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골프신동의 '신선한 반란'

안재현 美 PGA 투어 최연소 출전, 미국무대 본격 노크

8일 뉴질랜드 웰링턴 공항. 하와이에서 메르세데스 챔피언십을 끝내고 자가용 비행기에오른 골프천재 타이거 우즈(26ㆍ미국)가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 어머니 쿨티다와 함께 트랩을 내려왔다.

마우리족 의상을 입은 환영단이 전통적인 관례대로 우즈를 맞이했고 이 장면은 뉴질랜드 전역에 생중계됐다. 남반구의 조그만 나라 뉴질랜드는 골프 얘기로 들끓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우즈가 개런티 200만 달러를 받고 출전할 예정이던 제95회 뉴질랜드오픈(총상금 44만달러)의 대회 장소 파라파라우무 비치GC(파71ㆍ6,618야드)는 또 하나의 소식에 술렁댔다.

이날 열린 월요예선전서 한국인 13세 소년 안재현이 이글1, 버디5, 보기1개로 6언더파 65타를 쳐 1위로 본선 행 티켓을 거머쥐었기 때문. 코스레코드를 새로 쓰며 본선에 오른 안재현은 1871년 시작된 대회 사상 최연소 출전자(만13세332일)로 등록됐다.


전세계 시선 집중

AP, AFP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안재현이 미 프로골프(PGA)투어 및 내셔널타이틀이 걸린 오픈 대회 사상 최연소 출전자라고 흥분했다. 1957년 캐나디언오픈에서 봅 패너식이 15세 8개월로 참가자격을 얻었던 최연소기록을 무려 2년 이상 갈아치운 것이다.

‘전세계가 13세 소년의 경이로움에 시선을 빼앗겼다’는 뉴질랜드 해럴드, ‘한국의 13세 소년이 골프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AFP의 칭찬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안재현은 본선 무대에서도 “컷오프에 통과하고 싶다”는 소망을 그대로 실행했다. 1라운드를 이븐파로 출발한 안재현은 남극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으로 어려움을 겪은 2라운드서 버디3, 보기3, 트리플보기 1개로 중간 합계 3오버파 145타를 기록, 공동 60위에 올랐다.

썩 만족스러운 스코어가 아니었고 참가자 138명 가운데 중하위권에 그쳤으나 역대 최연소 컷 오프 통과자로 남는 또 하나의 기록을 보탰다.

체력이 부쳤는지 4라운드서 8오버파로 무너지며 합계 11오버파 229타로 공동62위까지 밀려났으나 프로 데뷔 전을 무난하게 끝낸 안재현의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다.

“컷 오프를 통과하지 못했더라도 세계적인 골퍼들과 실력을 겨뤘다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라고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아버지 안충환씨는 “6월 US주니어챔피언십에 출전해 미국 진출을 모색해보겠다”며 더큰 무대로 도전할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2, 3라운드서 그는 성인 골퍼 못지않은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 주었다. 2라운드는 전형적인 링크스 코스에 바닷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클럽선택과 코스공략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1번홀(파4ㆍ368야드)을 버디로 출발한 안재현은 파5의 7번홀(457야드)에서 티샷을 러프에 빠뜨리며 트리플 보기로 가까스로 홀아웃했다.

당황한 듯 안재현은 9, 10, 11번홀서 연속 보기로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파5홀인 12, 18번홀에서 버디 2개를 추가하며 탈락 위기를 모면했다. 경기 후 안재현은 “트리플보기에 당황해서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솔직하게 밝혔으나 후반 집중력을 발휘, 반전에 성공하는 경기운영능력을 보였다.

3라운드는 티오프 전 쏟아진 폭우로 경기가 3시간 늦게 진행됐다.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다 그린이 흠뻑 젖어있어 퍼트 감각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안재현은 버디와 보기 각각 4개씩으로 이븐파를 기록, 중간합계 3오버파 217타로 공동 43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우상, 타이거 우즈와 한 무대에

“우즈와 같은 대회에 출전하는 게 평생 소원”이라던 안재현은 그의 우상과 한 무대에 서게 됨으로써 많은 혜택을 덤으로 챙겼다.

1871년에 시작된 뉴질랜드오픈은 지난해까지 자그마한 국내 대회에 불과했다. 보도진도 평균 20~30명 밖에 오지 않았고 대회 참가자도 뉴질랜드나 호주 출신들 위주로 구성됐다.

하지만 올해 우즈가 친구처럼 지내는 캐디 윌리엄스의 고국에 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출전을 통보하면서 수준이 매머드급으로 올라갔다. 보도진은 전 세계 곳곳에서 350명 가까이 몰려왔고 경기 장면은 1억 5,800만명에게 생중계됐다. 오죽했으면 뉴질랜드 정부가 이 대회를 국가 이미지 제고기회로 활용할 계획까지 세웠을까.

안재현이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자 뉴질랜드 언론들은 골프신동을 자국 출신으로 내세우는 해프닝도 있었다.

비록 안재현이 컷오프 통과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키위(Kiwi,뉴질랜드 사람)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한국인이다”라고 말해 이런 오해는 풀렸다.

하지만 현지 언론의 안재현에 대한 짝사랑은 계속됐다. 1라운드 직후 안재현을 말 수가 적으며 예의가 무척 바른 소년이라고 소개했다. 호주출신 데이비드 힐의 말을 인용,‘골프신동의 경기 내용은 경이 그 자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기적 아닌 피나는 노력의 대가

1988년 경기 의정부시에서 태어난 안재현은 7세 때 주말 골퍼였던 아버지 안충환(42)씨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았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안재현은 인천 효성 남초등 6학년 때인 99년 세리컵 초등부 우승컵을 차지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그 해 8개 대회에 참가해 우승트로피 7개를 쓸어 담으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당장 국가대표상비군에 선발됐으나 아버지 안씨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골프유학을 선택했다.

그 해 말 안씨가 개인사업을 정리하고 뉴질랜드 이민을 가면서 안재현의 골프유학이 시작됐다. 로토루아 골프학교에서 진학한 안재현은 매일 오전 6시부터 체육관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력을 다지고 매일 10㎞를 뛸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보였다.

골프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기량도 급성장했다. 지난 해 뉴질랜드에서 출전한 아마추어대회에서 톱10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고 세계고교골프대회 2년 연속우승을 이뤘다.

안재현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성인 못지않은 체격조건(181㎝, 84㎏)에서 뿜어 나오는 호쾌한 드라이버샷. 평균 260야드 정도에 270야드 이상도 곧잘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페어웨이 안착률이 90%에 이를 정도로 정확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장타자 우즈가 출전하는 것에 대비, 지난해 대회조직위가 골프장 전장을 160㎙ 늘렸고 3, 12,18번홀을 까다롭게 고쳤는데도 안재현은 파5홀서 이글을 잡아내며 코스레코드 신기록을 수립했다.


새로운 물결, 안재현은 살아남을 것인가

미국의 골프월간지골프다이제스트는 올해부터 겁 없는 젊은 골퍼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했다.

사실 1965년 미 PGA투어에서 Q_스쿨(자격테스트)이 생긴 이래 20대 이하 골퍼들은 성인 무대에서 뛸 기회를 좀처럼 얻기 어려웠다. 스폰서들의 도움으로 20대 이전에 프로 무대에서 경기를 치른 우즈를 비롯, 스콧 버플랭크, 필 미켈슨, 저스틴 레너드, 세르히오 가르시아 등은 운이 아주 좋았던 예외에 속한다.

지난 해 고교생 타이 트라이언(18)이 Q_스쿨을 통과하면서 미국은 흥분에 휩싸였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무대를 노크할 안재현이 뉴질랜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다.

정원수 체육부기자

입력시간 2002/01/16 17:47


정원수 체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