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89)] 첨단과학의 역기능

21세기에 들면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졌기 때문에, 웬만한 발견이나 발명은 전혀 새로워 보이지 않는 증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래서 만약, "컴퓨터가 사람의 얼굴 생김새와 목소리로 남녀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럴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과 컴퓨터 기술의 발달 속도가 어느 과학분야보다 빨랐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컴퓨터의 성 구별능력은 아주 최근에야 이루어진 기술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의 라지브 샤마 박사는 사람의 전체 얼굴이 아닌 눈, 코, 입, 그리고 목소리만을 실마리로 그 사람의 성별을 거의 100% 구분할 수 있는 새로운 컴퓨터 분류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은 약 90%의 적중률밖에 되지 않는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점점 그 필요성이 높아져 가고 있는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한 단계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외에도 보안시스템이나 남녀의 구별이 필요한 각종 시장조사, 범죄수사 등 응용의 폭이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법집행기관이나 연구자가 비디오 테이프에서 특정인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작업을 자동으로 할 수 있다.

또 21세기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실현이 예상되고 있는 인공지능을 갖춘 스마트 건물에서는 이러한 구별능력이 필수다. 이 시스템을 활용한다면, 스마트 건물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신분을 밝히기 위해 멈추거나 속도를 늦출 필요 없이 곧 바로 통과해도 신원확인이 가능한 자동시스템으로 응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요즘 부각되고 있는 성차별의 감시를 위해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이 시스템을 공공시설이나 특정 장소에 설치해서 성에 대한 차별적 행동을 모니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SVM(support vector machines)라는 학습이 가능한 강력한 패턴 인식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는데, 원래 SVM은 세포 샘플에서 비정상 세포를 찾아내는데 사용되거나 아주 유사한 패턴을 서로 구분하는 작업에 사용되던 것이다.

여기에 얼굴과 음성인지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연구팀은 보통사람들의 얼굴 자료에서 머리와 귀 목을 빼고 눈, 코, 입만 남은 간략한 얼굴 사진 1,755 가지를 토대로 소프트웨어를 훈련시켰다.

또 다른 SVM은 보통사람들의 목소리 몇 초간을 녹음한 목소리 샘플로 훈련시켰다. 이렇게 얼굴 소프트웨어와 목소리 소프트웨어를 독립적으로 훈련시켜서 인간의 성구별이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린 뒤, 두 소프트웨어에 SVM 매니저를 첨가해서 정밀도가 높은 최종적인 성구별 장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얼굴 소프트웨어와 목소리 소프트웨어가 특정인의 성구별에 대해서 이견이 있는 경우 SVM매니저가 두 결정과정을 검토하게 된다.

즉 얼굴과 목소리 소프트웨어의 특정 약점을 보완해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 정확도가 거의 10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의 순기능은 분명 고맙기는 하지만, 사실 이런 종류의 첨단 정보통신과 보안시스템의 발달로 인해서 개인의 사생활이 보다 철저하게 감시당할 수 있다는 역기능에 대한 우려와 경계 또한 소홀히 할 일이 아니다.

당장, 보안을 위해 개발된 감시카메라가 온갖 불법/음란성 목적에 사용되는 사례만 보아도 그 역기능은 자명하다. 과학이 첨단화될 수록, 이를 악용하려는 교묘한 술책도 첨단화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순기능의 주장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과학자들의 자세는 썩 보기에 즐겁지 않다. 새해에는, 과학자 스스로가 첨단과학의 역기능을 당당히 밝히는 모습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그 역기능이 비단 과학자의 책임만은 아니지만 그 무게중심은 여전히 과학자에게 놓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2/01/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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