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90)] 덴구(天狗)

세계적으로 영화 '해리 포터' 열풍이 거세다. 일본에서도 '센(千)과 치히로(千尋)의 실종'이 세운 영화사상 최다 관객 동원의 기록을 깨뜨릴까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만화영화를 활짝 꽃피운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은 동화적 세계와 평범하고도 섬세한 상식, 정감이 넘치는 수채화로 언제나 인기를 끌었다.

그의 인기의 비밀은 일상적인 인간의 지혜가 미치지 않는 이상한 사물과 현상, 즉 요카이(妖怪)의 세계를 즐겨 다룬다는 데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출세작인 '이웃의 도토로'는 물론이고 '원령 공주'나 '센과 치히로'에도 한결같이 현실 세계와는 거리를 둔 요정이나 요괴가 등장한다.

'해리 포터'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더욱이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요정이나 요괴는 그리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것이 더위를 씻기 위한 공포영화와 달리 입안 한쪽에 단침을 고이게 한다.

일본의 요괴는 우리로 치면 귀신보다는 도깨비에 가깝다. 두려움과 배척 대상에 머물지 않고 더러 친근감을 느끼게한다. 익사의 원인으로 얘기되면서도 장난기 넘치는 귀여운 존재인 물의 요괴 ‘갓파(河童)’, 외눈박이 동자승인 ‘히토쓰메코조(一眼小僧)’ 등이 좋은 예이다.

'요카이'의 우두머리격인 ‘덴구(天狗)’는 아예 신사에 주신(主神)으로 모셔질 정도로 후한 대우을 받는다.

흔히 뻘건 얼굴에 길게 삐져 나온 코를 한 얼굴로 알려진 덴구는 서민의 선술집인 ‘이자카야(居酒屋)’ 체인점 업체명으로 쓰일 정도로 폭넓은 사랑을 받는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신이 탐내 감춘다는 얘기에서 나온 ‘가미가쿠시(神隱し)’, 즉 어린이 행방불명의 주범도 다름아닌 덴구이다. 애초에 '가미가쿠시'란 말은 '덴구가 감춘다'는 뜻의 '덴구가쿠시'에서 나왔다. 덴구가 신으로 모셔지면서 나온 말이라고 할수 있다.

'덴구'가 일본 고유의 요괴는 아니다.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는 '천구는 모양은 거대한 유성같으나 소리를낸다'든가, '벼락치는 소리를 내지만 벼락이 아니다'고 적었다. 하늘을 달리는 말이 천마이듯 하늘을 달리는 개가 있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덴구'를 처음 언급한 ‘니혼쇼키(日本書紀)’도 '유성이 동에서 서로 날아 때로는 벼락치는 소리를, 때로는 땅 갈라지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하늘개로 짖는 소리가 벼락치는 소리와 닮았을 뿐'이라고 비슷하게 적었다.

그러나 일본의 덴구는 이런 '하늘개'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 산신령과 비슷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산신 신앙이 불교와 결합, 우리 산신령이 부처의 심부름꾼으로 그려지듯 일본에서도 신의 사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우리 산신령이 주로 호랑이를 타고 이동하는 것과 달리 일본의 덴구는 하늘을 난다.

시뻘건 얼굴에 코가 엄청나게 큰 ‘하나타카텐구(鼻高天狗)’의 연원은 그리 깊지 않다. 애초에는 새의 부리를 연상시키는 매부리코에 날개를 단 ‘가라스텐구(烏天狗)’가 대부분이었다. '가라스텐구'는 고대 동북아에 널리 퍼져 있던 조령(鳥靈)신앙의 흔적이 엿보게 한다.

반면 현재 일반화한 '하나타카텐구'는 산속에 파묻혀 도를 닦았던 수행자인 ‘야마부시(山伏)’를 투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타카텐구'는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을 늘어뜨리고 형형한 눈길을 빛내며, 육환장을 든 모습으로 흔히 묘사된다. 등에 독수리나 솔개, 매의 날개를 달고 있거나 깃털 부채를 든 모습은 조령신앙과 산신신앙이 결합된 결과로도 보인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난다는 점은 중국에서 비롯한 하늘개의 이미지가 새의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전환한 결과이다. 가장 큰 특징인 왕코는 새의 부리가 매부리코를 거쳐 변형된 결과이다. 그런데도 자식을 얻으려고 덴구를 모신 신사에 기도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 실소를 자아낸다.

덴구는 산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사건의 주범이다. 밤새 큰나무를 베어 넘기는 소리가 시끄럽다가 해가 뜬후 가보면 아무 일도 없는 ‘덴구타오시(天狗倒し)’, 산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덴구와라이(天狗笑い)’ 등 수많은 초자연 현상에 대한 얘기가 전해져 왔다.

요괴의 대표지만 사악한 존재로 그려지지를 않는다. 오히려 신의 반열에 올려 제사를 지낸다. 요괴를 초인적인 강한 힘으로 물리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대신 제사를 지내 기분을 맞춰 주어 앙화를 피할 수 있다. 덴구 신앙의 바닥에 깔린 일본인의 실용적 의식이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2/01/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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