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김정호(下)

작은 가슴으로 큰 족적을 남긴 藝人

어니언스의 히트곡 <사랑의 진실> <작은 새>의 진짜 주인공이 밝혀지자 미8군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사월과 오월> 멤버로 잠시 활동을 하던 김정호는 TBC방송 신광철 PD에 의해 패티킴의 스페셜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었다.

이미 전국그룹사운드경연대회에서 가수왕으로 등극하며 솔로데뷔를 꿈꾸던 조용필과 함께 김정호의 동반 게스트 초청은 파격이었다. 폭발적인 반응속에 두사람은 대중들속으로 탄탄한 첫발을 내딛었다.

우이동시절부터 김정호의 음악성을 인정해온 기독교방송 김진성PD는 데뷔곡 <이름모를 소녀>를 듣고 '한국의 모짜르트 탄생'이라고 극찬했다. <이름모를 소녀>는 부인 이영희를 애타게 짝사랑하면서 품었던 회한을 담은 노래.

교동초등학교 선배의 사촌동생이었던 부인은 김정호가 중학시절부터 점찍어 오랜 세월을 홀로 애태웠던 평생의 반려자였다. 자신의 일상적인 음악생활을 이야기하는 연애편지를 하루에도 수차례 보내고 용기를 내 집으로 찾아갔다.

보수적인 그녀의 어머니는 직업도 불안정하고 음악을 한다는 김정호가 미덥지 못했다.

그러나 순수한 심성의 사촌오빠 후배가 싫지않았던 이영희. 74년 늦봄 쉘브르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김정호 앞에 불쑥 나타났다. 3년간의 열애후 77년 반포의 17평 주공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쌍둥이 딸 정숙과 정운을 얻었다. 12번씩이나 이사를 거듭할만큼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인기정상의 가수였건만 존경하던 신중현과의 첫만남에 감격스런 마음을 감추지 못했을 만큼 순수했던 김정호. 75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음악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마초는 자신의 노래 '작은 새'처럼 좌절과 방황의 견디기 힘든 고행길을 걷게 했다.

매니저 이상기와 친형처럼 김정호를 보살피던 최무성은 경제적 이중고까지 겪는 그를 위해 76년 10월 무교동에 '꽃잎'이라는 생음악 레스토랑을 맡겼다. 83년 재개발로 헐릴때까지 '꽃잎'은 유일한 노래무대였다.

김정호는 좌절속에서도 작곡에 전념하며 생의 전부인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달중 20여일은 한적한 남이섬이나 우이동 월벽산장에 칩거하며 꺼져가는 음악혼에 불을 지폈다.

77년 방위소집으로 군복무를 마칠무렵 호되게 걸린 감기는 지병을 재발시켰다. 함께 활동이 금지된 하남석은 이 당시 둘도 없던 음악친구.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인생에 대한 고민은 물론 국악리듬에 어쿼스틱 기타와 신디 사이저를 접목하는 새로운 음악을 함께 구상하기도 했다.

80년, 5년만에 대마초 망령에서 벗어난 김정호는 재기앨범 <인생-유니버셜,K-APPLE-893,80년3월>을 발표했지만 해금의 달콤함도 잠깐. 오랜 정신적 고통과의 싸움에 지쳐 만신창이가 된 심신 때문이었다.

인천 바닷가에 위치한 결핵요양소에 입원했다. "과거의 화려했던 때는 흥미가 없다. 인기보다는 마음에 있는 좋은 노래를 불러 남기고 싶다"던 김정호. 일년이상 치료를 해야했건만 결핵균보다 더 강하게 꿈틀거리는 음악적 열정은 4개월만에 요양원을 뛰쳐나오게 했다.

82년 다큐멘터리 음악에 빠져있던 뚜아에 무아 출신 이필원과 가까워지며 신디사이저로 창출하는 환상적 음악에 빠져들었다. 새로운 음악적 열정이 꿈틀거리자 김정호는 오산의 금식기도원과 삼각산 산상기도에 매달리며 살고 싶은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필원이 직접 디자인한 <님-아세아,83년11월>은 김정호의 국악적 감성이 배여있는 눈물겨운 음반이다. 외삼촌의 국악에 자신의 음악을 접목하려 아쟁, 가야금, 꽹과리를 직접 두둘기며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에 혼을 담아내려했다.

부인 이영희는 “신보제작은 뒷전이고 차에 꽹과리를 싣고 다니며 1시간씩 두드렸을 정도로 국악에 빠졌었다“고 말한다. 그 한스런 탄식의 이미지를 담은 노래가 <님>이었다. 그것은 죽음을 예견한 상여가락을 연상시키는 선율이었다. 머리가 쭈삣 서는 듯한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님>은 그야말로 온몸을 불사른 김정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또한 수록곡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는 요양원 시절 송도해변을 걷는 여인에게서 느낀 슬픔의 이미지를 뽑아낸 히트곡이다. 이 앨범은 숨쉬기조차 힘들어 5개월의 최장시간 녹음을 해야만 했던 그의 유작앨범이다.

85년 11월 29일 33세의 천재음악가 김정호는 50여곡의 주옥같은 곡을 남긴채 세상을 등졌다. 너무도 사랑했던 부인에게 '고생시켜 미안해'라는 애틋한 유언만을 남긴 그는 흰눈이 내리던 날 경기 고양의 기독교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했고 죽어가는 순간에도 음악적 열정을 불태워 행복했던 진정한 대중음악가 김정호. 사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많은 헌정음반과 편집음반이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 노래 <님>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부인을 여관에 드나드는 다방아가씨로...

김정호는 이복형제에게 핍박받고 무대에서 숨을 거두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제작, 재상영 금지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 86년 10월 동료들에 의해 세워진 무덤앞 노래비에 새겨진 <하얀 나비>의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라는 노래구절처럼 인생을 구슬프게 노래한 그의 영혼은 <하얀나비>같이 그를 그리워하는 대중들의 곁에서 영원히 순백색의 날개짓을 하고 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1/1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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