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리어리즘의 미학의 할리우드를 친다?


영화 ‘죄와 벌’

‘유럽 영화=예술 영화’라는 등식은 상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시절의 허울 좋은 영예 아닐까? 저예산 영화의 또 다른 이름인가?

무소불위의 국력을 닮아, 할리우드 역시 세계의 판도를 좌우한다. 막대한 자본으로 전세계를 매혹한다. 현실과 환상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컴퓨터 영상과 360도 서라운드 사운드에 녹아 나지 않을 자 누구랴.

할리우드 범람의 시대, 지극히 반미국적인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메키(44)가 또 작품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도전했다. 거친 질감의 화면에 한푼 에누리도 없이 펼쳐지는 폭력의 이미지다.

테크닉을 전혀 배제한 화면에 평면적 내러티브가 미국식영화 문법에 길들여진 관객에게는 오히려 참신하다. 해묵은 등식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도입부, 바퀴벌레가 벽을 기어 올라 간다. 갑자기 시퍼런 도살용 칼이 거대하게 확대되더니 벌레의 몸통을 찍는다. 거친 질감의 화면에 펼쳐지는 폭력의 이미지는 곧 이어질 영화의 세계를 대변한다.

이어 화면은 도살장 내부로 급변한다. 거기서 일하는 라이카이넨이라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자기 집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던 한 남자를 총으로 쏴 죽인다. 3년전 자신의 약혼자를 차로 치어 죽여 놓고 뺑소니 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 난 사람이다.

도살용 칼은 라이카이넨이고, 바퀴벌레는 총 맞은 남자다. 바퀴벌레처럼 쓸모 없는 인간을 하나 없앤 것 뿐이지 않느냐는 듯한 그 당당함에는 자신이 이 더러운 세상과 비굴하게 타협하는 자가 아니라는 모종의 시위가 숨어 있다.

그러나 그 순간, 출장 요리사 에바가 들어 와 그 일을 목도한다.

너무 놀란 나머지 퀭한 눈빛으로 피빛 현장을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보던 여인 에바, 범인을 찾으려는 집요한 형사, 그리고 라이카이넨 등 3명 사이에 전개되는 내면적 갈등을 중심이다. 고전의 해체ㆍ재구성이다.

음악이 독특하다. 도살장 장면에서는 슈베르트의 가곡이, 시내 재즈 카페 장면에서는 빌리 할러데이의 나른한 노래가 흐른다. 록이나 테크노가 누비는 미국 영화에 비한다면 대단히 고급스런 음악들이다. 이러한 음악적 장치는 결국 평면적이고 느린 카메라 워킹과 맞아 떨어진다.

한국 관객이 카우리스메키 감독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벽을 넘어서야 한다. 리얼리즘의 미학, 저예산 영화의 세계가 그것이다. 미국 영화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그 독특한 미학을 이해할 지적 인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의 미학적 요체는 고전 다시읽기. 1987년의 코미디 흑백영화 ‘햄릿, 장사를 떠나다’는 ‘햄릿’을 자본주의 조롱의 도구로 썼다. 이 시대 햄릿에겐‘죽느냐 사느냐’라는 실존적 고뇌보다는 ‘물건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자본가의 천박한 고뇌가 더 어울린다는 것.

이번에 ‘죄와 벌’과 함께 소개되는 8분짜리 영화 ‘록키6’도 의식 있는 팬들에겐 짭짤한 선물. 미국식 영웅 만들기를 코믹하게 조롱한 패러디 영화다. 국내의 비판적 영화팬들에겐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성냥공장 소녀’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역시 재능있는 유럽 감독의 전철을 밟아 미국서 영화를 만들게 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적어도 그 점에서 그는 단호한 것 같다. “내게는 원칙이 한 가지 있다. 미국 서부(할리우드)에는발을 들여 놓지 않겠다는 것. 선탠 오일 냄새가 너무너무 싫으니까”. 29일 아트 큐브개봉


[연극]



ㆍ 예술의 전당에 판 벌린 '카바레'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고전 ‘캬바레’ 덕택에 우면산은 정초부터 정신이 없다. 신시 뮤지컬 컴퍼니는 2002년 첫 무대로 이 작품을 택해 예술의 전당에서 올린다. 1930년대 나치 시대 베를린 뒷골목 캬바레 캣캣 클럽의 풍경이 뮤지컬 스타들의 노래와 율동으로 펼쳐진다.

베를린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미국 소설가 엠씨를 통해 정치적 격랑기를 관통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 준다. 그의 단골 클럽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곧 사회 전체의 축소판이었다.

이데올로기의 변화와 가치관의 혼란이 평범한 소시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결국 그들을 파국으로 이끄는 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엠씨가 관객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는 가장 마지막 대목에서 객석은 그의 옷이 정치범이 입는 수인복으로 바뀌었음을 보게 된다.

유태인과 동성애자를 뜻하는 노란별과 분홍빛 삼각형 문양이 그것이다. 조 매스터로프 작, 김철리 역ㆍ연출, 최정원 주원성 황현정 등 출연. 1월 19~2월 24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화ㆍ목ㆍ금오후 7시 30분, 수ㆍ토ㆍ일 오후 4시 7시 30분.(02)577-1987


[콘서트]



ㆍ 2002년 신년음악회

예술의 전당이 마련하는 ‘2002년 신년음악회’가 찬란하다. 이틀 동안 펼쳐지는 특급 무대다. 먼저 재일 동포 지휘자 김홍재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무대다.

‘김홍재와 코리안 심포니의 신년 음악 메시지’. 동서양 음악이 한자리서 만나는 자리다. 모스크바 음악학교에 재학중인 피아노의 신동 임동혁(17), 소프라노 박미혜(40), 가야금 주자 지애리(37), 장구의 달인 김정수(54)등이 솔로이스트로 협연한다.

특히 북한의 공훈 예술가 최성환의 ‘관현악 아리랑’과 황병기의 ‘새봄’ 연주는 별난 감흥을 자아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어 2일은 임헌정과 부천 필하모닉의 순서. 첼리스트 조영창의 협연으로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림스키코르사프의 ‘세헤라자드’가 준비돼 있다. 2002년 1월 1일 오후 6시,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580-1300


[라이브]



ㆍ 심수봉 디너 콘서트 '동화'

심수봉이 디너 콘서트‘동화(冬花)’로 2001년을 마감한다. ‘그 때 그 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 왕년의 히트곡을 비롯, 최근 발매된 리메이크 앨범의 수록곡들도 함께 한다.

더욱 깊어진 목소리의 감촉은 중장년층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27~28일 오후 8시 30분쉐라톤 워커힐 가야금홀.(02)455-5000.


ㆍ 새해벽두 여는 서무탁의 록 콘서트

정열의 여성 로커 서문탁이 ‘흥청망청 연말 콘서트’를 갖는다.

힙합, 발라드, 트롯 등 장르에 구애밪지 않는 폭넓은 음악성을 과시한다. 조명, 영상, 특수효과 등 볼거리들이 가세한다. 새해 벽두로 이어지는 공연이다. 31일 오후 7시, 10시 호텔 롯데 월드 크리스탈 볼룸.(02)383-6490


[전시회]



ㆍ 한국화가 이정남 '들꽃그림전'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끈질긴 생명력이 넘쳐 난다. 그녀의 화폭에는 질박한 자연미가 약동한다. 채색 한국화에서 일가를 개척한 이정남(42)씨가 ‘들꽃 그림전’을 갖는다.

‘가을 느낌-쑥부쟁이’, ‘영원한 마음-도라지’, ‘길섶에서-토끼풀’, ‘생명의 힘-씀바귀’ 등의 그림덕에 전시회장은 때 아닌 들꽃향이 자욱하다. 그 그림들을 보고 난 뒤라면 “이름 없는 들꽃” 같은 무책임한 말은 더 이상 못 할 것이다.

저마다 아름다운 사연이있다. 이씨의 그림은 그래서 나와 자연, 나와 세계의 관계를 되돌아 보게 해 주는 소중한 계기다.

이씨는 말한다. “나는 들꽃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아무리 척박한 땅에서도 절대로 굴하지 않고 반드시 피어나는 들꽃의 생명력을….” 생명의 환희는 ‘숨어 익은 산딸기’, ‘사랑의 노래-금낭화’, ‘내 마음의 보석 상자-채송화’ 등으로 계속 펼쳐진다. 29일까지 갤러리 상, 30~2002년 1월 12일까지 백록화랑.(02)730-0030.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12/31 16:19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