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마지막 불꽃 "연기만 매콤"

썰렁해진 주변에 악재까지 돌출, 대선 선택카드도 '별무신통'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산에서 신년휴가를 보냈다. 지인들과 골프도 치고 가족들과 모처럼 시간을 갖는 등 망중한의 여유를 즐긴 듯 했다.

하지만 6일 귀경한 JP의 표정은 뜻밖에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올한 해 정국을 주도할 멋진 구상을 마쳤다”는 측근의 말이 무색했다.

JP의 굳은 표정은 대선이 있는 임오년 한 해에 대한 부담감이 새삼 다가온 탓인지 모른다. JP는 연말연초 각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각제를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며 “정치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정치적 여건이 어렵지만 내각제 실현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쏟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좋지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연초부터 악재가 터지기 시작했다.

JP가 1일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시각, 김용채 부총재는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1999년 JP가 총리로 있을 때 비서실장으로 있으며 받은 2억1,000만원이 검찰수사에서 드러난 것. 법리상으로는 몰라도 정서적으로는 JP도 무관할 수 없는 사안이다.

JP 주변에서 “여권이 JP의 손발을 묶어 식물정치인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걱정반 불안반의 얘기가 나왔다.


내각제 고리 킹메이커 “예전만 못해”

김 부총재는 김용환 의원, 강창희 의원이 떠나고 김종호 전 총재대행마저 건강악화로 상임고문으로 물러난 뒤 당의 2인자를 자처하며 JP를 보좌해왔다.

당에선 “아직 공식출범한 게 아니다”고 손을 저었지만 김 부총재는 JP의 대선출마를 총괄하는 대선기획위 위원장까지 맡고 있었다. 15일 대선출마선언을 시작으로 JP의 적극적인 동선을 만들어보려던 당으로선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JP의 표정을 어둡게 한 근저의 원인은 대선국면에서 선택의 카드가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사실 JP는 명쾌한 대선 도전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갈 것으로 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스스로도 “내각제를 하겠다는 괜찮은 인사가 있다면 흔쾌히 양보하겠다”며 물러설 여지를 강하게 남긴다. 내심 가망 없는 ‘킹’보다는 승산이 확실한 ‘킹메이커’에 더 미련을 두고 있어 보인다. 본인과 측근들은 “JP의 대권의지는 확고하다”며 펄쩍 뛰지만 자금, 세력, 지지도 등 변변한게 없는 처지다.

JP가 내심 킹 메이커에 마음을 두고 있다 해도 손잡을 대상이 마땅찮다. JP가 마음에 두는 인사들은 JP를 외면하고 JP에게 구애하는 인사는 마음에 차지않는 눈치다. 현 대선주자 중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말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는 것도 부담이다.

최근 JP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민주당 이인제 상임고문만 해도 JP와의 연대는 가장 적극적인 반면 내각제 개헌엔 고개를 젓는다.

JP는 지난해말 이 고문의 대권도전에“큰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뜻대로 이뤄지길 바란다”는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정가엔 JP가 이인제 고문의 적극적인 구애에 화답, 두 사람의 공조는 시간문제라는 설익은 추측까지 나왔다.

충청의 압도적 지지를 바라는 이 고문으로서는 JP와의 연대는 탐나는 구도다. 이 고문이 최근 기회만 생기면 “JP는 훌륭한 정치선배”라고 깍듯이 예를 표시하는 것도 이런 계산에서다.

하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두 사람의 우호적 분위기와 달리 JP측에 따르면 이 고문에 대한 JP의 속마음은 아직까지는 그리 미덥지 못하다고 한다.

JP의 한 측근은 “이 고문을 도울 경우 충청권에 대한 JP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쇠약해진다”며 “JP가 이 고문을 미는 대가로 받을 이익이 분명치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선거 이전에 이 고문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다면 합당은 어렵겠지만 지방선거에서 연합공천은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두 사람 중 급한 쪽은 JP가 아니라 이 고문쪽이라 당분간 우리는 호의적 관계만 유지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JP에게 애증이 엇갈리는 존재다. 지난해말 검찰총장 탄핵문제로 두 사람은 상대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는 듯 싶었다. 당시 이 총재는 JP를 “소아병적”이라고 비난했고 JP 역시 이 총재를 “죽음의 사자 “라고 험구했다.

그러나 JP는 연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화가 나긴 했지만 험한 말을 한 것을 후회한다”며 뜻밖에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었다. 때맞춰 이 총재는 JP에게 난을 보냈고 JP는 발렌타인 30년산 술로 답례했다.

새해 들어서도 이 총재는 JP의 생일 전날인 6일 김무성 비서실장을 신당동 JP자택으로 보내 축하난을 전했다. 작년의 냉랭한 분위기에 비하면 관계개선의 여건은 조성된 셈이다.


약해진 위세, 돈가뭄 등 난제 산적

JP측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이 총재가 이번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않다. 이 총재가 JP를 돕기로 한다면 JP는 자민련의 교섭단체 등록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할 수 있다. 의원들도 이인제 고문보다는 이 총재와의 연대를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이 총재는 3김청산을 앞세워 JP와의 전면적 연대에는 부정적이다. 앞으로도 이 총재가 JP와의 관계회복에 적극 나설 여지는 별로 많지 않다.

이 총재 곁에 JP와 사실상 적대적 관계인 김용환 부총재가 있는 점도 JP에겐 부담이다. JP측에선 김용환 부총재가 이 총재와 JP의 접근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JP와 이인제 고문과의 관계와 달리 JP와 이회창 총재와의 관계는 이 총재가 결정권을 쥔 모양새다.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도 JP가 내심 정계개편과 함께 마음에 두고 있는 카드다. JP는 이미 지난해 “우리나라라고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느냐”며 박 부총재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1일 신당동으로 찾아온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 역시 JP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재 위세가 약해진 JP에게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다.

임동원 전 통일장관 해임안 파동으로 당에서 제명된 이한동 총리도 빼놓을 수 없다. 무산되긴했지만 이미 지난해말 두 사람의 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한 물밑회동이 깊숙이 진행됐다.

JP의 반감도 많이 누그러졌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사퇴로 오갈 데 없어진 이 총리가 개각이후 자민련에 복귀할 경우 JP가 그를 위한 병풍노릇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전히 가능성일 뿐이다. 김용채 부총재의 구속과 돈 가뭄, 의원들의 동요 등은 현실인 반면 타개책은 가능성에 머물고 있다는 데 JP의 고민이 있다.

이동국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2/01/09 19:04


이동국 정치부 eas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