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경제서평] 세계경제 위기의 원인과 좌파적 분석

■혼돈의 기원
(로버트브레너 지음/전용복 백승은 옮김/이후 펴냄)

“여기, 마침내, 좌파로부터 대단한 책이 나왔다.”1998년 이 책이 출간됐을 때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렇게 평했다. 이 신문은 월 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우익 보수 언론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선봉인 신문이,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을 좌파의 책에 대해 ‘흥분’한 것이다.

영국의 가디언은 “주가 폭락이 과연 대공황의 전조인지 고심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더 나아가 만약 맑스주의 경제학자에게 노벨 경제학상이 수여된다면 그(저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런 평가가 나왔을까.

이 책의 원 제목은 ‘세계 위기의 경제학’(불균등 발전과 장기 침체: 호황에서 정체까지의 선진 자본주의 경제 1950~1998)이다. 왜 자본주의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되풀이하는 것일까. 무엇이 경제적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인가. 이에대한 설명이 이 책의 내용이다.

우선 저자인 로버트 브레너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트로츠키주의 정치조직인 ‘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좌파 역사학자다. 그는 1970년 전개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논쟁(구(舊) 브레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영주와 농노 모두 계급투쟁을 통해 몰락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기존의 학설과는 달리 자본주의 등장은 ‘의도하지않은 결과’였다고 설명해 큰 논쟁을 유발했다.

그가 이번에는 전후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변동과정에 대한 치밀하고 방대한 경제학적 분석을 내놓아 또 다시 좌파 경제학자와 역사학자들 사이에 대규모 논쟁이 일고 있다. 이른바 신 브레너 논쟁이다.

브레너는 전후 세계 경제의 호황과 위기를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수직적 계급투쟁이 아니라 자본과 자본간의 수평적 경쟁을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은 ‘경쟁론’과 ‘이윤율 저하론’이다. 전후 ‘황금시대’는 1965~73년을 경계로 끝났는데, 그 원인은 이윤율 저하에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즉, 경쟁 심화에 따라 신기술ㆍ저비용 기업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경제 전체의 이윤율 상승을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로 새로운기업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구기술ㆍ고비용 기업이 충분히 퇴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실패인 것이다. 구기술ㆍ고비용 기업은 그 동안 투자한자본 때문에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게 되어 결국 총자본에 대한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장기 호황은 후발주자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독일과 일본의 성장에 기인했으나 이들 나라 제품으로 미국 제조업 제품의 가격은저하 압력을 받게 되어 미국 경제 위기가 시작됐다.

이에 미국은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환율 조정으로 이를 만회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위기는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장기 침체는 저비용의 독일과 일본 제품이 세계 시장에 갑자기 대거 유입되고 이것이 제조업 부문의 과잉 설비와 과잉 생산을 초래한데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장기 침체의 원인이 된 전체 수익성의 하락은 노동이 자본에 가한 수직적 압박의 결과라기 보다는 자본의 수평적 경쟁의 격화에 따른 과잉 설비 및 과잉 생산의 결과다. 현재 상황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지속되는 일련의 장기 침체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론을 미국 독일 일본의 전후 50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분석을 바탕으로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역사학자의 자세와 경제학자의 시각을 동시에 갖춰 이를 충분히 활용했다. 쉽게 서술해 읽는 사람의 흥미를 끄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그의 이론의 지금까지의 여러 이론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을 독점자본에서 구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달라 같은 좌파로부터도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타협에 주목하는 조절이론에 대해서는 반대 견해를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책임론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위기의 원인은 국제금융자본의 투기가 아니라 국제적 과잉 생산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독창성은 충분히 세계적인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쓴 한국어판 서문인 ‘맑스주의 공황론의 창조적 돌파’는 이 책을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또 이런 종류의책은 오히려 원서를 봐야 훨씬 이해가 쉽다고는 하지만 이 책의 번역은, 몇 군데 매끄럽지 못한 부분과 생경한 단어들이 눈에 띄지만, 매우 훌륭한 편이다.

이상호

입력시간 2002/01/2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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