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벼랑 큰 승부, 이창호 기사회생 하나?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30)

프로나 팬이나 한가지 평가였다. 어떻게 ‘2패 후 3연승’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창호가 2패 후에 3연승을 거둔 바는 그 동안 여러 번 있지만 이번만은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두 사람의 머리 속은 온통 이 대망의 시합이 지배하고 있었다. 5월의 대공습. 이세돌의 입장이다. 이세돌의 입장에서 대공습을 마무리하면 대망(大望)이 손에 잡히는 것이다.

이창호는 이 순간이 가장 외로운 순간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결국은 사람들은 이창호가 어떻게 지는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18세의 이 도전자. 그리고 0:2로 스코어상 뒤지고 있는 순간. 급기야 이 LG배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었다. 바로 이창호가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간 이창호와 이세돌은 나란히 후지쓰배에 참가했으나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둘 다 1회전 탈락의 고배를 들었는데 이창호는 60세의 노장기사 일본의 이시이 구니오(石井邦生) 9단에게 어이없는 패배를 당했고, 이세돌은 타이완의 저우쥔신(周俊勳)에게 고작 136수만에 불계패를 당하는 이변을 기록한다.

두 사람이 정상적인 컨디션이었으면 도저히 질 수 없는 상대들에게 지고 만 것이다.

이 두 사람이 한달 후면 마주칠 LG배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후지쓰의 패배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창호로서는 LG배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 표명이고 이세돌로서도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드디어 5월15일 LG배 3국-.

이창호가 마치 과거 린하이펑(林海峰)과는 시대간 샅바싸움을 벌이던 동양증권배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모여들었다. 이 한판에 쏠린 바둑가의 관심, 나아가 전국민적 관심이 지극했다.

천하의 이창호 2연패. 18세 소년 이세돌의 대쪽 가르듯 한 2연승. 국내외 바둑계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러운 가운데 결승 5번기 제3국이 속개됐다.5월15일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 특설 대국실. 2국이 끝난 지 77일 만이다.

남은 화살이라곤 하나뿐인 이창호가 셋을 가진 이세돌을 맞춰 눕힐 수 있을까. 바둑가는 열이 모이면 아홉은 불가능하리라고 했다.

이세돌의 노도 같은 기세를 아무리 이창호라 해도 세 차례나 막아내기는 힘들 것이란 얘기였다.산술적 우승 확률 1:7. 숙명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상식’고 ‘기적’인양, 둘은 눈길을 피한 채 마주 앉았다.

소위 고바야시(小林光一)류로 이창호는 출발한다. 최근엔 일본 1인자 왕리청(王立誠)의 단골처럼 알려져 있지만, 한 때는 이창호도 애용했던 포진이다. “싸우려면 싸우자”고 이세돌은 도발한다.

두 달 여 전 뜻밖의(?) 2연승 후 이세돌을 말했다. “상대는 다른 사람 아닌 이창호 사범님이므로 아직 안심할 수 없다.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겠다.” 그는 출전 전날 가족들에게도 “3국을 마지막으로 알고 두겠다”고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이세돌은 어린 나이에도 장기 레이스의 승부처를 정확히 짚고 있었던 셈이다.

“바둑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이창호는 3국이 벌어지기 며칠 전 유창혁에게 이렇게 토로했다고 한다. 시즌 전적이 12승10패가 됐었다. 실전 감각이 무너진 데다 자신감마저 잃은 이 무렵이 이창호에겐 최대의 위기였다.

매년 치르는 결승이지만 오늘처럼 부산한 분위기도 처음이다. 좌변에 커다란 백집을 지켜둔 채 상변 흑집으로 뛰어든 이세돌. 여기서 일단 죽고 사는 공방전이 벌어진다. 정확히 석 달 동안 쉬면서 이창호의 약점을 집어냈다. 공격을 싫어하는 이창호의 기질 말이다.

[뉴스화제]



·목진석 난공불락 이창호에 선승

새해 첫 도전기로 관심을 모은 기성전 도전기에서 목진석6단이 최강 이창호 9단을 이겼다. 1월4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제13기 현대자동차배 기성전 도전1국에서 괴동(怪童) 목 6단이 이 기성을 상대로 197수만에 흑불계승으로 5번승부의 첫 승점을 따냈다.

이날 대국에서 목 6단은 중반전까지 이 9단 특유의 견실함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기백이 넘치는 승부수를 작렬시키면서 난전을 유도, 하변의 백 대마를 통째로 포획하며 통쾌한 불계승을 거뒀다.

목 6단은 이번 기성전 도전 5번승부가 두 번 째 도전이며, 지난 10기에서는 도전자로 나서 이 9단에게 2:0 완봉패를 당하고 물러났었다. 한편 이 9단은 본격타이틀전에서 ‘비4인방’에게 한번도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2/01/1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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