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판 ‘O양의 비디오’ 사건 떠들썩

여주인공은 미모의 미혼 정치인…잡지사가 VCD유포

몰카 사건으로 대만이 떠들썩하다. 대만판 ‘O양 비디오’ 사건의 여주인공은 연예인이 아닌 미모의 미혼 정치인. TV기자와 대담프로 진행자를 거쳐 신주(新竹)시 문화국장을 지낸 취메이펑(32)이다.

취메이펑은 지난해 12월1일 치러진 대만 입법원(국회) 의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경력을 갖고 있다.

취메이펑은 지난 12월17일부터 유포된 VCD에서 전문 포르노 배우를 뺨칠 정도의 테크닉과 적극성을 발휘해 순식간에 화제의 대상이 됐다.

남주인공은 검찰에 의해 성이 쩡(曾)인 30대로 밝혀졌지만, 나머지 자세한 신분은 공개되지 않았다. 항간에서는 취메이펑의 친구의 남편으로 회자되고 있다. 남주인공 역시 연출된 포르노 장면을 무색케 할 수준의 실력을 구사했다.


VCD 유포, 포르노배우 뺨치는 테크닉

정사가 이뤄진 장소는 타이베이(臺北)시 외곽 부촌에 있는 취메이펑의 아파트 침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면으로 침대를 약간 내려다보고 있는 곳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됐던 탓에 정사장면은 적나라하게 촬영됐다.

검찰은 몰카 설치자가 O양이나 백지영 사건과 달리 제3자인것으로 보고 조사중이다. 취메이펑측은 집 열쇠를 갖고 있는 여자 친구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당사자는 펄쩍 뛰고 있는 상황. 이번 몰카 사건이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사람들의 입맛을 딱 맞춰주는 다양한 요소를 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우선 취메이펑이 다양한 경력을 가진 유명인인데다 이전부터 섹스 스캔들을 달고 다녔던 인물이란 게 특징. 취메이펑은 지난 입법원 선거 출마 당시 유력 정치인들과의 과거 추문이 주간지에 공개되면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민진당 유력 의원, 신주시 시장 등이 상대자로 거론됐다. 취메이펑 ‘주연’의 또 다른 내용의 VCD 2탄, 3탄이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이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대만 초유의 몰래카메라 사건이라는 점도 입방아를 더하게 만들었다.

최근 대학가의 기숙사내 몰카가 화제가 되긴 했다. 남자기숙사에 여자친구를 불러들여 정사를 벌이는 장면이 심심찮게 촬영돼 인터넷에 올라간 것. 하지만 유명 연예인은 물론이고, 특히 정치인은 지금까지 예가 전무했다.

파장을 더욱 확대한 것은 VCD가 주간지에 의해 공개적으로 유포됐다는 사실. 시사주간지 독가보도(獨家報導)는 12월17일부터 판매된 잡지에 취메이펑의 섹스 스캔들을 특집보도하면서 문제의 VCD를 무료로 끼워주었다.

초판 인쇄본으로 배포된 4만부 중 2만여부가 팔려 나갔다. 여기다 이 VCD의 복사판이 새끼를 치고, 인터넷에 올라감으로써 대만 전체에 퍼졌다.


의회선거 후보들 매표용으로 VCD 돌려

요즘 대만에서 취메이펑 사건은 VCD를 못 본 사람은 대화에 낄 수 없을 정도로 주요 화제가 됐다. 대낮에 촬영돼 깨끗한 화질과 음성, 남녀주인공의 테크닉 등도 관심을 증폭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정사장면과 관계된 VCD의 총길이는 40분 남짓. 이 VCD는 내년 초실시될 기초자치단체 의회 선거에 출마한 일부 후보들이 매표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홍보전단과 함께 VCD를 돌리며 한 표를 부탁하고 있는 것.

난립한 24시간 뉴스채널들도 경쟁적으로 사건 추이를 보도해 시청자들의 구미를 돋구고 있다. 몰카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면서 대만에서는 몰카 방지 장치가 새로운 인기상품으로 떠올랐다.

타이베이 지법에서는 최근 소속 판사들에게 몰카 설치 유무를 체크할 수 있는 휴대용 장치를 지급했다.

취메이펑은 VCD 유포와 동시에 잠적한 상태에서 변호사를 통해 독가보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도 독자적인 수사에 나섰다. 여론은 호사를 즐기는 것과는 별도로 취메이펑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물론 취메이펑을 ‘정치 창녀’라며 폄하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정치적 계단을 닦기 위해 스스로 미인계를 썼다는 비난이다.

지난 입법원 선거비용으로 사용했을 최소한 신대만폐 1,000만위엔(3억7,000만원) 이상의 돈도 유력자와의 동침을 통해 조달했을 것이란 추측까지 있다. 하지만 압도적 여론은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해 사회적 매장위기에 놓였다는 식의 동정을 보내고 있다.

사법당국과 독가보도, 취메이펑측과 독가보도간의 승강이도 관전자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12월20일 타이베이 지검이 VCD잔여분과 관련 증거물 압수를 위해 독가보도 사옥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독가보도측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어서 나온 독가보도측의 성명이 재미있다.

“언론사 압수수색은 장지에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 시대에도 없었다”며 “천쉐이비엔(陳水扁) 정부의 백색테러”로 반격하고 나온것. 독가보도측은 자사 압수수색을 정부의 언론탄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독가보도측은 나아가 문제의 VCD가 음란물과는 무관한 기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부터 문제가 돼 온 취메이펑의 섹스스캔들을 확증하기 위한 필수적 증거라는 것이다.

독가보도측은 취메이펑이 단순한 여성이 아닌 정치인이자 공인이라며 VCD 유포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 정사장면을 획득한 과정에 대해서는 직ㆍ간접적 방법으로 몰래촬영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인터넷에 유포된 것을 취록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중국시보(中國時報) 등 유력 언론들은 칼럼과 외부기고 등을 통해 ‘헛소리와궤변은 그만하라’며 반박하고 있다.

상업주의와 선정주의에 빠진 독가보도가 언론의 자유를 팔아 돈을 챙기는데 불과하다는 것. 일부 언론은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민진당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 전략에 이번 사건이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다.

취메이펑의 변호인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취메이펑의 편지를 공개하며 독가보도의 비도덕성을 공격했다. 독가보도가 일방적으로 그녀에게 인간적ㆍ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도 “내 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모든 책임을 독가보도에 미뤘다. 변호인이 주장하는 독가보도의 불법행위는 주거침입, 프라이버시 침해 및 이를 통한 사익도모, 음란물 살포ㆍ보도ㆍ판매 및 제조ㆍ소지, 비방, 인격권 보호위반 등이다.

변호인은 “자신의 딸과 동생이라면 그렇게 하겠느냐”며 인정에 호소하고 있다.


취메이펑, 해당언론과 법정공방

이에 대해 독가보도측은 취메이펑이 공인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정치적 사망선고’ 주장에 대해서는 “그럴 권리도 없고, 선고한다 하더라도 죽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다.

지난해 초 천쉐이비엔 총통과의 성추문 보도가 있었던 총통부 고문 샤오메이친(蕭美琴)의 경우 오히려 사건 후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는 것. 스캔들의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샤오메이친이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1일 입법원 선거에서 민진당후보로 당선된 것은 사실이다.

독가보도측의 이 같은 궤변에 대만인들의 화제는 더욱 풍성해졌다. 과연 그녀가 결정적 스캔들을 도약대로 탈바꿈시킬 지에 대한 관심이다.

취메이펑이 털고 나와 정치적 꿈에 재도전할 지 여부를 지켜보는 것이다. 취메이펑의 다음 행보와 이에 대한 대만인의 태도는 성에 대한 중국인의 의식을 보여주는 주요한 단서가 될 것 같다.

타이베이=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0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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