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해의 中國통신](17) 고기술 조건 하의 국부전쟁

개혁ㆍ개방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민해방군은 여전히 불투명한 존재다. 보안이 군의 속성이라고 치더라도, 인민해방군의 정보공개수준은 서방 군대에 비해 훨씬 낮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해 미국 랜드연구소에서 출간된 ‘포스트 마오(毛) 시대의 중국군 연구 회고’에서 세계적 저명학자들은 정보접근 제한에 따른 연구의 한계를 고백했다. 아무리 최신 연구라 하더라도 인민해방군의 변화에 최소한 2~3년 이상 뒷북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불투명성은 국방예산 및 정치와 군의 관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군사예산은 중국이 비록 1995년, 98년, 2000년 잇달아 국방백서를 발표해 일부 정보를 공개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공식예산의 2배에서 최대 5배까지 이론이 분분하다.

1998,99, 2000년 중국군 공식예산은 각각 935억위엔, 1,077억위엔, 1,213억위엔(위엔:원화=1:160)이었다. 2000년의 경우 한국군사예산을 약간 넘는 19조4,000억원으로 300만명에 가까운 대군을 운영했다는 점은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치와 군의 관계는 군에 대한 민간통제가 확립된 서방 선진국과 달리 당-정-군이 혼합된 중국의 특성상 매우 주목되는 분야다.

군이 지도부 세대교체를 비롯한 국내정치와 외교정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 분야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군의 탈정치ㆍ전문화 추세를 인정하지만 파벌관계를 중시하는 측도 만만찮아 의견일치를 못보고 있다.

이에 비해 인민해방군의 독트린(doctrine), 이른바 군사교의(敎義)에 대해서는 서방학자들 사이에 상당한 일치점이 형성돼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집권과 함께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인민전쟁’에서 탈피해 큰변화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외면적인 변화는 무엇보다 병력축소와 체제개편, 무기 현대화다.

400만명을 넘던 인민해방군 정규군은 덩샤오핑 시대 300만명으로 축소된데 이어 장쩌민(江澤民) 시대 또다시 250만명으로 감축됐다. 여기에는 세계적 평화무드를 이용해 경제발전에 주력하려는 지도부의 의지가 담겨있다.

하지만 병력축소가 전력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체제개편과 무기 현대화를 통해 수적 감소를 상쇄하고 있어 전체적인 전력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현재 인민해방군의 독트린은 ‘고기술 조건하의 국부전쟁(高技術條件下局部戰爭)’이다. 과거처럼 구소련과의 대규모 전쟁이 아닌 국경충돌 등 국부전쟁을 중시하는 이 독트린 하에서는 무기 현대화와 기동성, 육해공군의 균형발전이 강조된다.

고기술 조건하의 국부전쟁이 새로운 독트린으로 정착되기까지는 몇단계 변화를 거쳤다.

78년 덩샤오핑의 집권과 함께 등장한 독트린은 ‘현대적 조건하의 인민전쟁’이다. 구소련군을 영토 깊숙이 끌어들여 격퇴한다는 인민전쟁을 국경부근에서 격퇴하는 전략으로 바꾼 것이다. 지상군 위주 전투에서 각군의 연합작전, 기동성 중시, 부분적인 무기 현대화가 이 단계의 초점이었다.

85년부터 나타난 개념은 ‘국부전쟁’이다. 중ㆍ소 화해가 이뤄지고 대규모 전쟁 가능성이 줄자 국경분쟁 등 소규모 충돌에 치중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 인민해방군은 전국 11대 군구를 7대 군구로 개편하고, 37개 야전군을 24개 집단군으로 축소 개편했다.

여기서는 군의 경량화와 각종 무기의 통합 운용이 강조됐다. 아울러 각 집단군에 ‘주먹부대’라불리는 쾌속반응부대(신속전개군)를 창설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의 ‘고기술 조건하 국부전쟁’ 개념은 80년대 후반 나타나 91년 걸프전을 계기로 급속히 정착됐다. 걸프전에서 미국이 보여준 첨단무기의 위력에 자극받아 전쟁을 다른 차원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민해방군은 서방의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ㆍRMA)개념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RMA는 기술발전에 수반한 무기체제의 변화에 맞춰 군구조를 개혁하는 일종의 시스템 재조정을 의미한다.

인민해방군과 함께 주목할 것은 인민무장경찰이다. 국내치안을 맡는 인민무장경찰은 감축된 인민해방군을 흡수함으로써 현재 최고 1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민해방군과 인민무장경찰은 이제 대외적 영토수호와 국내안정의 분업체계를 뚜렷이 형성하고 있다.

배연해

입력시간 2002/01/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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