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광기에 휩싸인 밑바닥 인생의 사는 법

■ 차퍼

살인범의 내면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예술가의 광기나 열정을 해독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살인범의 자기 과시욕, 파괴적인 성격, 모방심리의 밑바닥은 예술가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상식선에서는 예술가와 살인범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들을 다룬 영화에 의하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접점이 있다는 결론을 얻게된다.

앤드루 도미니크 감독의 2000년 작 <차퍼Chopper>(18세, 아이비전)는 호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범죄자라는 마크 차퍼 리드를 모델로 하고 있다.

'도끼(차퍼)'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마크는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즉흥적으로,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피를 보는 순간 곧바로 후회하면서, 칼을 휘두르게 한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그리고 다시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

문신으로 온 몸을 도배하다시피하고, 번쩍이는 금속 이빨을 내보이며 으시시하게 웃는, 미련하고 무지해 보이는 뚱보 사내. 맞춤법도 모르는 그가 감옥에서 쓴 자서전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책을 읽고 흥미를 느낀 감독이 다큐식으로 인물에 접근했다.

초고속 촬영한 도입부의 감옥 장면, 자신을 배신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지미와의 대면시 초록화면에 파란 담배 연기를 흘리는 등, 영상 표현에도 꽤 신경을 썼다.

이런 노력 덕분에 R등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호주에서만 1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각종 호주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다. 안정된 사회로 알려진 호주이기에 이런 광기의 인물 출현에 더욱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닌지. 마크는 현재 타스마하의 농장에 살고 있으며, 호주에선 베스트셀러 작가로 기록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인물의 삶을 재현하는 영화인만치, 주인공 연기자의 비중이 크고 중요한 것은 당연한 것. 마크 역의 에릭 바나는 진짜 범죄자 출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펼친다.

헌데 바나는 호주의 유명한 코미디언이라고 한다. 호텔에서 일하며 유명인을 흉내내다 코미디언이 되었고, 1997년엔 호주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선정되었다. 엽기가 지나쳐 코믹하기까지 한 인물 차퍼에 도전하여, 연기자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셈이다.

영화는 감옥에 수감 중인 차퍼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TV 인터뷰에 응해, 이 프로가 방영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간수 둘과 독방에서 자신의 프로를 보며 으쓱대는 차퍼. 유명인이 된 것을 즐기며 어린아이처럼 신나한다.

1978년, 차퍼는 펜드리지 교도소 중범죄자 지구에 수감되어 있었다. 멍청한 블루이와 충실한 지미(시몬 린든)를 거느리고 대장 노릇을 하는 차퍼에게, 뱃사람 출신 케이시가 구역 운운하며 신경을 거스린다. 차퍼는 어느날 갑자기 케이시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짓이겨 놓는다.

그리곤 피를 보자 "죽진 않을거야. 왜 나를 싫어해"라며 애원하듯 묻는다. "넌 유명해지려고 무슨 짓이든 하는 인간이잖아"라는 대답에 차퍼는 더욱 화를 내며 으르렁거리다, 간수를 불러 케이시가 자해 했다고 말한다.

차퍼에게 복수하려는 뱃사람 일당에게 매수된 지미가 칼을 휘두르자, 차퍼는 이감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차퍼는 조무래기를 시켜 자신의 두귀를 자르게 한다. 피를 뚝뚝 흘리며 "이래도 이감시켜주지 않느냐"고 히죽거리는 차퍼.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1/10 18:0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