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용' 중국] 아시아 경제의 블랙홀 'CHINA'

기업중국진출 붐에 주변국 ‘산업공동화’ 우려

중국경제는 ‘세계의 공장’과 ‘거대 블랙홀’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출력(outputㆍ생산과 수출) 측면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하고 있다면, 입력(inputㆍ해외자본 흡인) 측면에서는 ‘거대 블랙홀’의 색채를 띠고 있다.

중국경제의 이 같은 이중적 색채는 12월11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안이 발효되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

중국경제의 이중적 성격은 아시아 각국 경제에 안팎으로 심각한 고민을 던지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이 각국의 시장점유율에 도전하고 있다면, 블랙홀로서 중국은 주변국에 산업공동화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산업공동화 문제는 각국의 실업률, 산업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 심각성을 더하 있다.


아시아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

최근 각국 기업의 중국투자 형태는 과거의 저기술ㆍ가공생산을 넘어 첨단기술 분야로 단계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연구개발(R&D)기구까지 이전하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중국투자의 형태와 규모 변화는 세계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정보통신(IT) 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더욱 가속화하고있다. 비용절감과 거대 중국시장을 동시에 겨냥한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공동화 위기는 아시아 각국의 공통된 고민이다. 한국과 대만 등 뿐 아니라, 세계최대 제조업 대국으로 불려온 일본도 이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경제의 기둥인 전자산업 분야 기업들이 줄줄이 중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거나 투자확대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일본기업의 해외투자 전략이었던 단계적, 차별적 생산시설 해외이전 계획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다.

일본 전자산업의 주도 기업들인 도시바, 소니, 마쓰시타 전기, NEC 등은 2001년 앞다퉈 대규모 중국시장 진출 계획을 밝혔다. 일본 내 투자를 삭감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중국거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8월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 자회사나 공장(합자공장 포함)을 갖고 있는 일본기업의 비율은 전자부품 분야에서 43.5%에 달했다. 전기ㆍ전자 완성품 분야에서는 37.3%, 자동차 분야는 33.3% 수준이었다.

일본기업의 중국투자 열기는 앞으로 더 강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7월 닛케이 신문 조사에 따르면 조사기업의 절반이 해외공장설립을 희망했고, 이중 70%가 중국을 대상지로 선택했다. 현지공장 설립은 물론이고 생산거점을 아예 이전하는 현지화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첨단산업 중국행 러시

일본기업이 중국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우선 비용절감에 있다. 전세계적 불경기가 진행되면서 코스트 다운의 필요성이 절박해졌기 때문이다.

일본 노동자 임금수준은 중국의 20~30배, 공장용지 비용은 60배에 이르는 것이 현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투자 매력은 당연히 클수 밖에 없다. 일본 임금수준을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추지 않는 한 중국과의 정면대결은 어렵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급격히 확대되는 중국시장. 한 예로 중국의 오토바이 수요는 매년 1,000만대 이상이다. 맥주소비는 지난 10년간 3배 이상 늘었으며, 조만간 세계최대 맥주시장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일본 가와사키 오토바이의 중국 내 합자기업인 ‘티엔진(天津) 가와사키 오토바이’가 지난해 10월 중국최대 오토바이 메이커인 ‘하이난신따저우(海南新大州) 오토바이’와 합병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와사키는 올해부터 중국에서 생산한 오토바이를 일본에 역수입할 계획이다.

첨단산업까지 중국행 급행열차에 동승함에 따라 일본 내 기업의 경쟁력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저가의 역수입 제품에 압박받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으로부터 역수입된 공산품은 자전거와 선풍기, 녹음기 등이 주류.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 핸드폰, PC, 오토바이, 소형자동차, 맥주 업체가 줄줄이 중국 현지공장을 설립하면서 제품 역수입을 시작했다. 일본 내에서는 구조개혁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2015년께 수입제품이 전체소비시장의 60%를 점하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내에서는 중국투자 확대가 ‘고용 공동화’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5.4%를 기록한 실업률도 대기업의 중국진출에 따른 국내 인력감원과 무관치않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일본 노조의 올해 춘투도 성격이 바뀔 전망이다. 임금인상 요구 포기와 각종 부대비용 자진 삭감 등을 조건으로 고용안정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중국경제의 흡인력이 전통적인 노사관계 패턴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다.


북한보다 더 위협적인 중국경제

한국은 일본보다 더 다급하다. 산업구조상 중국제품과 세계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비율이 일본보다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공동화우려는 지난해부터 한국 대기업의 중국진출이 급증하면서 현실화하는 느낌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난해 11월21일 ‘중국경제의 한국위협론’을 제기한 것은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기업의 중국투자 확대에 따른 기술ㆍ노하우이전 등을 이유로 “중국의 경제위협이 북한 군사위협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한국 내 실업전망 등 일각의 우려를 대변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과 일본의 산업공동화 우려는 시작단계에 있다. 이에 반해 대중화 경제권의 필수적 구성요소인 홍콩과 대만의 산업공동화는 이미 상당히 진전됐다.

물론 1997년 중국으로 주권이 넘어간 홍콩을 한국, 일본, 대만과 단순비교를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업공동화로 인한 홍콩의 실업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홍콩은 중국과 지역분업 단계로 진입했다. 1978년 중국의 개혁ㆍ개방정책 및 선전 경제특구 건설에 따라 홍콩 제조업의 대부분이 인접한 광둥(廣東)성으로 옮겨갔다. 광둥성이 홍콩기업의 생산공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기업의 중국 이전에도 불구하고 홍콩 내에는 여전히 30만개에 달하는 소규모 제조업체와 식품업체가 노동자 14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중국의 WTO 가입에 따라 가혹한 시련에 직면했다. 홍콩 당국에 따르면 최소한 수만개가 급속히 와해 될 전망이다.

중국의 수출창구로서 홍콩의 중요성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선전 경제특구 항구의 해운량이 지난 3년간 매년 80% 증가한 반면, 홍콩항의 연 증가율은 0.6%에 불과했다.

홍콩 아주주간(亞洲週刊) 최근호는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홍콩의 경제성장율 둔화와 실업률 증가, 주민소득 편차 확대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홍콩ㆍ대만 가혹한 시련에 직면

홍콩은 지리적ㆍ정치적 특성상 대중국 경제관계의 최일선에 서있다. 아울러 산업, 특히 제조업 공동화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 50년간 홍콩은 중국과 관련해 3차례 산업구조 변화를 겪었다. 1950대 초~60년대 말에 이르는 첫번째 구조변화는 중계무역에서 공업화로의 변화다. 한국전쟁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중국 금수정책이 실시돼 중계무역이 빛을 잃자 부득이 자체 공업화를 시작한 것이다.

두번째는 1970년대 초~80년대 초 공업화에서 산업 다원화로의 변화. 중국의 개혁ㆍ개방에 발맞춰 노동집약적 산업은 중국으로 이전하는 대신 제품설계와 해외시장 개척, 무역서비스업 등을 발전시킨 것이다.

세번째는 1980년대 이래 이뤄진 서비스업에서 첨단기술산업으로의 구조변화다. 세번째 구조변화와 함께 나타난 것이 산업공동화 현상이다.

제조업이 중국으로 빠져나감에 따라 약해진 산업기초를 첨단산업으로 메우려 했지만 여의치않은 것이다. 홍콩은 최근 경제쇠퇴의 중요 원인을 산업공동화 탓으로 보고 있다.

홍콩의 산업공동화가 가장 전형적인 예라면, 대만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 대만기업의 과거 중국투자는 노동집약적산업이 대부분이었지만 지난 2~3년 전부터는 첨단기술산업을 비롯한 전분야에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 투자를 금한 대만당국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와 컴퓨터 등 대만의 주력산업이 속속 중국에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있다.

대만 최대 반도체 업체인 타이지디엔(臺積電) 역시 5년 내 중국투자를 않겠다던 기존의 약속을 뒤엎고 최근 투자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전세계적 IT불황 극복과 중국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 생산공장을 설립한 대만기업은 1999년 말 현재 광둥성에만 1만1,000여개에 달했다. 투자계약액은 170억달러(실제투자액은80억달러)였다.

중국 전역으로 따지면 10만개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다. 대만기업의 중국투자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주류다. 대기업이나 해외 다국적 기업의 중국진출이 늘면서 이들의 대만 내 하청기업들도 덩달아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품 하청업체들이 운임부담을 무릅쓰고 대만에 남아있기는 어렵다. 최근 대만에서는 연구개발ㆍ설계 분야와 부품업체, 조립업체가동시에 중국으로 이전하는 연쇄효과에 대한 우려가 화두로 대두했다.

이 점은 한국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대기업이 중국으로 시설을 옮길 경우 하청업체를 비롯한 연관기업이 따라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산업공동화에 대한 시각은 중국측과 당사국의 입장이 전혀 다른 것 같다. 중국관영 신화(新華)통신 타이베이(臺北) 주재 특파원은최근 사석에서 대만측의 산업공동화 논란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대륙과의 무역에서 매년 엄청난 흑자를 남기는 대만이 산업공동화를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 대만의 대중 무역흑자는 76억달러에 달했다.

반면 대만 국립정치대 국제관계연구센터 쉬스친(徐斯勤) 박사는 “산업공동화는 현재가 아닌 과정(process)의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무역흑자를 내고 있느냐 여부가 아니라, 기업의 해외이전이 장차 자국 산업구조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구조조정통한 산업환경 재정립 시급

중국경제의 거대 흡인력에 따른 주변국의 산업공동화는 고용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에서 진일보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것이 해결책이지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술개발을 통한 주변국의 신산업 창출 속도보다 경제환경의 변화속도와 중국의 기술추격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장경제원리를 거슬러 국내기업의 중국진출을 막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더구나 다국적 기업 등 거대자본이 중국시장 선점을 위해 각축하는 마당에 팔짱을 끼고 있을 수도 없다. 용트림하는 중국의 생산력과 흡인력은 조만간 한국에 경제적 충격 뿐 아니라 사회적 충격까지 미칠 전망이다. 이젠 거대 중국이 드리울 그림자에 신경을 써야 할때다.

타이베이=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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