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경제서평]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
(/로랑 꼬르도니에 지음/조홍식 옮김/ 창작과 비평사 펴냄)

얼마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 보고서를 냈다. 전반적인 고용사정은 경기침체를 감안한다면 비교적 양호한 편이지만, 청년층은 심각한 취업난을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크게 3가지다.

첫째는 경기 요인이다.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의 고용여건이 더 악화됐는데, 대졸자들은 주로 대기업을 선호하고 있다.

둘째는 노동시장의 구조변화다. 숙련도가 높은 경력직 수요는 증가한 반면 비숙련 근로자에 해당하는 신규인력 채용 규모는 감소하고 있다.

셋째는 체감 요인이다. 대졸자들이 과거에 비해 나쁜 조건으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 취업하는 과정에서 취업난을 체감한다. 맞는 말이다. 적어도 통계적으로는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심화되는 실업문제와 대응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지난해 공식적인 실업률은 3%대로 낮아졌지만 직장 구하기를 포기한 실망 실업자들을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평균 5.9%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따라 실업은 구조적인 사회문제로 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심각한 사회불안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 있어, 특히 외환위기 이후 실업만큼 우리 피부에 와 닿은 것도 드물다. 그 이전 30여년 간 ‘압축 성장’으로 일자리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실업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존재가 됐다.

제목부터가 사뭇 도발적인 이 책은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이 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실업 이론에 대한 분석이다.

경제학의 실업 이론은 ‘트럭으로 나를 수 있을 만큼’ 많다. 2000년 10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책은 프랑스와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비교적 멀리 있지만 한국의 상황을 비교적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어” 우리에게도 유용하다. “그곳에서도 단순히 너무 높은 임금과 광범위한 사회적 권리가 경제난이나 실업을 운명적으로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일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노동시장에서의 실질임금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임금이 그토록 높단 말인가. 논란이 어떻게 진행되든 실업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죄인은 항상 노동자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의 행동 때문이건, 노동시장을 망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각종법률 때문이건, 또는 사회복지제도나 노동조합 같은 제도이건 실업의 원인은 결국 노동자에 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항상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안정과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남의 도움이나 받으려고 하고, 겁쟁이에다 약삭빠르고 게으르며 충동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실업이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이들 경제학자들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만능주의다.

이를 비판하기위해 저자는 노동의 수요 공급에 대한 그들의 이론(신고전주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동자들과 고용주들은 노동시장이 열리기 전날 밤샘 작업을 하며 각자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임금과 고용 수준을 생각한다.

다음날 노동시장이 열린다. 이 시장에서 고용과 임금이 결정되고, 이 같은 조정은 모든 시장의 전체적인 조정을 가져온다는 것이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현실적으로 고용주와 주주들은 회사 이윤에만 관심이 있다. 또 다른 상품과는 달리 노동과 이를 행하는 사람을 구분할 수 없는 노동의 특수성으로 인해 노동자와 고용주 모두를 만족시키는 균형임금은 시장의 자율적 기능만으로는 형성될 수 없다.

이 같은 한계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비현실적이고 계급 편향적인 이론만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반론이다.

이 책은 유머와 풍자가 가득하다.또 먼저 독자들에게 경제학에 대해 겁먹지 말라고 강조한다. 경제학자들은 매우 복잡한 수학공식과 도표를 사용해 무척 과학적인 것처럼 증명하려 하지만, 실제로 경제현상을 이해하는데 별로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기존 경제학 이론을 먼저 설명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어, 그 경계가 어디인지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는 자칫 엉뚱한 길로 빠질 우려가 있다. 차분한 독서를 요하는 책이다.

입력시간 2002/01/1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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