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기운 센 천하장사 3총사

제1 장사, 강우석.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영화에 ‘1인자’이다. 이를 증명하는 풍경이 연말 ‘공공의적’ 기자시사회장에서 벌어졌다. ‘공공의 적’은 강우석이 3년 반 만에 감독으로 돌아오면서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이다.

그야말로 문전성시. 어디서 이렇게 영화계 실력자들과 스타들이 모일 수 있을까. ‘신라의 달밤’의 김상진 감독, ‘좋은영화사’ 김미희 대표는 알려진 ‘강우석 사단’의 식구니 당연하겠지.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는 둘도 없는 ‘바둑맞수’이니 올 수도 있겠지. 그런데 바깥이 소란하더니 ‘취화선’ 의 주역인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이 겸연쩍은 얼굴로 나란히 들어온다.

어, 저 노인네들이 웬일로? “나만한 제작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라며 흥행에 상관없이 우리 문화적 전통과 정서를 담은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이태원 아닌가. 그런데 여기긴 웬 일로? “그래, 너는 얼마나 잘 만들었나 보자”하는 궁금증 때문일까.

아하, 그렇구나. ‘취화선’을 강우석 돈으로 찍고 있구나. 30억원을 투자한 사람의 영화니까, 마지못해 보려 온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1년에 남의 영화 한 두 편 보면 많이 보는데. 임권택 감독의 표정이 밝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까.

역시 돈의 힘이란 무섭구나. 비슷한 연배의 황기성 사단의 횡기성 대표도 보인다. ‘세이 예스’ 투자를 받았으니 당연히 와야겠지. 그들은 ‘돈’을 경멸하는 듯한 ‘공공의 적’을 어떻게 보았을까.

또 저건 뭐야. 시사에 앞서 무대에 오른 사람은 이춘연 씨네2000 대표. 보통감독과 배우들이 올라와 “잘 봐주세요”하는데 그가 무슨 일로. 진행을 맡았나. 그런데 끝까지 혼자서 이야기를 한다.

감독이 초조하고, 쑥스러워 자기가 대신 한다나. 그렇지. 그 역시 새 영화 ‘서프라이즈’의 제작비를 강우석에게 받았지. 그 역시 얼마나 많은 스타들이 이 자리에 왔나 자랑한다.

그의 호명으로 객석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는 스타들. 최민식 이미연 신하균 차승원 김현준 김정은도 왔구나. 그날 저녁, 모 호텔에서 열린 ‘시네마서비스’ 망년회도 비슷했다. “강우석 앞에 줄 서라.”

제2 장사, 극장주. ‘조폭마누라’의 제작사인 현진시네마 이순열 대표는 지난 연말 기가 막힌 일을 당했다. 개봉후 2주, 한달 단위로 정산해주는 것과 달리 한국영화는 종영 두 달 후 정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차별도 말이 안되는데 부산 모극장에서 10억원을 6개월 어음으로 주다니.

이거 가만히 앉아서 이자놀이로 남의 돈 1억원을 더 먹겠다는 게 아닌가.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옛날 스크린쿼터 때문에 억지로 한국영화를 상영할 때 극장주들이 부렸던 행패가 시장점유율 50%가 다 된 지금에도 여전하다니.

더구나 신사적인 기업이 운영하는 최첨단 멀티플렉스까지 한달 후 정산을 약속해 놓고는 두 달이 되야 돈을 주니. “그래, 그게 불만이면 다음부터 너희들 영화 안 부칠거야.”

제3 장사, 영화잡지. 김기덕 감독이 e메일을 보내왔다. “어제 조재현과 통화했는데 대뜸 나보고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야단을 치더라구요. 자기는 인터뷰 하고 싶어서 하는줄 아냐고…그래서 결론을 내렸어요. 인터뷰를 하기로. 정말 미안해요. 말을 번복해서. XX(영화 주간지)에 오만한 감독이라고 기사 나온거 아시죠? 드디어 인격적인 비판까지 받는 감독이 되었구요. 저 오만하지 못해요. 자만한지는 몰라도.”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나에게 들려준 모든 매체와의 인터뷰 거절 이유는 “마음이 힘들고 몸이 아파서, 다음작품 헌팅에 전념하려고”였다.

‘나쁜 남자’의 베를린영화제 본선 진출과 국내 개봉이란 두 가지 경사를 맞고도 왜 그는 왜 이런 시건방진 짓을 할까. 해외영화제에서 3년 연속 난리를 쳐도 엄격한 자기 틀과 상업성, 자기 권력화에 사로잡혀 영화를 넓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내 관객과 매체, 평론가들로부터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뭐, 인터뷰 거부? 누구 때문에 컸는데. 네가 좋아서, 네 영화가 맘에 들어서 우리가 그렇게 해준 줄 알아. 국제영화제 연속진출을 무시할 수 없어서지. 오만한 것 같으니.”

입력시간 2002/01/17 18:25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