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영화 '꿈속의 여인' 外

『 시사실 』


◆ '꿈속의 여인'

“다리만 벌려 주면 독일이 환영할 걸.”

집권층과의 ‘특별한’ 관계 덕에 승승장구의 길을 걷던 그녀에게 동료여배우가 파티 도중 쏘아 부치는 비아냥이다.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의 반격도 만만찮다. 대뜸 술을 얼굴에 퍼붓는 것으로 시작된 두 여인의 육탄 격돌로 일대 아수라장이 빚어진다.

나치 집권기의 유럽, 사교계를 주름잡으며 정치ㆍ군사계의 숱한 거물을 홀렸던 스페인의 여배우 마카레나.

‘꿈속의 여인’은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보고서이면서, 1938년 스페인 내란 발발직전 스페인의 미묘한 정치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그것은 곧 제 2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었다.

당시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독일의 문화성 장관 괴벨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뜨거운 대화, 도착적인 애정 표현 등이 전시라는 급박한 상황과 맞물린다. 관객들에게는 훔쳐보기의 야릇한 흥분마저 자아 낸다.

1938년 베를린 공항에 스페인사람들이 카메라 플래시 세례속에 내려 오는 것으로 121분의 영화는 시작된다. 히틀러가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스페인의 일류 배우들을 불러 ‘꿈속의 여인’이라는 영화를 촬영하도록 한 것.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영화 촬영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뭇 남성들이 벌인 사랑 싸움이 큰 줄기다. 괴벨스, 스페인 최고의 영화 감독이자 기둥 서방인 블라스, 집시 수용소에서 엑스트라로 차출돼 온 레오 등 세 사람과 마카레나가 벌이던 애정 행각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블라스는 괴벨스를 통해 좋은 조건에서 영화 찍을 기회를, 마카레나의 동료는 마카레나를 위해 괴벨스가 마련한 파티에서 철갑상어알을 맛볼 가능성을 탐했다.

마카레나의 집으로 몰래 도망쳐 온레오가 선물 보따리를 안고 그녀를 찾아 온 괴벨스의 뒷통수를 후려쳐 기절 시킨다는 황당한 설정은 영화라는 픽션이 실제 역사에 대해 퍼붓는 야유인가. 영화는 한술 더 떠, 기절해 있는 괴벨스 옆에서 둘이 정사를 나눈다는 설정으로 밀고 간다.

어찌보면 시시콜콜한 연예가 뒷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영화의 지향점은 다른 데 있다. 2차 대전 직전 스페인 영화계 뒷이야기를 통해 본 역사 서술이다.

특히 맨 마지막 대목이 그렇다. 날로 불안해져 가는 스페인을 탈출하기 위해 한밤중 공항에 도착한 영화인들에게 들이 닥친 일이다.

국외 탈출 기도가 나치에게 발각돼차에 태워져 정처도 모른 채 끌려가는 그들. 카메라는 뒷창에 옹기종기 붙어 창밖으로 내던져진 불안한 시선을 끝까지 추격, 서서히 좁혀들다 결국 사그라든다. 객석은 그를 통해 파시즘의 광풍에 휩싸인 스페인과 유럽의 불안한 미래를 읽는다.

그 직전, 나치가 집시를 탄압하는 장면에서 한 집시가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이 뇌까리는 단어는 이 영화의 이념적 지향점을 일러주는 단서다. “사회 혁명 만세!”

만만찮은 역사적ㆍ이념적 복선이 깔려있는 영화이지만, 관객에게는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의 고혹적 매력이 즐거운 볼거리로 다가 온다. 갈색 눈동자와 붉은 입술, 생머리에 도발적 몸매등은 집시 여인 카르멘의 현현이라는 평. 할리우드 스캔들로 성가를 높이던 그녀는 최근 배우 톰 크루즈와 결혼, 세인의 주목을 다시한번 끌었다.

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는1992년 ‘아름다운 시절’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이래, 블랙 코미디적 재치로 세계 영화팬들을 매료시켜 왔다. 이번 작품은 특히 그에게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선사한 작품이다. 18일 개봉.



[연극]



ㆍ 살아남은 자의 슬픔 '외면'

샐러리맨들은 항상 해고 위협을 안고 살아 간다. 아직 일자리에 있는 자들은 구조조정, 정리 해고 등의 이름으로 동료를 외면한 채 잔류한 자라는 의식에 개운치 못 하다. 극단 한강의 ‘외면’은 살아 남은 자들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평범한 샐러리맨의 아내다. 이웃집은 남편이 해고됐다. 직장에 남아 있는 우리집 남편은 어느날 우리집 문을 두드리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며칠 뒤, 그가 사라졌다는 소식만이 들릴 뿐이다. 얼마 있지 않아, 병약하던 그의 아내는 키우던 화초를 내게 맡기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두 쌍의 부부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람속에서 황폐해져만 가는 일반인들의 삶과 의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이웃집 내외가 사라진 뒤, 주인공은 우리집 화초와 옆집 화초를 가꾸며 그들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계절이 바뀌고 나서 돌아 온 그들의 참담한 모습에 나는 다시 절망한다.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민주노총, 삶이 보이는 창 등 6개 노동 운동 단체가 후원하는 무대다.

공동 창작, 장소익 연출, 신운섭 백대현 최금예 등 출연. 10일~2월 10일오늘ㆍ한강ㆍ마녀. 화~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일 오후 4시 30분.(02)762-6036


[콘서트]



ㆍ 문정원 피아노 독주회

피아니스트 문정원씨가 콘서트를 갖는다. 8세때 소년 한국일보 콩쿠르에 입선한 이후 서울대 음대 등지를 거쳐 미국 인디애나 음대 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쳤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베토벤의 ‘6개의 변주곡’, 라벨의 ‘물의희롱’,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7번’ 등을 들려 준다, 14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리사이틀홀.(02)580-1300


ㆍ 첼리스트 한규화의 '소나타 향연'

첼리스트 한규화가 귀국 독주회를 갖는다. 1997년 러시아 국립음악대학 그네신을 실기 만점으로 졸업한 이래, 러시아에서 각광 받아온 연주자이다. 리니의 ‘소나타 C장조’, 코다이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쇼스타코비치의 ‘소나타 D장조’ 드을 들려 준다. 피아노 김지선. 17일 오후7시30분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02)586-0945.


[미술]



ㆍ '질박한 한국에 미' 김상유 작품전

희수(77세)를 맞는 김상유 화백의 작품전이 펼쳐진다. 전성기이던 1960년~1999년까지 제작한 유화와 판화 작품이다. 한국인의 소박한 삶과 정서, 명상의 세계를 단순한 이미지로 재구성해 내는 것으로 정평 있는 작가다.

일상에서 벗어나 무위자연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탈속과 달관, 자연에 합일하는 인생관등 작가 고유의 정신 세계가 민화를 연상케 하는 질박한 아름다움에 녹아 있다. 특히 넓은 이마에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결가부좌를 틀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현대인에게는 고독한 순례자의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이번 전시회는 특히, 시각 장애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노화가에 대한 격려의 뜻이 함께 한다. 17일~2월 15일갤러리 현대.(02)734-6111.


ㆍ 박주연 초대전 ‘Rhyme’

박주연씨가 런던 수학 시절을 정리, 한 편의 작품으로 정리했다. 인사미술공간의 2002년 첫 초대 기획전 ‘Rhyme(돌림노래)’. 런던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갖가지 쓰레기를 소재로 한 텍스타일과 비디오물이다.

시장 주변의 바람결에 떠 다니는 봉지, 거리 곳곳의 과자 봉지, 우체부의 가방, 크리스마스 트리 등 도심의 쓰레기들을 모아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쓰잘데 없는 쓰레기가 미적 변형을 거쳐 관객에게 볼거리로 다가섬으로써, 현대 사회의 일회용 소비 문화를 재해석한다.

또 런던 거리의 쓰레기들이 일상을 벗어나 서울에 옴으로써, 물질의 가치란 상황과 관계에 의해 변할수 밖에 없잖느냐는 질문도 던진다. 13일까지 인사미술공간.(02)760-4720

장병욱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10 18:23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