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벤처다] '재능 발굴' 극성이 애들 잡는다

무조건적인 과열 조기교육, 가계부담에 부작용

회사원 지용선(39ㆍ가명)씨는 지난주 아내와 큰 딸 선미(6) 교육 문제로 부부 싸움을 했다. 선미는 지난해 말까지 학습지, 바이올린, 발레를 배웠다. 그런데 아내가 신년부터 내실있는 영어교육을 시키겠다며 저렴한 학습지 대신 월 70만원 하는 외국어학원에 등록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지씨는 ‘형편에 맞게 키워야 한다’고 했으나 아내는 ‘아이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려면 무리가 돼도 어릴 때부터 다양한 교육을시켜야 한다’며 주장을 꺾지 않고 있다.

지씨는 ‘자식을 더 잘 가르치자’는 아내의 의견에 무조건 반대할 수도, 그렇다고 능력을 넘는 지원을 할 수도 없어 고민하고 있다.


2~7세 86%가 최고 12종류까지 교육

이 시대를 살고 있는 30~40대의 가장들이라면 한번쯤 지씨와 유사한 고민을 할 것이다. 1990년 대들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조기 교육 붐은 교육 효과에 대한 교육계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취학 아동의 조기 특기 교육에 대한 실태 조사 결과가 발표돼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이기숙 교수가 교육부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사립유치원에 2~7세의 자녀를 보내고 있는 부모 2,15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유치원외에 별도의 조기 특기 교육을 실시하는 부모가 무려 86%(1,847명)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별로는 3세가 75%, 4세 78%, 5세88%, 6세 89%, 7세 94%로 조사돼 나이가 많을수록 별도 특기 교육을 받는 비율이 높았다.

유치원 교육 외에 추가로 시키는 특기 교육의 가짓수는 한종류 28.8%, 2종류 30.0%, 3종류 20.6%, 4종류 11.9%, 5종류 5.4%, 6종류 3.3% 였다. 무려 10종류 이상도 8명이었으며 최고 12종류의 특기 교육을 받는 아동도 1명 있었다.

특기 교육의 종류로는 한글(글쓰기)교육이 전체의 49%로 다수를 차지했고 이어 수학(32%) 영어(28%) 피아노(28%) 미술(22%) 종합학습지(11%) 태권도(5%) 등의 순이었다.

특히 2세 아동중 63%가 한글을 배우고 21%가 종합학습지를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조기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기 교육으로 지출되는 월 평균비용은 자녀 1인당 12만6,000원으로 조사됐다. 지출 규모별로는 월 10만원 미만이 54.6%로 가장 많았고, 10만~20만원 34.2%,20만~30만원 7.7%, 30만~40만원 1.6%, 40만~50만원대는 1.1% 였으며, 50만원 이상도 13명(0.85%)이나 됐다.

아버지의 직업별로는 행정직-전문직-사무직-서비스업 순으로 사교육비 지출이 많았다. 또 전업주부인 어머니가 직장을 가진 어머니보다 조기 특기교육을 더 많이 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수입에 따른 사교육비는 월500만원 이상인 가정이 가장 많았지만 200만~300만원 가정이 400만~500만원 가정보다 지출이 많았다. 이는 조기 특기 비용 지출은 가구평균 월 소득 수준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점 알지만 남들도 시키니까…”

문제는 이런 과열 양상에 대해 부모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기 특기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다수의 부모(70.3%)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교육 시기에 대해서는 ‘빠르다(48.0%)’ ‘너무 빠르다(25.5%)’는 의견이 ‘적절하다(22.9%)’ ‘늦다(2.1%)’는 의견 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한 조기 특기 교육의 종류에 대해서도 ‘많다(46.0%)’ ‘너무 많다(42.7%)’ ‘적절하다(8.5%)’ 순으로 나타나 부모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기 특기 교육을 시키는 이유(복수응답)는 지능개발(74%), 초등학교 준비(64%), 자녀의 희망과 소질(60%), 남이 시키니까 불안해서(28%), 유치원후 봐줄 사람이나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어서(22%), 광고나 외판원 권유(6%) 등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관계자는 “최근 의학계에서 자폐증, 우울증, 학습장애를 겪는 아동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며 “조기 특기 교육을 받은 유아의 학습 의욕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영재교육이란 이름으로 어린이들이 조기교육에 휘둘리고 있고 가장은 뒷돈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지만 열기는 좀처럼 식을줄 모르고 있다. <홍인기/사진부 기자>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09 18:32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