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산책] 5ㆍ16 쿠데타 주체세력 분석

1961년 감행된 5ㆍ16 쿠데타는 우리 현대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꿔 논일대 사건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그 동안 5ㆍ16 쿠데타에 관한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져 왔고 성과도 비교적 많이 축적돼 있다.

최근 노영기(성균관대 대학원 박사과정)씨가 계간지 ‘역사비평’(통권 57호) 겨울호에 쓴 논문 ‘5ㆍ16 쿠데타 주체세력 분석’은 그 중에서도 독특한 시각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 동안의 연구가 주로 쿠데타의 성공 요인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면, 이 논문은 쿠데타 주체세력은 누구이고, 어떻게 결집했으며, 어떻게 갈라섰는지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이 엿보인다.

5ㆍ16 쿠데타의 주체세력을 꼽으라면 육사 5기와 8기 출신, 만주군과 육사9기 출신 등이 거론된다. 그 중에서도 핵심 세력은 육사 8기와 5기 출신들이다.

이들은 박정희를 중심으로 결집했고, 갈등을 일으켰으며, 결국 갈라섰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박정희와 육사 8기출신이 한편이고, 나머지 집단들은 저마다의 이해타산에 따라 이합집산하다 제거되는 양상을 보였다.

김종필 등으로 대표되는 육사 8기 출신은 어느 집단보다도 결집력이 강했다. 이들은 49년 5월 소위로 임관해 한국전쟁 때에는 소대장으로 투입됐으며, 다른 기수 보다 큰 희생을 당했다. 나라를 지켰다는 긍지와 생사를 같이 했다는 연대감이 육사 8기 출신들을 단단히 묶어놓은 것이다.

이러한 육사 8기 출신이 다른 세력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정군운동과 쿠데타 모의에 참여할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많은 수가 육군 본부 등 한직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4ㆍ19를 전후한 시기 육군본부에 근무한 육사 8기 출신은 12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점차적으로 진급 적체와 상급 지휘부의 권력독점에 불만을 품게 됐으며, 상대적으로 민간사회와 쉽게 접촉할 수 있었던 위치에서 판단력과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육사 5기 출신들은 쿠데타에서 병력을 동원하는 등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세력이다. 주동자인 육사 8기 출신들이 이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이들은 주로 이북 출신으로 대부분 사단장 또는 참모장의 지위에서 상황이 발생하자 군을 동원했다.

쿠데타 모의 단계에서는 개별적으로 참여했지만 거사 후에 점차 하나의 세력으로 조직화 됐다. 그러나 결집력이 약하다는 것이 육사8기 출신과의 결정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5ㆍ16 쿠데타가 발발한 것은 당시 군부의 정치지향적 성향과 폭발할 듯 팽배했던 사회적 불만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군은 질과 양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다. 단적으로 전쟁 이전에 10만 명이었던 병력이 전쟁 직후 7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른 진급적체에 대한 불만과 정치권의 부패 현상에 대한 적개심이 군부의 봉기를 촉발시킨 것이다.

또한 한국군의 정치 지향성은 이미 태생적으로 내재된 것이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다시 고용된 일본군 출신들은 초창기 군부를 장악했고, 정권의 정치적 도구로 충실히 복무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성장한 군부는 이미 4ㆍ19 이전부터 정치참여의 의지를 노출시켰으며 ‘정군운동’을시발점으로 본격적인 쿠데타의 길을 걸었다.

’정군운동’이란 육사 8기가 중심이 돼 추진된 사실상의 쿠데타이다. 처음엔 진급적체에 따른 하급장교 등 군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단체 행동이었다. 핵심 요구는 중장급 이상 장성의 퇴진이었다.

60년 9월10일 이들은 국방장관을 찾아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일식집‘충무장’에 모여 ‘정권을 무너뜨리자’는 결의를 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유명한 ‘충무장 결의’이고, 박정희는 이들의 수반으로 추대돼 5ㆍ16을 준비한 것이다.

5ㆍ16 주체세력의 분열과 해체는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61년 7월 소위 ‘장도영 일파 반혁명사건’이 터졌다.

이때 장도영과 이북출신의 육사 5기 및 9기들이 제거됐다. 이 사건은 장도영을 따랐던 육사 5기 출신과 박정희를 모셨던 육사 8기 출신의 대립의 결과였다. 또 63년 3월에는 소위 ‘군일부 쿠데타 음모사건’이 발생했다. 이 역시 민주공화당 사전 창당을 주도한 김종필과 그의 독주를 견제하던 만주군출신이 대결한 결과이다.

노영기씨는 “5ㆍ16 주체들이 ‘구 정권의 부정부패와 국가적 혼란, 정권의 무능함 때문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한낱 명분일 뿐”이라며 “5ㆍ16은 당시 군부 내에서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권력지향적 세력들이 결집해 일으킨 쿠데타”라고 말했다.

김철훈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2/01/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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