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산책] 고대 로마의 동성애

이 땅에서 ‘동성애’를 바라 보는 눈은 매우 차갑다. 역겨운 변태행위 정도로 취급하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동성애는 오래전 서구인들의 생활 속에 당당하게 자리 잡았던 자연스러운 행위이고 관습이었다. 서양의 동성애 역사는 성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한 현대인의 인식을 다시 한번 짚어보게 한다.

김경현 고려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최근 ‘역사와 문화 4’(푸른역사 발행)를 통해 발표한 논문 ‘고대로마의 동성애’는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금기시해 온 ‘동성애’란 주제를 학문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서양은 이미 70년대부터 이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해 많은 학문적 성과를 축적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아직 어렵고 낯선 주제이기 때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그동안의 서구 동성애 연구가 언급한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의 남성 동성애는 대체로 성인과 소년간의 관계, 즉 ‘소년애’였다. 그리스인들은 소년과의 신체 접촉을 통해 성적 쾌락을 얻으려는 성인 남성의 욕망을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했다.

아테네의 경우 당시 통용하는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소년애는 법과 관습의 제약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명예롭고 찬양할 만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소년애란 청소년기 남자와 성년남성의 ‘연애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양자간의 육체적 탐미와 우정, 성년의 소년에 대한 사회적 교육 등이 결합돼 있는 듯한 뉘앙스를 띠고 있다.

이처럼 고대의 성은 현대의 그것과 전혀 다른 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오늘날처럼 동성애가 반자연적이라는 이유로 금기시되지 않았다.

또한 그간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는 동성애의 ‘원산지’처럼대접 받고 있다. 그러나 로마 사회에서 동성애가 그리스의 문화적 영향만을 받아 나타났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또 로마에서 소년애가 금기시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꽤 확산돼 있었다는 점도 밝혀지고 있다.

로마의 영웅 케사르와 안토니우스, 심지어는 네로 황제까지 어린 시절 성년남성과 수동적인 성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로 소년애가 일반화됐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학자들은 2세기무렵부터 스토아주의 같은 금욕주의 도덕론이 혼인과 출산을 위한 성, 그리고 배타적 부부애를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동성애는 소멸되기 시작했다고 보고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로마 동성애의 양상을 3기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제1기에는 자유시민간의 동성애를 규제하는 양상이 보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시민과 노예, 혹은 시민과 매춘남과의 동성애는 허용했지만 자유인 남성간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규제한 시기이다.

소년애도 마찬가지이다. 기원전 226~149년에 제정된 것으로 보이는 성범죄 처벌법과 처벌 사례에서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제2기는 그리스적 사랑의 유입에 따라 소년애가 퍼진 시기이다. 그러나 로마의 소년애는 ‘교육과 애정’이라는 그리스의 이상적인 성애의 담론을 갖지 못하고, 노예와 여성 외에 또 다른 상대로서의 소년과의 관계를 의미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1~2세기 혼인제도의 확산과 부부애의 강조로 ‘이성애’가‘새로운 연애술’로 부각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제3기는 동성애가 위축하고 퇴조한 시기이다. 동성애를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스토아주의자들의 금욕주의가 힘을 얻을수록 강화됐다.

부부간의 성애만을 인정한 기독교의 교리도 영향을 주었다. 이 같은 양상을 뒷받침하는 법규들이 4세기 이후 간헐적으로 제정된 것이 확인됐다. 동성애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려 한 시도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이르러서 확실히 나타났다.

동성애에 관한 다양한 연구 이론들은 크게 ‘본질론’과‘사회적 구성론’으로 분류된다. 본질론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고도 하는데, ‘성 정체성이란 타고나는 것이고 생물학적 인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인성의 본질을 이룬다고 보는 관점이다.

사회적 구성론은 성 정체성이 성장환경, 즉 문화, 사회적 조건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보는 이론이다.

움베르토 푸코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로 구분되는 성 정체성은 18세기 이래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고안물이며, 동성애가 병리적인 것, 부도덕한 것이라는 가치판단도 기독교적 전통에 더하여 근대적 성의 과학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말하며 사회적 구성론적 입장에 섰다. 김교수는 사회적 구성론적인 입장에서 이 논문을 썼다.

김철훈 문화과학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16 15:16


김철훈 문화과학부 c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