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벤처다] "애한테 목숨 걸었어요"

'의지' 하나로 딸 골프 상비군 만든 아버지

“딸 아이 한테 목숨 걸었습니다.”

3일 오전 경기 오산시 외곽의 한 골프연습장.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부는 타석에서 한 여학생이 혼자 볼을 때리며 연습에 여념이 없다.

그 뒤에는 아버지 최병호(37)씨가 스윙 폼을 교정하며 지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고 난 텅빈 연습장에서 두 부녀는 두 시간 넘게 볼과 씨름하고 있었다.


‘분수 모르는 사람’ 손가락질 받기도

최씨는 5년전 초등학교 3학년인 딸 나연(14)이에게 골프를 가르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때 ‘분수도 모르는 정신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골프는 서울 부자들이나 시키는 운동’이라며 비웃었으나 최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위의 비웃음을 한귀로 흘리며 딸에 쏟은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나연이가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국가대표 골프 상비군으로 선정된 것. 부녀는 지난해 9월 그린배 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두 손을 꼭 잡으며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드디어 해냈다는 기쁨은 최씨 부녀에게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자부심이다.

최씨는 오산시 외곽에서 조그만 주유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다. 최씨의 삶은 우연하게 180도 변했다. 평소 골프를 쳤던 그가 어린 딸의 골프자질을 발견하면서 부터다.

그는 딸을 세계적인 골퍼로 키우겠다는 생각에 주유소도 임대를 주고, 딸의 골프 코치 겸 매니저로 나섰다. 하루 24시간을 딸과 같이 다니며 골프 치고, 가르치고, 운전사 역할까지 도맡아 한다.

최씨는 경제 형편으로는 딸을 골프선수로 키울 여력이 없다. 현재 수입이라곤 주유소 임대료로 나오는 월 200만원이 전부다. 일반적으로 골프를 가르치려면 월 150만원이 넘는 레슨비에 하루 20만원씩 드는 그린비, 연습장 사용료, 클럽과 의류 등 용품 사용비 등 한 달에 수백만원이 들어 간다.

여기에 겨울철에는 1,000만원에 달하는 해외 전지 훈련비가 추가로 들어간다. 최씨로서는 이런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안된다.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모든 비용을 몸으로 때우며 딸을 가르쳐 왔다.

나연이가 골프를 시작한 이듬해 최씨는 무작정 인근 골프장을 찾아가 ‘딸 아이를 연습생으로 받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무릎까지 꿇은채 애원하는 그의 정성에 골프장측이 감복했던지 그날부터 나연이는 연습생이 돼 매일 무료로 골프를 칠 수 있게 됐다.

골프하는 자녀를 둔 학부형들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나연이를 연습생으로 받아준 당시 골프장 담당자는 현재 나영이의 후원회 총무가 돼 최일선에서 돕고 있다.


“성공하는 모습 보여주겠다”

나연이가 대회에 나가 조금씩 성적을 거두면서 최씨의 어깨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하자 용품 업체에서 클럽을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인근 골프연습장에서도 무료로 연습 장소를 제공했다. 나영이의 재질을 알아본 유명 코치들도 서로 나서 레슨을 해주고 있다.

최씨는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분명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부녀는 어렵게 시작했지만 최종 목표는 크고 원대합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할것입니다. 경제력이 없는 사람도 뜻과 의지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최씨와 나영이는 남들이 다 가는해외 전지 훈련은 엄두도 못 내지만 혼신의 노력을 다한뒤 결과를 엄숙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09 18:08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