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새해 희망을 기원하는 3대 기도도량

새해를 맞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가슴에 품는 것은 ‘더 나은 삶’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며 염원한다.

꿈이 이루어지기를 신에게 의탁하기 보다는 자신의 각오를 다잡는 의식이다. 기왕 새해여행을 계획했다면 그러한 의식의 매개가 되어주는 곳이면 어떨까. 불교에서 꼽는 3대 기도도량이 있다.


# 남해 보리암(경남 남해군 금산)

남해의 그림 같은 바위봉우리 금산(錦山)의 9부 능선에 남쪽 바다를 응시하며 서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의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원효대사가 이 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보광사였고 산 이름도 보광산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 곳에서 약 200㎙ 떨어진 큰 바위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고 세상을 얻자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만큼 큰 비단을 구할 수가 없자 비단이란 이름으로 산을 덮어주었다. 이후 현종은 보광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자 보리암으로 개칭했다.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만불전, 범종각 등의 절집과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절마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다를 향해 서 있는 해수관음상과 그 앞의 삼층석탑. 삼층석탑은 근처에 가면 나침반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높은 곳에 있지만 복곡저수지 매표소로 들어가면 근처에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주차장에서 약 500㎙의 산보 같은 산행만하면 쉽게 보리암에 닿을 수 있다. 종무소 (055)862-6115


# 석모도 보문사(인천 강화군 삼산면)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희정대사가 창건했다. 절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석실이 보인다.

인천 유형문화재 제27호인 석실은 나한을 모신 나한전이다. 97평의 천연동굴 입구를 문으로 막고 그 안에 나한상을 안치했다. 이 석불들은 신라 선덕여왕 때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려진 것이라 한다. 현몽대로 이 곳에 모신 그 어부는 큰 부자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석굴 법당 옆으로 나 있는 계단길을 오르면 보문사 참배의 절정인 마애관음보살입상에 닿는다. 계단은 모두 365개.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관음보살상은 1928년 보문사 주지 배선주 스님과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 스님이 조각한 것. 일명 눈썹바위라 불리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의 밑부분을 깎았다.

기도터를 찾는다고 엄숙할 필요는 없다. 보문사 가는 길은 너무 즐겁다. 차 타고, 배 타고, 걷고…. 강화 외포리에서 배를 탄다. 석모도의 도로는 전장 20㎞.

버스가 있지만 배차시간이 길기 때문에 가급적 승용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다. 주차장에서 절에 오르는 길은 길지 않다. 그러나 가파르다. 굽 높은 신을 신었다가는 절뚝거리며 내려와야 한다. 종무소 (032)933-8271


# 낙산사 홍련암(강원 양양군 강현면)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의상대사가 세웠다. 6ㆍ25 때 소실된 것을 1953년 다시 창건했다. 관동8경의 하나로 꼽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원통보전을 비롯해 종각, 일주문, 천왕문, 선실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낙산사의 명물은 바닷가 절벽위에 지어진 의상대와 홍련암.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앉아 참선한 곳에 지은 정자. 이 곳에서의 일출이 유명하다.

홍련암은 관음보살이 붉은 연꽃 위에서 나타난 곳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건물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자그마한 암자이다. 안에 조그만 관음보살좌상을 모시고 있다.

절벽에 걸쳐져서 세워졌기 때문에 마루바닥의 작은 나무뚜껑을 열면 절벽을 때리는 파도를 볼 수 있다. 동해안을 여행한다면 쉽게 낙산사를 찾을 수 있다. 낙산해수욕장에서 북쪽 길로 오르면 바로 낙산사이다. 종무소 (033)672-2448

권오현 문화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12/3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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