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이무영식 인사 관행에 쐐기

발탁인사 배제·연공서열 중시로 내부균열 최소화

지난해 12월19일 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전국 지방청장과 서장등 263명이 자리를 함께한 지휘관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의 가장 핵심은 이팔호 신임 경찰청장의 지시로 하달된 ‘총경보직인사지침’. 이른바 대외비로 분류돼 이전에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지침이다. 이 인사지침의 핵심은 바로 ‘발탁인사배제, 연공서열 중시’로 요약된다.

이무영 전 경찰청장(윤태식 사건으로 수감중)이 재임 2년간 강도높게 추진했던 개혁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인사 부분은 반대의 평가가 많았다. 발탁인사라는 말로 포장된 인사의 전횡이다. 말이 좋아 ‘발탁’이지지역, 학연에 기댄 ‘정실’인사에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잡은 줄고 음지에 '볕'

총경 승진후 곧바로 경찰의 핵심 요직인 경찰청 인사과장으로 발령을 낸다거나 총경승진후 지방서장, 수도권서장, 서울서장 순이라는 기존의 경험 쌓기 질서 등을 무시한 거침없는 인사발령에 대한 내부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박금성 전 서울청장은 경무관 승진 3년만에 수도치안 총수로 오르는 초고속 승진끝에 학력시비에 휘말려 낙마하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실제로 이 인사파동에는이 전 청장의 임기연장과 맞물려 뒷말이 무성할 만큼 정실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더욱이 이 전청장의 간부후보 동기로 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았던 19기 경정이 무더기로 총경으로 승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빚어져 인사권의 남용이라는 비난도 많았다.

경찰조직내에서 지휘권을 강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인사권’에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전 청장이 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일부 지적도 없지 않다.

실제로 발탁인사의 수혜자 상당수가 능력과 자질면에서 우수한 자원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최초의 여성총경으로 청소년 성매매 단속에 기여를 한 김강자 서울청 방범지도과장은 국회의원 후보로까지 거론될 만큼 이 전 청장 시절에 ‘뜬 인사’다.

하지만 발탁인사의 공정성이나 문제점을 되짚어볼 때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요소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발탁인사가 내부 균열과 측근행정을 양산하는 폐단을 낳았다는 점에서 실패한 인사정책이었다는 내부 평가가 앞선다.

그래서 이팔호 신임청장이 천명한 인사지침은 실세와 비실세가 갈리고 주류와 비주류가 엄격히 구분되는 지난 2년간의 인사관행에 쐐기를 박는 조치였던 것.

이 청장은 이 자리에서 “한사람을 기쁘게하기 위해 열 사람이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로 인사지침의 성격을 표현했다.

인사지침을 보면 이른바 특별군으로 분류된 서울 서장과 지방 1, 2, 3군지역에 초임자 배치를 엄격히 제한하고 본청과 서울청 역시 승진 2년 이상에 한해 진입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한마디로 경력을 중시하는 인사제도라 할 수있다.

대민업무가 대부분인 경찰업무의 성격상 개인의 자질 이상으로 일선 경험이 중요한 측면을 고려할 때 수긍이 가는 측면이 적지 않다.


이팔호 청장, 소외부서 배려 등 구제인사

지난해 11월과 지난 4일 있었던 경무관ㆍ총경 승진인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소외부서의 대약진 등 구제인사로 요약된다.

11명의 경무관 승진자중 경찰청 방범기획과장에서 승진한 송강호 총경은 경무관 승진인사의 백미로 표현되기도 했다.

방범국 창설이래 방범출신 총경이 경무관으로 승진하기는 처음일만큼 경찰 내부적으로 이례적이고 고무적이었다는 평가다. 총경승진인사에서도 53명의 승진자중 방범출신 경정이 대거 7명이나 포함될 만큼 뚜렷한 약진현상을 보였다.

지역과 간부후보나 고시 등 출신성분, 연공서열에 비해 기능별 안배에는 그다지 충실하지 않았던 그간의 관례에 비춰볼 때 방범국 출신의 대거 승진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사실 방범은 경찰행정의 기본단위이면서도 그간 논공행상 과정에서는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왔던 측면을 고려하면 소외부서에 대한 상당한 배려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경찰청 사이트에는 기피부서였던 방범부서로 가겠다는 글이 다수 올라올만큼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발탁과 특정지역 출신 우대 등으로 여러 차례 ‘물’ 먹을 수 밖에 없었던 92-93년 경정 승진자중에서 적지 않은 고참들이 대거 구제(?)되고 94, 95년 승진자가 주류를 이룬 반면 96년 경정승진자중에 한명도 발탁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연공서열을 엄격히 적용했다. 유일한 발탁인사라면 이금형 여성대책실장. 98년 경정승진자지만 여경이라는 특수성이 감안된 열외적인 성격이 강하다.


연공서열 중시, 복지부동 부를 우려도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정책에는 부정적 요소가 적지 않으나 과거 발탁인사의 폐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뒷말은 그다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경찰인사의 오랜 부정적 요인인 이른바 청ㆍ비ㆍ총ㆍ공의 우대는 고쳐지지 않는 측면이다. 청와대, 비서출신, 총무, 공보 등 권력핵심과 주변에 대한 인사우대는 이번 인사에서도 대체로 반영됐다. 한마디로 승진이 보장된 자리라는 인식이 깨지지 않은 것이다. 이 청장도 이 부분에 대해 상당히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청장이 공언한대로 한 사람을 위해 열 사람을 희생시킨 인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뒷말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연공서열 중시정책이 조직의 타성을 강화할 우려가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승진자리를 찾아 줄대기에 전념하고 자리를 꿰 차고 나면 윗사람 눈치나 살피며 세월을 보내며 복지부동할 우려도 있다.

특히 승진자리라는 인식이 굳어진 일부 보직에는 15일로 예정된 총경보직인사를 앞두고 경쟁자들 간에 치열한 인사로비가 빚어지고 있다.

조직을 사분오열하는 유언비언의 난무와 치열해지는 인사로비로 승진자리가 굳어지는 관행은 경찰인사가 갖는 난맥상이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누구나 청탁을 받지않겠다고 공언하지만 실제 자리에 오르면 이런저런 이유로 흔들리기 마련”이라며 “인사로비가 통하지 않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인사때마다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진황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2/01/16 18:18


정진황 사회부 jhchu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