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정신건강 해치는 건강보험

말 많고 탈 많은 재정통합, 정치적 유예로 어정쩡한 봉합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건강보험의 앞날이 이래저래 험난하기만 하다. 여야가 난산 끝에 건강보험 재정 통합을 1년 6개월 유예키로 4일 합의함에 따라 통합ㆍ분리 논쟁은 불씨를 안은 채 일단 봉합되면서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여야의 합의는 파탄위기에 처한 건보재정을 방치한 시간벌기식 담합이라는 비판과 함께 벌써부터 직장보험료를 추가 인상 하는 등의 민감한 대책이 거론돼 통합 유예의 후폭풍은 더욱 거셀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재정통합 유예를 전격 합의한 것은 국정혼란 비난여론에 밀려 절충점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를 넘긴 접촉에서 양당 총무는 “1년을 넘기면 분리로 간다”(민주당) “소득파악 등을 제대로 하려면 최소 2년은 유예해야 한다”(한나라당)고 맞섰다.

그러나 1일부로 재정통합에 돌입한 상태에서 여야가 시간을 끌어 보았자 여론만 악화시키는 상황에 처하자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1년6개월 유예는 분리ㆍ통합 논란을 차기 정권으로 이월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예합의에 따라 건보재정은 다시 구분계리로 되돌아가게 됐다. 여야 합의 내용이 반영된 건강보험법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 본회의를 거쳐 정부에 넘어오면 이관 시점부터 15일 안에 개정법률은 공포된다.

이번 임시국회 회기가 12일 종료되는 점을 감안할 때 `1년6개월 재정통합 유예'를 담은 개정건보법은 이르면 이달중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달부터 2003년 7월까지는 지난해와 똑같이 건보재정을 분리 운영해야 함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는 1일부터 현행 건보법에 따라 건보재정을 통합운영하기 시작했으나 실제로 변한 것은 별로 없다. 게다가 내달부터 다시 구분 계리로 되돌아가게 된 만큼 1월 안에 무리하게 `한시적 재정통합 상황'을 활용하는 정책은 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직장과 지역의 돈을 일시적으로 섞었다가 다시분리하는 절차만 남았을뿐 별다른 실무적 문제는 없다"면서 "현시점에서는 재정통합 여부보다 담배부담금을 얼마나 부과하느냐가 더 관심거리"라고 말했다.


통합유예로 직장 가입자 부담만 늘어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통합 유예로 가장 큰관심을 끄는 부분은 직장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폭이다. 당초 정부는 통합을 전제로 지역, 직장 모두 보험료를 올해부터 2006년까지 매년 8~9%씩 올리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당기적자가 지역은 7,053억원인 반면, 직장은 3배에 달하는 2조227억원에 이를 만큼 사정이 나빴기때문에 직장쪽에 추가 인상 요인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내년부터 직장 보험료를 지역 보다 더올리는 방안(매년 10%이상 검토)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가뜩이나 보험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소득파악률에서 피해를 보고있는 직장인 보험료를 더 올릴 경우 반발을 거셀 것이 분명해 현실화 여부는 미지수다.

그 대안으로 유예기간에 담배부담금이 직장 재정쪽으로 투입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권과 복지부 등은 지난해말 담배부담금을 지역, 직장 상관없이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로 함께 쓰기로 의견을 모았었다.

만약 담배부담금을 직장과 지역이 나눠 쓸 수 있다면 직장쪽은 연 3,000억~4,000억원의 추가 수입이 발생,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된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통합이 일단 유예된 만큼 지역에만 투입하자는 주장이 만만치 않아 어떤 결론이 나올 지는 미지수다.

담배부담금 부과액수를 놓고도 다소 논란이 예상된다. 당초 복지부는 1갑당150원의 담배부담금을 부과해 연간 6,600억원의 건보재정수입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시행 지연에 따른 수입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부과액을 갑당 180원으로 30원 높여야 한다는 것이 현재 복지부 입장이어서 국회에서 이 부분이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유예기간 후 상황도 불투명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유예기간이 끝난 후에도 정쟁으로 재정문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 감 잡기 어렵다”며“때문에 유예기간 동안에는 어떤 재정대책을 세워도 공염불이 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직장ㆍ지역 가입자 형평성 문제 여전

유예기간에 정부에 던져진 가장 큰 숙제는 뭐니뭐니해도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을 높이는 작업이다.

지난해말 현재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률은 34.4%. 소득파악률 100%인 직장과의 형평성 해소와 통합기반 구축을 위해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유예기간에 총력을 기울여 자영업자 등의 소득파악률을 높여봐야 40%선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통합의 전제조건이 ‘확립’될 가능성이 매우낮은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 등의 통합반대론자들은 소득파악률이 70~80%는 돼야 통합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유예가 갈등의 장기화를 초래할것이라는 걱정의 소리도 높다. 중앙대 김연명(사회복지학) 교수는 “유예기간에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에 통합론자, 분리론자 모두 시위 등을 통해 제 목소리를 내 갈등이 증폭되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지적했다.

박광희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2/01/10 11:49


박광희 사회부 kh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