆍ보물 제1318호)라는 이름의 조선시대 천문도를 소장하고 있다.

영조 때 제작된 이 천문도는 제목 그대로 여덟폭 병풍에 서양의 새로운 천문도와 우리의 옛 것을 함께 담고 있는 한국 과학사에서 손꼽히는 대표적 보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 천문도가 처음발견된 시기는 1994년의 일이고, 보물로 지정된 것은 2001년 8월이어서 이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중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학예연구사인 이문현씨가 최근 ‘생활문물연구ㆍ3’(국립민속박물간 발행)에 발표한 논문 ‘영조대천문도의 제작과 서양 천문도에 대한 수용 태도’는 이처럼 막 세상에 드러난 ‘신구법천문도’에 대한 연구성과를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 동안 우리 천문학에 대한 연구는 주로 천문도 자체와 기술적 측면의 고찰에 집중해 온 반면, 이씨의 연구는 그와 관련된 사회현상까지 살피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어 관련 분야의 연구영역을 확장 시키는 미덕도 지니고 있다.

이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동ㆍ서양의 계통이 다른 두 가지 천문도가 하나의 병풍에 함께 그려진 이유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서양 천문도를 수용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전통적인 천문도를 일시에 폐기할 수 없었으며, 이는 새로운 문화 수용에 따른 갈등과 고민을 반영한다”는 것이 이씨의 해석이다.

즉 신구법천문도는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문화 산물이고, 갈등을 완화하는 조정장치이며, 당시의 동서양 문화 교류 양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라는 것이다.

1720~30년 관상감(觀象監)에서 제작한 신구법천문도는 동양의 전통적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도(天象列次分野圖)’와 서양 선교사가 제작한 ‘황도남북양총성도(黃道南北兩總星圖)’를 나란히 담고있다. ‘천상열차분야도’는 조선 태조 4년(1395년)돌에 새겨진 이후 계속해서 전해 오면서 중시된 우리나라 전통의 천문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서양의 천문도가 처음 소개 된 것은 1631년이다. 정두원이선교사 로드리게스로부터 ‘천문도남북극(天文圖南北極)’ 2폭을 받아 온 것이다.

그리고 조선에서 서양 천문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천문도를 제작한 것은 1708년이다. 처음 도입해서새롭게 제작하기 까지 70여년의 시차가 있는 것이다. 우수한 서양의 천문학적 지식이 수용됐다 하더라도 선뜻 사용하지는 못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현상은 당시 천문도의 특성과 위상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는 ‘관상수시(觀象授時)’라는 말이 있었다. 직역하면 ‘하늘을 보고 때를 알려준다’는 뜻의 이 말은 옛날 우리나라 왕이 백성들에 대해 져야 할 중요한 책임, 혹은 의무 가운데 하나를 일컫는 것이다.

즉 임금이 자연관찰을 통해 제대로 된 역법을 제작, 백성들에게 보급해야 하는 책임이다. 정교한 달력이 없던 시대에 천문 현상에 대한 부정확한 예측과 판단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소요에 대한 책임은 왕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졌다. 그만큼 천문도가 중요했고 외부의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던 이유이다.

이씨는 이 같은 서양 천문도 수용으로 인한 ‘경계기’ ‘갈등기’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같이 정치적 옥사(獄事)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1600년대 중국에서는 아담 샬 등 서양의 천문학자들이 우리의 ‘관상감’에 해당하는 ‘흠천감(欽天監)’의 고위직을 독식하며 서양 천문도를 계속 제작했다. 신구법천문도의 ‘황도남북양총성도’도 1723년 중국에서 제작된 서양 천문도 중의 하나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인 양광선(陽光善)은 서양 역법의 오류 10가지를 지적했는데 이 때문에 흠천감의 서양 천문학자들은 모두 옥에 갇히고, 병사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결국 옥에 갇혔던 서양 천문학자 비스트의 반론이 받아들여져 옥사는 끝났는데, 5년간 벌어진 이 사건을 ‘강희역옥(康熙曆獄)’이라한다.

결국 조선의 신구법천문도는 문화 갈등의 상황에서 옥사보다는 조정과 조화를 중시했던 당시의 문화교류 태도를 설명해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구법천문도는 국립민속박물관이외에도 영국과 일본에 각 1개씩, 모두 3개가 존재한다.

이문현씨는 “이 유물을 토대로 조선시대 천문학 연구 및 동서양 문화교류사 연구가 더욱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철훈 문화과학부기자

입력시간 2001/12/31 15:45


김철훈 문화과학부 c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