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대의 한의학산책] 녹차와 건강①

아마 1970년 초입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법정 스님의 수상집을 처음 읽었을 때 그 기분을 저는 잊지못합니다. 마치 한 모금의 맑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를 마신 느낌.

스님의 글에 대한 느낌을 제가 찾을수 있는 최상의 표현으로 이렇게 써 놓고 보았으나 여전히 속세의 때가 묻은 것 같아 운치가 없군요. 아무튼 스님의 글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이 내 영혼을 울렸습니다.

녹차와 건강이란 제목을 놓고 보니 자연 30년전의 그 시절로 되돌아가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며 옷깃을 여미던 때가 기억나는군요. 끽다거(喫茶去)란 조주선사(趙州禪師)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백 스무 해나 장수한 조주선사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차를 내놓았습니다. 어느 날 두 학인(學人)이 법을 배우기 위해 찾아와 인사를 드립니다.

노사(老師)는 한 학인에게 “이전에 여기 온 적이 있는가” 고 묻습니다. 학인이 “아니오, 처음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래, 그럼 차나 한 잔 들지”하고 차를 내놓습니다.

이번에는 함께 온 학인을 보고 그대는 전에 여기 온 일이 있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예, 한 번 왔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말합니다. “그럼 차나 한 잔 들게.”

곁에서 지켜보던 그 절의 원주(院主)가 이상히 여겨 묻습니다. “노스님, 이전에 온 일이 없는 사람이나 다시 찾아온 사람이나 어째서 똑같이 차나 들라고 하십니까?”

노사는 빤히 원주를 바라보다가 “원주”하고 큰소리로 부릅니다. 원주가 깜작 놀라 “예” 하고 대답을 하자 선사가 말합니다. “자네도 차나 한 잔 들게.”

오랜만에 낡은 책을 꺼내어 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니 골짜기에 메아리가 울리고 바람이 지나가며 무겁게 허리를 굽혔던 대숲이 일렁이면서 눈보라가 흩날리는 듯합니다. 이 글을 다 쓰면 스님과 자야부인의 아름다운 일화가 서린 길상사를 한 번 찾아갈 생각입니다.

녹차는 차나무에서 딴 잎으로 만듭니다. 잎을 따서 바로 찌거나 볶는 방법으로 열을 가하면 엽록소를 파괴하는 산화효소 작용이 정지됩니다. 그래서 바람소리 은은한, 녹색을 유지하는 비발효차입니다.

우리나라 차의 대명사라고 할 수가 있는 작설차와 죽로차는 차의 품질과 맛을 잘 표현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작설차는 어린 찻잎이 참새 혀를 닮았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작설차는 고려 말 재상 이었던 익제 이제현(李劑賢)이 시를 지어 송광사 경호선사가 햇차를 해마다 보내주는 은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는데, 거기서 처음 등장한다고 합니다.

죽로차는 대나무 이슬을 머금고 자란 차로 그 맛이 매우 뛰어납니다.

인간이 차를 언제부터 마시게 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중국의 육우(陸羽)가 지은 다경(茶經)에 보면 B.C 2700년 신농(神農)시대부터 마셨다고 합니다.

차는 처음부터 마시는 음료로 사용된것은 아니고 음식과 약의 기능을 가진 식약동원(食藥同源)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여 천지신과 조상 제례에 헌다(獻茶)하면서 점차 일상생활 중에 마시는 기호음료로 정착했다고 합니다.

신농씨가 처음 차를 마신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고 음식에 대한 지식이 적었기때문에 신농은 직접 산천을 다니면서 초목을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고 합니다. 하루는 신농이 일백 가지 풀을 먹고 이 중 일흔 두 가지 독초에 중독이 되어 큰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마침 강풍이 불어 나뭇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을 집어 입에 넣고 씹어 본 결과맛은 쓰고 떫으며 향기가 있었으며 먹은 뒤에 정신이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차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신농 시대에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병자들이 약재를 구해서 끓여 마시곤 했는데 신농씨가 병자들을 위해서 큰 나무 아래서 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있을 때에 몇 잎의 나뭇잎이 솥 안으로 떨어지면서 연한 황색을 띄었다고 합니다.

신농이 그 물을 퍼서 마시니 맛이 쓰고 떫으나 뒷맛은 달며 해갈 작용과 더불어 정신을 맑게 하는 작용이 있음을 알게 되어 그 뒤로부터 음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농씨의 전설을 살펴보면 우리는 옛사람들이 차의 폴리페놀 성분이 약초의 독성분과 쉽게 결합하여 해독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경험 상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한 카페인이 뇌에 자극을 주고 기분이 상쾌해지며 강심 작용을 한다는 것도 옛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어 차는 인간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오랜 세월이 흘러 조주선사 시대에는 끽다거와 같은 유명한 말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현대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장

입력시간 2002/01/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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