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3인 '反昌' 선봉에 서나?

한나라당 박근혜·이부영·김덕룡 '3자연대'

한나라당이 급격한 내홍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선후보와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동안 잠복해온 주류와 비주류간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이미 경선출마를 선언한 박근혜 부총재와 탈당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이부영 부총재, 비주류의 원조격인 김덕룡의원 등 3인이 13일 ‘한나라당 쇄신에 대한 입장’을 공동으로 발표, ‘비주류 3자연대’를 현실화 시켰다.

그간 이회창 총재의 카리스마에 눌려있던 비주류 중진들이 경선 논의의 틈새를 비집고 이 총재를 향해 노골적인 싸움을 걸어 오고 있다.

말이 비주류 연대이지 야당의 비주류 3인의 연대는 당의 울타리를 벗어나 ‘비(非)여권’의‘반(反) 이회창’ 세력 연대의 중심체로 발전할 폭발력을 지니고 있어 정가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뭉쳐야 이총재 아성 뚫는다”

비주류 3인은 왜 힘을 합했을까. 이유는 간단한다. 혼자의 목소리로는 견고한 당내의 이총재 아성을 뚫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9일 열린 한나라당 총재단회의. 박근혜ㆍ이부영 부총재는 ‘선 당개혁, 후 전당대회’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특히 전당대회 준비를 위한 특별기구로 ‘선택2002 준비위’(선준위)를 발족시키면서 이들은 선준위에 외부인사를 영입하고 후보 본인도 위원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도높게 주장했다. 박 부총재 등은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룰’을 만드는 절차부터 공정해야한다는 입장.

그는 나아가 “공천권을 이 총재가 쥐고 있는데 어느 국회의원이 선준위에 와서 바른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주류측에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다수의 참석자들은 “우리당의 일 조차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느냐” “선수가 룰을 정하고 심판까지 보겠다는 것이냐”며 냉랭하게 반대했다. 이들은 대부분 주류측 인사들이었다. 비주류 3인방이 서로간에 힘을 합치지 않으면 모두 고사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들이 비주류 연대를 공식화한 시점도 짚어볼 대목. 주류 진영은 당권 ㆍ대권 분리를 요구하는 비주류의 목소리가 커지고 당내에서 이슈화할 조짐을 보이자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류측은 17일께 이 총재가 연두기자회견을 갖고 이자리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당권ㆍ대권 분리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경선기간에는 총재직을 내놓고 총재권한 대행 체제로 당을 운영해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계획을 은근히 흘렸다. 급해진 것은 비주류측이었다.

이들은 대선 후가 아닌 대선전, 즉 후보와 당권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 총재가 이를 발표해 버리면 이런 담론 역시 ‘대선후 당권ㆍ대권 분리’가 대세를 장악할 우려가 높았다.

결국 이들은 서둘러 회동, 비주류 연대를 성사시켰다. 이들은 성명에서 “당지도부 선출은 지방선거 이전에, 대선후보 경선은 월드컵 이후 실시하여야 한다” “당권 대권분리를 위해 양대 경선에 중복 출마를 금지해야 한다” “총재직을 폐지하고 전당대회에서 직선으로 선출되는 최고위원회가 형식적인 협의체가 아닌 실질적 권한을 갖는 의결기구가 돼야 한다” 등 ‘혁명적’인 주장들을 내세웠다.


주류 “스타일 구길라”, 탈당에도 촉각

주류측은 비주류 연대의 성명을 보고 경악하는 분위기. 그간 주류진영은 “어지간한것은 비주류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이었다.

예선(경선) 보다는 본선(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주류측으로선 ‘어떻게 하면 모양좋게 대선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선을 치를까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심지어 박근혜 부총재가 출마선언을 하자 “박 부총재가 너무 지지도가 안나와도 안되니 지원도 해주어야 하고 다른 후보들도 몇 명 나와 다자(多者)구도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전략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주류측의 호의는 점점 의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실제 비주류의 행동에 대한 해석은 주류진영에서 흘러나오는 의심을 가미하면 180도 달라진다.

주류측에선 비주류 연대의 ‘후보ㆍ 당권 분리’ ‘총재직 폐지 및 최고위원제 도입’등 핵심 주장들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한 주류측 핵심 인사는 “당권 대권 문제는 당의 다수결로 결정되어야 한다. 1등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기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주장하는 것을 다 받아 줄 수 는 없다. 그러면 당이 어디로 가겠는가”라며 비판했다.

주류 진영에선 나아가 ‘비주류연대가 이런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은 경선에서의 승산이 희박하니 일단 판을 흔들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쇄신안 거부를 명분으로 경선 불참과 탈당 등 특단의 조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정가에선 이들 3명 모두 탈당 가능성에 대해 시나리오 차원에선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분석을 보이고 있고 실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돌입하면 이들 중 한 두 명은 한나라당에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박근혜 부총재는 “공정하게 룰을 만들 생각은 안하고 엉뚱한 의심을 먼저 한다”며 “탈당 같은 것은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며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

김덕룡 의원과 이부영 부총재는 개혁정당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금과 조직 등의 문제 등 해결해야 될 과제가 많다는 이유로 선뜻 신당 깃발을 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3인 3색, 파괴력에 한계 보일 듯

정가에선 비주류 3인이 힘을 합해도 당장 이회창 총재 체제를 뒤엎기는 ‘계란에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 총재측은 비주류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이를 받아 들이지 않을 경우 자칫 비개혁적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또 지나친 감정대립으로 후보 경선이 고성과 시비로 얼룩지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특히 주류진영이무리한 쇄신안을 거부하면 이를 빌미로 비주류측이 경선 불참을 선언해 버리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는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한편 정가에선 이들의 연대가 대선전에 당권ㆍ대권 분리가 성사되는 것을 전제로 대선후보와 당권을 분담하는 ‘역할 분담론’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에는 지지기반과 동정표를 섞어 대권은 어려워도 당권 도전에는 상당한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당권 확보에 실패해도 비주류로서 현재보다는 몇단계 업그레이드된 당내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3명 모두 “당개혁에 힘을 합치자는 뜻일 뿐 지금까지 당권ㆍ대권 분담론은 전혀 거론된 바가 없다”고 부인한다.

실제 이들은 3인 3색의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주류 연대가 역할분담론까지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조짐은 벌써부터 눈에 보이고 있다. 박근혜 부총재가 14일 “당권 ㆍ대권 중복 출마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3자간에 차별화를 시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박 부총재의 발언은 곧 ‘자신이 대권에 도전해서 떨어지면 최고위원이 되어 일정지분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역할분담론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가에선 비주류 3인의 연대가 앞으로 ‘반이회창’의 깃발 아래 더욱 목소리를 키워나가겠지만 그 이상의 정치적 범주를 넘어서기는 어려운 제한적 연대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태희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2/01/17 10:45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