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금남의 집’ 박근혜 자택 공개

정치권의 ‘금남(禁男)의 집’이라 불리었던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의 자택이 지난 17일 비밀의 문을 열었다.

미혼인 박 부총재는 그간 적잖은 스토커들에게 시달린데다가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집주소는 물론 자택 전화번호까지 비밀에 붙여왔다.

물론 당에서 제작한 당직자 전화번호부에도 박부총재의 전화번호는 공란이다. 워낙 신변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신비주의적 처신’에 대해 정가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였다.

이날 자택공개는 당 출입 기자들을 자택으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한 만큼 다른 정치인들처럼 집안을 수시로 개방을 하지 못하지만 간간이 기자들을 불러 속 깊은 이야기를 하겠다는 메시지도 실려있었다.


집안은 부모님과의 추억이 가득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가 어려있는 자택 내부= 자택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2층 양옥으로 뉴월드 호텔에서 북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혼자 살기엔 상당히큰 대지 120평, 건평 60평 정도.

박 부총재는 박정희 대통령시해 사건 이후 청와대에서 나와 성북동과 장충동을 거쳐 1990년 현재의 집을 사들여 이사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호젓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집 바로앞까지 식당과 상점이 들어서면서 한가로운 맛은 없어졌다는 것이 박 부총재의 설명이었다.

1층은 거실과 손님 접견실, 주방과 다용도 방으로 사용하고 주로 2층에서 생활하고 있다. 벽과 천정, 계단 등은 통나무를 많이 사용해 단단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집 내부는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와의 추억이 듬뿍 실려있다. 거실 벽에는 75년 벚꽃 축제가 한창일 때 아버지와 함께 벚꽃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유화와 매화 수묵화, 자신이 수를 놓아 만든 바다 속 풍경화 1점이 걸려있을 뿐 이렇다 할 장식 없이 수수했다.

거실 벽난로 위에는 꽃꽂이를 하는 육영수 여사의 흑백사진, 박 전대통령ㆍ육 여사와 함께 청와대 경내 목련꽃 아래에서 함께 찍은 흑백사진, 한복을 입은 채 강아지를 안고 찍은 최근의 스튜디오 사진들이 진열돼 있다.

다용도 방에는 육 여사가 수를 놓아 만든 전국 무궁화 지도와 아버지와 함께 청와대 뜰에서 찍은 사진을 놓아 두었다. 박 전대통령은 육 여사 사망 뒤 정성이 가득한 무궁화 지도의 액자가 너무 낡았다면 새 액자로 갈았다고 한다.

거실은 3인용 소파와 목재로 만든 6개의 의자 및 그에 딸린 다탁, 통유리를 올린 탁자를 두었다.

2층은 침실과 서재 창고방이있다. 서재에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는데 기자들의 청에 의해 박 부총재는 ‘아리랑’ 한 곡을 연주했다. “정치도 이처럼 편안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박 부총재의 바람도 이어졌다.

2층 벽에도 아버지가 그린 경포호 수채화가 한점 걸려 있었고 응접세트 한 가운데에는 이사 올 때 구입한 10년 된 TV가 한대 놓여 있었다. 2층에도 역시 이렇다 할 가재도구는 없었다. 일반 가정이라면 흔히 있는 장식장이나 옷장 등 일체의 가재도구가 없는 것은 살림집이 아니란 방증이었다.

박 부총재는 사실 이 집에서 기거는 하지만 최근에는 거의 식사 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워낙 바쁘기 때문에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잔다는 것이다. 집은 온종일 경비원 2명이 교대로 숙식을 하며 지키고 일을 해주는 가정부가 격일제로 와서 청소 등을 해준다고 한다.


단전호흡으로 건강관리, “아기안은 주부 부러워”

박 부총재가 전하는 사생활= 박 부총재는 이날 자택만 열은 것이 아니다. 기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사생활도 비교적 솔직히 털어 놓았다.

그의 최종 학력은 서강대 전자공학과 졸업이다. 그가 전자공학과를 택한 것은 “전자산업을 발전 시켜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부총재는 “그때 (박 전대통령 통치 시절) 청와대 사람들은 앉으면 나라 걱정을 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전자산업 역군으로 나서면 나라발전에 보탬이 될 것 같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국회의 각종IT관련 모임에도 1순위로 참여한다.

박 부총재는 건강관리를 위해 9년째 단전호흡을 하고 있다. “매트만 있으면 어디서나 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 그가 꼽는 단전호흡의 최대 장점이다.

그런 수련 탓에 다섯 손가락을 펴서 팔 굽혀펴기를 20번 정도 하고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에는 자신한다.

박 부총재는 “단전호흡을 오래하면 도를 통하게 되고 앞날도 보인다”면서 “정당 개혁도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앞을 보고 하는 얘기니 새겨들어야 한다”고 조크를 했다.

대권을 노리는 그지만 부러운것도 있다. 그는 “길에서 주부가 아기를 어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시간의 여유가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그리 바쁜지 일찍들어 오면 천국에 온 것 같고 아침에도 조금이라도 더자고 싶다”는 것이다. 정치는 시간을 바치는 중노동 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듯했다.

주량을 묻는 질문에 “소주 1잔, 포도주는 2잔, 맥주는 1잔”이라고 답했다. 박 부총재는 폭탄주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박 전대통령은 술을 잘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 까지 꼭 혈통을 물려받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넘겼다.


독신주의 아니지만 결혼생각 없어

그의 신상에 관한 일반인의 최대 관심사라면 역시 결혼 문제일 것이다.

박 부총재는 “독신주의자가 아니었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결혼 시킬 생각을 하고 계셨는데 아버지 옆에서 어머니의 대역을 하면서 결혼할 기회를 놓쳤고, 두 분이 흉탄에 돌아가신 후에는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워 결혼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박 부총재는 전했다.

지금은 아예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정치와 결혼을 양립하지는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부총재는 “얼마 전 지방에 다녀 오다가 비행기에서 신문을 보았는데 ‘박근혜의 관상은’이라는 기사에 ‘결혼운’이 소멸됐다고 되어 있더라”며 다소 쑥스러운듯 미소를 지었다.

박 부총재가 정치에 입문한동기는 무엇일까. 역시 아버지의 유산을 지키려는 자식의 심정이 배어 있었다. 그는 “IMF 때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됐나 싶었다. 나라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 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청와대에 있을 때 주변에서 권유가 많았지만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이기회에 나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뜨겠구나 싶었다”면서 “아버지 생각도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정치인으로서 박 부총재는 “명분없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봐서라도 엉뚱한 길을 가지 않을 것이고 손가락질 받는 행동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그는 한나라당의 총재제 폐지 등 정당 개혁을 강도 높게 이야기 하는 것과 관련 당내에서 ‘탈당 명분 쌓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보는 시각에 대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정당 개혁을 안 할 명분을 쌓는 사람들”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태희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2/01/23 13:39


이태희정치부