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김기덕 감독의 인터뷰 거절

새해 들어 예상 밖의 일을 당했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나쁜 남자’의 개봉(1월11일)을 앞두고 있고, 또 그 영화가 올해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해 그로서는 3년 연속 세계 3대 영화제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으니 인터뷰 대상으로는 당연한 것이지요.

또 그 역시 지금까지 인터뷰를 거절한 적이 없었으니까 더욱 어리둥절했습니다. 더구나 자기 영화에 대한 설명에 누구보다 열성적인 감독이기도 하구요.

하, 이제는 너까지? 언젠가 어느 배우에게서 받았던 “이제 너도 컸다 이거지”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비록 국내 흥행감독은 아니지만 “해외영화제에서 나만큼 지명도 높은 한국감독 있으면 나와 봐”라는 것인가. 아니면 “옛날 누구처럼 나는 세계적인 감독이니 국내 평가나 여론, 관객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건가.

그렇더라도 그럴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아니라, 그는 누구보다 나의 영화에 대한 의미와 해석을 좋아했고, 또 내가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이유가 있었습니다. 5년 전이었습니다. 어렵게 만든 첫 작품 ‘악어’에 대해 짧은 리뷰를 썼습니다. 그 때는 김기덕이 누구인지 전혀 모를 때였습니다. ‘악어’는 분명 색깔이 분명한 영화였지만, 저예산영화로서의 아픔과 외로움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기사는 그 둘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다음날 얼굴도 모르는 김기덕 감독이 전화를 했습니다.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기사에 대해 항의를 했습니다. 저로서는 약간 어이없기도 했습니다.

‘악어’에 애정을 가지고 저예산영화의 존재가치와 그것이 이땅에 제대로 설 수없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배경설명을 하고 “다시 한번 읽어보고 그래도 내가 말한 것이 느껴지지 않으면 다시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가던 그는 경복궁에 내려 다시 읽었고,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애정을 알 것 같다”. 그후 그와 나는 서로에게 솔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니. 그는 나 뿐 아니라 “모든 매체와의 인터뷰를 거절한다고 선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미덥다고 당신하고만 인터뷰를 하면 내 꼴이 뭐가 되느냐. 제발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좋아, 이제 컸다 그거지”라고 빈정거리면서도 그가 왜 그런지를 알 수 있기에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수취인불명’이 베니스영화제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났을 때 그는 전혀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슬프다”면서 오락적 측면에서만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 그 힘에 휩쓸려가는 듯한 매체들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해외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가 이슈가 되고 나서야 국내 관객들이 비디오로 찾아보는 비극의 반복을 그는 슬퍼했습니다.

그는 결코 “국내관객들이 내 영화를 몰라주는구나. 그래도 괜찮아. 해외에서 알아주니까”가 아닙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영화가 국내에서 흥행 되기를 바랍니다.

그도 자신의 영화가 상업성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관객들이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내면과 욕구와 상처와 사랑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우선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없다면 오직 자신에게 영합하는 영화만 보게 되고, 그런 영화를 칭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편의 작품을 내놓으면서 그는 한국영화 관객과 매체에 그것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입’을 닫았을 것입니다. ‘나쁜 남자’도 기존 도덕관이나 질서로 보면 정말 ‘나쁜영화’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부산영화제를 찾은 외국영화인들은 열광했습니다. 베를린영화제도 기꺼이 그를 초청했습니다. 왜, 우리와 다른 반응일까요. 그 아득한 거리를 보며 김기덕은 슬퍼하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김기덕 감독의 7번째 영화 ‘나쁜남자’. 올해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나간다.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2/01/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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