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이 넘치는 사회] 中年本色… 불륜

불륜·외도 만연, 애인없는 중년이 '쑥맥'되는 세상

주부 P(35)씨는 지난 주 연말 여고 동창회 모임에 나갔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이날 모임에서 나온 화두중의 하나는 애인 만들기. P씨는 불륜을 주제로 한 TV 드라마를 예로 들며 수다를 떨었고 대다수 친구들이 ‘애인과 한번쯤 찐한 로맨스를 즐기고 싶다’는데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던 중 P씨의 가장 친한 친구인 K씨를 포함해 2~3명이 ‘몸이 좋지 않다’, ‘다른 일이 있다’며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K씨가 목도리를 두고 나간 것을 안 P씨는 이를 주려고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못볼 장면을 목격했다. 바쁘다고 나간 그 친구가 웬 남자와 만나 다정하게 손을 잡은 뒤 그 사람의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닌가. 목도리를 주지 못하고 돌아온 P씨는 예전 순진했던 친구의 변화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창들과 식사를 마친 P씨 일행은 인근 카페로 2차를 갔다.

그런데 ‘몸이 불편하다’며 일찍 자리를 뜬 또 다른 친구 한명이 그 곳에서 웬 중년 남자와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친구는 ‘친척’이라고 둘러대며 화급히 자리를 떴지만 동창회 분위기는 어색하게 변해 버린 뒤 였다. P씨는 연말 동창회가 이제는 ‘애인과의 연말 데이트’의 핑계거리로 변한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경제적 여유, 성개방 풍조로로 불륜 확산

‘제 이웃의 아내와 간통하지 마라. 그 여자를 건드리는 자는 누구도 벌을 면치 못한다.’(구약성서 창세기 26장 11절)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갖는 것을 가장 비도덕적인 행위로 꼽았다.

이런 부정이 발각되면 도덕적인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 그간 쌓아온 지위나 명예를 한 순간에 날릴 정도로 가혹한 사회적 형벌이 가해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륜이나 외도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삶의 풍요가 가져온 경제적 여유, 여성들의 지위 향상, 성적 개방화 추세 등 사회 여건의 변화로 이런 비도덕적인 불륜은 날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들의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그간 ‘부엌데기’로 스스로를 비하했던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변신하면서 이제 여성들도 가슴속 깊이 감춰 뒀던 욕망과 열정의 응어리를 과감하게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인 J(36)씨는 누가 봐도 건실하고 모범적인 가정주부의 전형이다. 결혼 전 촉망 받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J씨는 25세에 종금사를 다니던 남편과 결혼해 둘째 아이를 가지면서 회사를 사직, 전업 주부가 됐다.

그런데 4년전 IMF 여파로 남편의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J씨는 생활고에 겪기 시작했다. 다행히 반년 뒤 남편은 건설회사에 재취업 했으나 늘어가는 가계비를 감당할 수 없어 J씨는 한 친구의 추천으로 소규모 디자인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입사 초기 집안 살림하랴, 회사일하랴 정신이 없던 J씨는 당시 한 살 연하인 K팀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K팀장은 아내와 자식을 미국에 조기 유학 보내고 혼자 사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K팀장은 당황하는 J씨가 안쓰러워 도와 주었고, 이것이 고마웠던 J씨는 가끔 집에서 만든 밑반찬 중 일부를 챙겨 주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이성으로 끌리기 시작했다.

그 해 연말 회식 자리를 끝내고 마침내 두 사람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게 되었다. 남자라곤 남편 밖에 몰랐던 J씨는 처음에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몇 일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생각하고 정리를 결심, 3일간을 결근하며 관계를 끊으려 했다. 그러나 그건 헛수고 였다. 매일 격무로 시달리다 통나무처럼 쓰러지는 남편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J씨는 팀장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다.

처음 두렵기만 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자연스럽고 친밀해지고 있다. J씨는 혹시 남편이 눈치챌까 두려워 얼마 전 회사도 그만 두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가정에서 아무일 없는 듯 생활한다. 하지만 이 둘은 아직도 서로를 원하며 비정기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죄의식 밀어내는 ‘짜릿함’

그간 우리 사회에서 외도니 불륜이니 하는 것은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그것도 사업상 접대를 하다 발생하는 호스티스와의 반짝 관계나 남자 직장 상사와 여직원간의 설익은 풋사랑, 아니면 금전을 매개로 한 유부녀와 제비족 간의 관계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불륜은 새로운 양태로 변해가고 있다. 순간적인 쾌락을 탐닉하려는 바람난 유부남, 유부녀들의 인스턴트 불륜이 만연한지 이미 오래고, 바로 우리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평범한 아내들까지도 적잖은 숫자가 이런 ‘로맨틱한 불륜’을 꿈꾸고 있거나 실제로 그 대열에 있다는 것이다.

모 인터넷 사이트에 따르면 간통죄 소송건수와 모텔 등 숙박업소 이용율 등을 감안할 때 20세에서 50세에 이르는 성인남녀의 20% 가량이 외도를 경험했거나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 20~40대 미시족들 사이에서는 ‘애인 한명 없는 사람은 쑥맥’ 라는 말이 나돌았다.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가 인기를 끌면서 요즘 동창회나 동문회 모임은 옛 애인 만나기의 장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을 부추기는 미팅을 주선한다.

예전에 하늘이 무너지는 일처럼 크게 생각됐던 외도나 불륜이 지금은 그리 먼 딴 세상의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주변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업주부 S(34)씨는 한 달에 두 번 ‘가슴 뛰는 그러나 화려한’ 외출을 한다. S씨가 만나는 사람은 10년전 한 때 사귀었던 과거의 애인. 대학 졸업 후 사귀다 ‘공부를 하겠다’며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헤어졌던 남자였는데 현재는 국내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금융 전문가다.

두 사람은 지난해 여름 e메일 통해 안부를 전하게 됐고 지금까지 밀회를 한고 있다. S씨와 그 남자는 지금의 만남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S씨는 현재 중견 회사를 경영하는 남편과의 사이에 8살배기 딸 아이를 두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그 남자 역시 부모님 부양 문제로 아내와 별거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는 잘 나가는 금융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처음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뜻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횟수가 잦아지면서 깊어지고 있다. S씨는 항상 ‘법 없이도 살 만큼 착하고 순진한’ 남편이 마음에 걸리지만, 왠지 그 남자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이런 부적절한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면 두 사람은 현재 영위하는 행복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은 지금도 위험한 외줄타기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노력이라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만남의 횟수를 다소 줄이는 것 뿐이다.


30~40대의 지속적 외도 많아

한국여성상담센터가 최근 2년간 외도 상담 사례를 조사ㆍ분석 자료에 따르면 중년 남녀의 외도가 점차 증가하고, 그 유형도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 센터가 1차 조사기간(2000년 1~10월) 동안 나온 남편 외도 숫자가 110명이었던 것이 2차 조사기간(2000년 11월~2001년 8월)에는 100% 가까이 늘어난 207명으로 나타났다.

아내 외도의 경우에는 더욱 심해 1차 기간에 15명이었던 의뢰자 수가 이듬해 같은 기간에는 38명으로 무려 150%나 급증했다. 외도의 유형도 남녀 공히 일시적인 외도가 아닌 정서적이며 장기간에 걸친 불륜의 성격을 갖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령별로는 남녀 공히 30, 40대(남편 58%, 아내 53%)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결혼 연수 별로는 10~20년 된 부부의 외도율이 평균 37%(남편 40%, 아내 34%)로 가장 높았고, 결혼 5~10년 된 부부가 21%로 그 뒤를 이었다.

특이한 점은 남녀 모두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혼 보다는 결혼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점이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된 아내의 경우 ‘결혼 생활을 지속하겠다’는 답변이 52%로 ‘이혼 하겠다’(21%) 보다 2.4배나 높았다. 아내의 외도로 고민하는 남편들도 ‘이혼’(15%) 보다는 ‘용서하고 살겠다’(28%)는 대답이 훨씬 많았다.

‘남성의 전화’의 이옥 소장은 “최근 들어 아내의 외도가 늘고 있는데 외도를 한 아내가 오히려 남편에게 ‘깨끗하게 갈라서자’며 이혼 소송을 내면 남편은 ‘모든 것을 용서할 테니 가정으로 돌아오라’고 하소연 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라며 “이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남자와 달리 여성의 외도를 용인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외도를 한 여성이 스스로 가정을 포기하는 데서 나온 현상”이라고 말했다.


구시대 유물된 ‘아내=가정주부’등식

이처럼 중ㆍ장년 주부 층의 외도가 늘어나는 것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니 ‘삼종지의(三從之義)’ 하는 가부장적 전통 관습이 상존하고 있다.

반면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비중은 하루가 다르게 확대 되면서 현실과 기존 관습 간에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1997년 터진 IMF 한파는 결정적인 뇌관 역할을 했다.

중견 기업의 잇단 파산과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남편들을 대신해 생활 전선에 나선 상당수 여성들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도나 불륜을 접할 기회가 넓어지게 됐다.

지금도 아줌마들의 소규모 창업이 붐을 이루고 있고, 여성 벤처 사업가들도 점차 늘고 있어 여성들의 지위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최근 들어 여성들은 호주제 폐지, 부부 재산 공동 명의제 운동, 남녀 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규정 신설 등 법적인 부분에까지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이제 ‘아내=가정주부’ 라는 등식은 박물관에나 전시될 구시대의 유물이 돼 버렸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는 “우리 시대의 중년들, 특히 30~40대 여성들은 기존 가부장적인 사회 관습과 서구의 개방화된 문화를 모두 접한 세대여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빚는 과도기적 계층”이라며 “이들의 일탈을 개인적인 부도덕으로만 몰아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성적 차별을 없애는 실질적인 노력에서 문제 해결의 키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자나 하는 ‘허드렛일’로 여겼던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그간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삶을 존중하고 찾아주려는 노력, 그것보다 더 효과적인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02 19:56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