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본격 기지개

불황탈출기대보다 빨라.. V자형 회복 기대도

올해 주요 제조업 경기가 대부분 크게 호전되거나 침체에서 벗어날 것으로 전망돼 실물경기에서도 경기회복 조짐이 본격 가시화 할 것으로 보인다.

엔저 심화와 유가 불안 등 불안요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늦어도 2, 3분기 중에는 생산ㆍ수출이 본궤도에 오르고, V자형 회복도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반도체·정보통신 20%대 성장기대

산업자원부는 최근 11개 주요업종 단체를 대상으로 올해 생산과 내수, 수출입 전망을 조사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와 조선, 가전, 일반기계 등은 내수와 수출입 생산 등 전 분야에서 지난해의 호조세가 지속되고 반도체와 정보통신 역시 침체국면을 탈출, 두 자릿수 이상의 비약 성장이 기대됐다.

반도체 수출(금액기준)의 경우 지난해 마이너스 45.0%에서 올해 18.9% 플러스 성장이 예상됐고, 정보통신 역시 20%이상의 생산ㆍ수출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나타났다. 업황이 부진했던 유화 화섬 중전기기도 수출이 마이너스 성장세를 탈출하고, 철강과 시멘트도 감소폭이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조선업종의 경우미 테러사태 이후 발주 물량이 격감한 데다, 엔저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로 신규수주에서 다소 고전이 우려됐다.

산자부의 전망은 한국일보가 제조업 대표기업 CEO 10명을 대상으로 국내 경기 및 업종 전망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CEO들은 올해 국내 경기전망을 1점(매우 나쁨)~5점(매우 좋음)을 기준으로 할 때 비교적 높은 평균 3.9점을 주었고, 업종별 전망에서도 평균 3.8점을 부여, 경기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자동차·석유화학 등도 전망 밝아

본보가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 화섬, 가전, 식음료, 제지, PC 등 대표적인 제조업 분야의 10개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부분 올 해 경기 전망이 지난 해 보다 좋아질것으로 응답하는 등 낙관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업종별 경기 전망도 밝을 것으로 내다봤다.

조사에서 최고경영자들은 미국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월드컵, 아시안 게임등 대규모 국제 행사의 개최 등으로 올 해 국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포철 유상부 회장은 “올 경기는 미국테러사태의 진정 등으로 대외 여건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러나 회복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보컴퓨터 이홍순 부회장도 “세계경제가 점진적으로 회복세를 돌아설 가능성을 보이고 이에 따라 국내 기업의 수출 여건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며 “저금리기조와 정부의 내수 진작책이 뒷받침된다면 수출 증대에 따른 점진적인 경기 회복(3% 성장)이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 경기가 기대처럼 회복세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환율안정과수출 경쟁력 확보가 뒤따라야 하고 부실기업의 조속한 정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철강·조선 제외하고 대부분 호조

철강과 조선 업종을 제외하고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 대부분의 업종이 호조를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내 경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반도체 경기의 호조는 국내 경기의 회복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PC의 수요가 계속적으로 늘고 업계 구조조정으로 공급 과잉이 해소되면서 가격이 회복세(4일 현재 128메가SD램 기준 2.9달러)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이 회복되고 증시 부양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국내 경기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는 국내 경기가 반도체 경기 회복으로 ‘U’자형을 지나 ‘V’자형 경기 회복도 가능하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반도체 경기가 점차적으로 회복돼 3ㆍ4분기에 회복세가 가시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비메모리 사업의 경쟁력 확보와 세계 시장에서 선두권에 들어갈 수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4~5개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 최대 호황을 누렸던 자동차의 경우 국내 경기회복과 GM의 국내시장 참여, 경쟁적인 신제품 출시, 중국 등 개도국 시장의 확대 등으로 밝은 전망이 예상된다. 자동차 업계는 올 해 판매를 지난 해보다 10% 늘어난 367만2,000대로 잡고 있다.

석유화학은 2ㆍ4분기말 세계 석유화학 경기가 저점을 통과할 것으로 보여 동반상승이 기대되며 제지도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증가와 월드컵 및 선거에 따른 특수로 성장이 예상된다.


정치불안·환율이 최대변수

그러나 한편에서는 섯부른 낙관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미국의 경기회복시기 및 잇단 선거로 인한 정치불안, 환율 움직임이 경기회복에 중대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연구원은 급격한 엔화 약세 또는 장기화에 대비, 기업들은 환리스크 관리 및 비상 경영체제 수립 등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원은 ‘최근 엔화 약세 배경과 향후 전망’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 각국의 반발, 1995년중반 세계적인 외환위기 및 미국 금융위기 조짐에 따른 부작용 경험 등 때문에 초엔저 사태의 발생 가능성은 낮으나 현재로선 엔화가 쉽게 약세를 벗어나지 못해 상품ㆍ서비스 수지가 악화하면서 성장 둔화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정 연구원은 “현 상태에서 엔ㆍ달러환율의 급격한 상승은 어렵지만, 최악의 엔저 상황을 가정해 비상 경영체제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며“환율 급변동에 따른 수출입 대금의 환리스크 관리, 수출입대금 결제시기를 조절하는 환관리 기법 등을 활용하고 통화선물, 통화옵션, 외환스왑 등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급격한 엔화 약세와 관련, 물가 안정과 수출 경쟁력 확보 사이에서 고민하던 정부는 ‘엔저(円低)’ 대책의 가닥을 원화 환율의 동반 절하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 쪽으로 잡아가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일본 경제가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엔저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는 등 국제적으로 엔저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미국 정부도 엔저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달러당 130엔대를 밑도는 엔저 현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엔저 현상에 맞춰 원화 가치가 동반 하락할 경우 수출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유보적인 입장을 지켜왔던 정부는 물가 불안에 대한 우려보다는 경기 본격 회복의 핵심 관건인 수출 경쟁력 유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원화 환율의 동반 하락이 용인될 경우 한국은행이 정한 올해 물가안정 목표(2~4%) 달성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최윤필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2/01/09 11:10


최윤필 경제부 walde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